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대구·경북 근대화 100년-(7)의료

지역 민초들의 건강 지킨 두 파수꾼

◇ 대구·경북지역에 근대의료가 도입된 지 2006년 새해로 1세기가 지났다. 계명대 동산의료원이 개원 107년, 경북대병원이 개원 99년째를 맞았다. 국권이 약해 주권마저 빼앗기고 민초들은 빈곤과 질병에 시달리던 시대, 선교사업의 일환으로 시작된 근대의료는 지역민의 건강을 지키는 파수꾼 역할을 해 왔다. 지역 의료계를 이끌어 온 두 개의 큰 축인 동산의료원과 경북대병원이 걸어온 지난 100년의 세월을 반추해 본다.

■동산의료원

전신은 미국인 의료 선교사 존슨이 세운 제중원(濟衆院). 존슨은 1897년쯤 대구에 도착, 남문안교회(현 제일교회) 옆에 마련된 선교사 사택에 가족과 함께 살며 파계사에서 한국어를 배우며 선교 활동을 벌였다.

존슨은 1899년 의료사업의 필요성을 깨닫고 초가집을 개조하여 간이 진료소를 마련했다. 처음에는 단순히 약품만 팔면서 '미국 약방'이란 간판을 달았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제중원으로 개명했다. 개원시기는 1899년 12월 24일로 추정된다.

존슨은 원장 부임한 후 천연두 예방 접종을 실시해 당시 어린이 사망원인의 50%를 차지하던 천연두의 공포로부터 지역민을 해방시키는 데 일조했다. 1906년에는 현재 병원 위치인 성문밖 동산 서편에 땅을 구입하여 병원을 신축했으며 신축 후 환자가 해마다 급증해 1907∼1908년 환자수가 5천 명을 넘었다.

1908년 나환자를 처음 치료한 뒤 이듬해 병원 근처에 초가집 한 채를 마련, 10명의 나환자를 수용하여 간호하기 시작했다. 이것은 요양원 성격 나환자 사업의 시작이 되었다. 존슨은 1908∼1909년 2년 동안 7명의 의학도를 뽑아 서양의학과 영어를 가르쳤다. 1909년에는 제왕절개 수술에 성공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그러나 환자가 몰려들면서 존슨은 과로로 병이 나 1910년 의료사업에서 손을 떼게 된다. 존슨 후임으로 플레처가 원장에 취임했다. 플레처는 1941년 일제에 의해 적성 국가 인물로 분류되어 강제 추방 당하기까지 원장으로 재임했다.

플레처는 제중원에서 동산병원으로 개명한 장본인으로 1917∼1918년 병원에서 약 3km 떨어진 곳에 요양원을 건립, 100명의 나환자를 입원시켜 본격적으로 나환자 구제 사업을 실시했다. 1925년 10월에는 병원 부속 간호부 양성소를 설립했으며 환자 증가에 따라 1927~1928년 1만 달러를 들여 새 외래진료소를 신축했다. 새 외래진료소 신축으로 단과병원 운영방식에서 탈피, 종합병원 체제로 전환했다.

또한 손인식, 김용석, 김재명 등 한국인이 각각 내과, 안이비인후과, 외과과장으로 부임했다. 1930년 2월 14일 대구영아보건소를 세웠으며 미 전역에 있는 교회, 독지가를 대상으로 모금 운동을 벌여 1931년에는 현대식 3층 규모의 병원을 신축했다.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1950년 9월 26일자로 내무부 치안국 소속 경찰병원 경북분원으로 위촉받아 부산 동래초교에 분원을 설치, 의사들이 교대근무를 했으며 부상 경찰관들에게 의수족을 만들어 제공하기도 했다.

한국전쟁이 끝난 후 동산병원은 큰 변화를 맞게 된다. 병원장 마펫 박사는 1953년 전쟁고아를 위해 아동병원을 신축했고 의무, 행정직 과장들을 미국에 유학시켜 선진의술을 연구하고 실무경험을 쌓도록 했다. 1958년 한국 최초의 병리기술학교를 개설해 병리기사도 배출했다. 1967년에는 병원발전 7개년 계획을 수립하고 총 200만 달러 이상의 모금 운동을 전개했으며 이 모금 운동의 성공으로 1972년 5개년 계획이 완성을 보게 되었다. 이 시기는 동산병원 중흥의 시대로 불린다.

1960년 국내 최초로 방사성 동위원소 라듐-226을 도입하여 방사성옥소치료를 실시했다.1968년 심장병으로 쓰러진 환자를 심장 소생기를 통해 회생시켜 국내 의학계의 주목을 받았으며 서울대학병원에 이어 국내에서 두 번째로 뇌파검사기도 도입했다.

한강 이남에서 처음으로 1974년 성형외과를 개설했으며, 1980년에는 전산화 단층촬영기(CT)를 도입했다. 1979년에는 당시 금기시 되던 척추 질환자에게 척추마취를 국내 최초로 시행, 척추마취에 대한 기본원리 및 개념을 정립했다. 1980년 계명대와 통합 작업이 마무리되면서 계명대 의과대학 부속 동산병원으로 다시 태어났다.

