매일신문

'경주사람은 괴로워'…규제 일변도 '고통'

유네스코 지정 세계유산이 산재한 아름다운 고도(古都) 경주. 하지만 화려한 겉모습과 달리 실제로는 규제 일변도의 정책으로 고통의 시간만 보내고 있다. 주택 신축이나 증·개축은 물론 주택 담보 대출도 어렵다. 정부의 보상도 어느 세월에 이뤄질지 모른다. 더욱이 고도보존특별법이 시행되면 구 시가지의 많은 지역이 '제2의 쪽샘지구'가 되는 역사문화환경지구로 지정될 가능성이 높아 시민들의 걱정은 커져만 가고 있다.

경주의 개발을 가로막고 있는 규제는 문화재보호법과 도시계획법, 고도보존특별법. 지난 62년 발효된 문화재보호법은 경주시의 1천67만 평에 대한 60여 가지의 각종 행위 규제가 중심내용이다. 또 도시계획법은 건축비가 2배 이상 드는 기와집만 짓게 했다. 여기에다 지난 2004년 국회를 통과한 고도보존법이 시행되면 강력한 규제법이 하나 더 생기는 셈이다.

하지만 보상을 위한 예산 확보 규정은 전혀 없다. 국회 한 보좌관은 "시민을 위한다던 고도보존법이 잘못돼 더욱 경주를 규제할 가능성이 많다"고 지적했다. 서울대 법대 정종섭 교수는 "고도보존법은 주민의사가 반영이 안 된 '위로부터의 입법'"이라고 규정했고 문화재청 한 관계자는 "향후 공청회를 거쳐 시민들의 반대가 많다면 사문화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중앙 정부의 경주에 대한 시각도 편향적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과거 박정희 정권 당시 경주가 관광특구로 많은 혜택을 봤기 때문에 지금 손해를 좀 봐도 괜찮다라는 식의 반응을 보인다는 것.

그러나 경주의 현실은 인접한 포항·울산과 비교해보더라도 초라하기 짝이 없다. 30여년 전 경주보다 시세가 약했던 포항은 이제 인구 2배, 경제력 5배이고 울산은 인구 4배, 경제력 20배가 넘는다.

경주 시민의 생활수준도 이들 도시의 60% 수준에도 못 미치는 것으로 분석된다. 상권은 안강 이북은 포항에 흡수되고 불국사 이남은 울산에 흡수됐다. 외동·천북공단도 울산·포항 대기업의 2차 밴드에 불과해 연봉 2천만 원 내외의 근로자만 양산하고 있다.

동국대 직원 이모(51) 씨는 "방폐장 선거때 경주의 찬성률이 90%에 육박한 것은 수십 년간 억눌린 경제적 불이익에 대한 불만이 폭발한 것"이라며 "현실이 이런데도 중앙정부는 경주의 피해를 방치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처럼 각종 규제에 따른 피해는 개인들의 재산권 행사에만 제한돼 있지 않다. 주거환경이 계속 나빠지면서 구 시가지는 공동화돼 과거 초대형 초교였던 계림·황남·월성초교 등은 폐교대상에 올랐다. 지난 2004년 신축교사를 지으려던 경주고는 매장문화재 때문에 4층으로 층수를 낮춰야 했고 경주여중은 증축이 불가능해 내년 5월 충효동으로 이전한다.

도로들도 매장 문화재 때문에 기형적으로 만들어져 주민 불편과 함께 교통사고 위험이 높다. 경주IC에서 시가지로 진입하는 오릉 앞 삼거리는 지난해 사거리로 만들려다 왕경유적지가 나오는 바람에 신설 도로를 서쪽으로 300m 옮겨 교통체계가 원활치 못하다. 계림초교 뒤 왕복 5차로 도로는 경주읍성 유적 때문에 5차로 도로 200여m 구간이 3차로로 좁아졌다. 불국사역 인근 괘릉에서 양북으로 빠지는 신설 4호선 국도는 문화재가 출토돼 공기가 계속 연장되고 있다.

시민 남모(42) 씨는 "서울 광화문 앞은 조선시대 중요 매장문화재가 많은데도 초고층 건물을 마구 지으면서 왜 경주만 닦달이냐"며 "가만히 앉아 수천만 원씩 피해 보는 경주시민 7만여 명은 눈뜬 장님"이라고 말했다. 경주·박진홍기자 pjh@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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