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대구 중앙로 변신을 꿈꾸다-(상)되돌아본 중앙로 100년

대구 첫 남북 신작로 '도시발전 한축'

인도를 따라 실개천을 만드는 등 대구의 상징거리인 중앙로를 업그레이드시키려는 대구시의 계획이 발표된(본지 9일자 1면 보도) 이후 시민들의 반응이 뜨겁다. 매일신문 인터넷 홈페이지엔 "좋은 아이디어다" "여름에 도심 열섬 현상이 없어져 한결 시원해지겠다"는 등 기대감을 표시하는 누리꾼들의 글이 잇따랐다. 반면 "중앙로는 너무 좁아서 실현불가능하다"는 회의적인 의견도 올라왔다.

서울의 청계천처럼 중앙로를 물길이 흐르는 시민들의 휴식공간으로 변신시키려는 시의 계획을 계기로 대구의 대표거리인 중앙로를 다시 들여다봤다.

1)대구와 애환 함께 한 중앙로.

길은 소통을 가져오고, 문명을 낳는다. 나이가 89살인 중앙로도 마찬가지였다. 지금은 달구벌대로, 국채보상로, 동대구로 등 넓고 쭉 뻗은 도로에 밀려났지만 중앙로는 아직까지 대구를 대표하는 도로다. 대로(大路)로 불렸을 만큼 처음 선보였을 때엔 대구에서 가장 넓은 도로였고, 향촌동, 약전골목 등과 함께 중앙로에는 100년 가까이 대구 사람들의 애환이 깃들어 있다.

꼭 100년 전인 1906년 대구읍성이 붕괴되면서 아이러니하게도 대구에 근대화의 '신호탄'이 울려퍼졌다. 성이 사라진 자리가 현재의 동성로, 서성로, 남성로, 북성로 길이 됐다. 3년 후인 1909년엔 지금의 중부경찰서 앞을 지나는 십자대로가 생겼고, 이 무렵부터 기성세대들의 귀에 익숙한 '신작로(新作路)'란 말이 대구에도 처음으로 나돌게 됐다.

1917년에 드디어 대구역에서 중앙파출소까지 대구의 남과 북을 잇는 중앙로가 뚫렸다. 비로소 대구의 동서남북 대로의 골격이 짜여진 셈. 당시 일본인들은 중앙로를 중앙통으로 불렀으며 대구에서 처음 선보인 폭 12간(間·1간은 약 1.82m) 도로여서 사람들로부터 큰 관심을 모으기도 했다. 당시 경북 도내 곳곳에서도 새로 생긴 중앙로를 보기 위해 '원정'을 올 정도로 지역의 '명물'로 자리잡았던 것.

박경용 영남대 민족문화연구소 연구교수는 "일제 식민지배 세력이 도시개발을 통해 지배를 강화하는 차원에서 중앙로가 만들어졌다"며 "그러나 대구의 남과 북을 잇고 대구의 발전을 가져왔다는 측면에서 중앙로는 큰 역할을 했다"고 밝혔다.

비록 일제에 의해 만들어진 도로였지만 중앙로는 대구역사 신축공사와 더불어 당시 대구의 상권 판도를 단번에 바꿔놓았다. 그전까지만 해도 대구 최대거리였던 염매시장에서 계산동으로 이어지는 읍성의 남쪽 부근은 시들해지고 대구역전과 북성로, 향촌동, 동문동, 동인동 일대가 각광받기 시작한 것. 특히 당시 최고의 번화가 북성로는 '대구의 긴자(銀座)'로 급부상했다.

해방과 6·25를 거치면서도 계속 대구의 대표적 거리 자리를 차지했던 중앙로는 1960년대에도 그 위세를 떨쳤다. 섬유특수 등으로 돈이 잘 돌자 중앙로 인근 향촌동이 서울의 무교동, 부산의 남포동과 함께 전국 3대 주점가로 흥청댔고, 중앙로옆 중앙파출소는 취객들로 항상 붐빌 정도였다. 이 무렵 대구의 예술인들도 중앙로와 그 일대를 무대로 활동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 시기부터 동성로 일대에 백화점들이 속속 들어서면서 중앙로의 빛은 바래지기 시작했다. 동성로 상권의 축이 중앙로 서편 향촌동을 누르기 시작했고, 대구 상권이 점차 남하하면서 중앙로 주변 상권이 쇠퇴기로 접어든 것. 특히 중앙로를 중심으로 서쪽 상권은 쇠락을 거듭했다.

급기야 국채보상로, 달구벌대로 등 대구의 도로망이 확충돼 대구 상권의 확산현상이 가속화하면서 중앙로는 대구의 대표 거리 자리를 물려줘야 했다. 특히 지하철 1호선 공사가 중앙로를 따라 진행되면서 중앙로는 쇠퇴 속도는 빨라졌다.

대구와 애환을 함께 했던 중앙로는 대구 시민들에게 가슴 아픈 거리이기도 하다. 2003년 2월 18일 대구지하철 1호선 중앙로역 화재 참사로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고 부상을 입었던 것. 당시 중앙로엔 귀중한 생명을 앗아간 검은 연기가 하늘을 가득 메웠고, 가족의 생존 여부를 확인하려는 사람들의 안타까운 비명이 끝없이 울려퍼졌다. 그 이후 중앙로는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부상자들의 회복을 기원하는 애도의 물결로 흘러넘쳤다.

지하철 개통 이후 중앙로는 다소 활기를 찾았지만 예전의 영화를 찾아보기 힘들다. 흥청대던 분위기 대신 어르신들이 중앙로의 터줏대감으로 자리잡고 있다. 중앙로의 서편과 일부 동편 한 구석에 실버거리가 형성되면서 어르신들의 전용거리로 변모한 것. 중앙로 서편은 다방, 동편은 커피숍일 정도로 중앙로 동·서편의 분위기가 다르다. 서편인 약전골목, 진골목에서는 휴대폰 판매업소를 찾아보기 힘든 반면 동편은 이들 업소가 집단촌을 이룰 정도다. 서편에서는 무슨무슨 식당 이란 간판이 흔하지만 동편에서는 패스트푸드점이 우후죽순처럼 들어서 있는 것도 대조적이다. 중앙로를 경계로 양 편의 색깔이 확연하게 다른 셈이다.

이제 89살이 된 중앙로는 다시 변신을 꿈꾸고 있다. 버스와 택시만 다니는 대중교통전용지구가 되고 인도를 따라 실개천과 분수, 가로수, 의자 등이 설치되는 등 중앙로의 모습이 확 달라지는 것. 한 환경전문가는 "중앙로는 대구의 중심가로로 재승격, 조성돼야 한다"며 "실개천은 물론 가로시설물, 포장, 녹화 및 식재, 간판정비, 조명 등에서 중앙로는 조형성과 심미성 및 공공성 그리고 역사성을 갖춘 거리로 태어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대현기자 sk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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