1981년 의학교육과 의료사업의 조성을 위해 의료원을 두었으며, 현재 동산의료원 산하에 의과대학, 간호대학, 대구동산병원, 경주 동산병원을 두고 있으며 26개 임상진료과, 931병상을 갖추고 의료진을 포함, 1천700여 명의 직원들이 의료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새 시대를 준비하기 위해 계명대 성서캠퍼스로 동산병원 이전이 추진되고 있다.

■경북대병원

일본 민간단체 동인회의 지원을 받아 1907년 2월 개원한 대구 동인의원이 전신이다. 동문정(東門町·구 동성로파출소)에 위치하고 있었으며 단층 목조 건물에 진료과목은 내과, 외과, 안과, 산부인과 등이었다. 동인의원은 1907년 9월에 6명, 이듬해 5월에 10명의 한국인 의학교육생을 선발했으나 1911년 4월 의학교육 일원화 방침에 따라 동인의원부속 의학교는 폐쇄되었다.

동인의원은 1910년 8월 한일합방 이후 조선총독부 의료정책에 따라 관립 자혜의원으로 개편된다. 자혜의원은 1913년 조산부 및 간호부 양성소, 1923년 사립의학강습소를 설치한다. 사립의학강습소는 1924년 경상북도립 대구의학강습소로 개칭된다. 자혜의원은 1925년 경상북도립 대구의원으로 개편되었으며 1926년 3월 13일 발생한 화재로 소실된 후 1928년 10월 15일 현 경북대병원 위치에 건평 1천773평의 2층 붉은 벽돌건물로 신축, 이전되었다.

대구의학강습소는 1933년 대구의학전문학교로 승격된다. 승격 후 현 경북대 의대 위치에 새로 교사를 신축, 명실상부한 의학 교육기관의 면모를 갖추게 된다. 벽돌로 만들어진 4층 본관에는 화학실, 생리학실, 약물학실, 세균학실, 법의학실 등이 있었으며 입학생 정원은 1개 학년당 70명이었다.

도립 대구의원은 늘어나는 환자를 수용하기 위해 1935년 8개 병실, 77개 병상을 갖춘 315평 규모의 건물 1동, 이듬해 6개 병실, 10개 병상을 갖춘 마약류 중증자 치료소를 마련했으며 1937년에는 산부인과 진료실 및 수술실을 증축했다. 도립 대구의원은 내과, 외과, 안과, 산부인과, 피부비뇨기과 등 8개 분과로 나눠 진료했다. 구강질환도 치료했지만 별도의 치과교육기관이 설립되어 치과의사를 양성한 것은 아니었다. 대구의학전문학교로 승격한 이후 치과교육기관이 개설되었다.

해방 후 1948년 10월 미군정청 방침에 따라 대구의학전문학교는 대구의과대학으로 승격되었고 도립 대구의원을 부속병원으로 이관받았다. 대구의과대학은 해부학, 내과학, 안과학, 치과학 등 14개 교실과 부속고등간호학교를 두었으며 병원 규모는 일반병동 100병상, 격리병동 30병상 정도로 크지 않았기 때문에 환자들은 진료와 입원에 어려움을 겪었다.

1951년 10월 6일 국립 종합경북대학교 설립이 인가되면서 이듬해 5월 28일 대구의과대학은 국립 경북대 의과대학으로 이관되었고 부속병원도 경북대 의과대 부속병원으로 명칭이 바뀌게 된다. 당시 의과대 학생수는 의예과 2개 학년 160명, 의학과 4개 학년 320명이었다. 의대 부속병원이 되면서 인력뿐 아니라 시설 확충이 가속화되었다. 1958년 정신신경과가 개설되었고 부속병원 혈액은행도 개원했다. 또 같은 해 병원 동쪽 별관에 내과, 외과, 임상병리과 실험실이 마련됐다. 1961년 연간 환자수 7만7천414명, 240병상을 가지고 있었으나 이후 건물 신축 등으로 1974년에는 병상 규모가 430개로 늘어났다. 현재는 암센터와 33개 진료과(치과 포함), 900여 병상, 1천500여 명의 직원이 있는 규모로 성장했다.

1982년 재활의학과와 의공학과 신설, 해부병리과 독립, 방사선과를 진단방사선과 치료방사선과로 분리, 내과를 7개 분과로 분화, 일반외과에 소아외과분과 신설, 치과에 8개 분과 설치 등 시대적 요구에 맞춰 조직 세분화가 이루어졌다.

1983년 국내 최초 두피 접합수술 성공, 1985년 간경화증에 동반되는 식도정맥류를 수술하지 않고 폐쇄시키는 개과를 올렸으며 1981년에는 지방대학으로는 처음으로 신장 이식에 성공했다. 1993년 경북대학 부속병원에서 경북대병원으로 법인화가 이루어졌으며 1996년에는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춘 모발이식센터가 개소했다.

급변하는 의료 환경에 대처하기 위해 1천500여억 원의 예산을 투입, 대구시 북구 학정동 2만8천여 평 부지에 경북대 칠곡병원과 암, 노인성 질환을 전문적으로 치료·연구하는 복합 의료시설을 오는 2007년까지 건립하고 달성군으로 병원 이전을 추진 중이다.

이경달기자 sara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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