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왕의 남자' 관객 1천만명…예상밖 흥행성공 의미는

믿을 구석 하나 없었다. 오히려 악재뿐이었다고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저 자유정신을 논했고 새로운 드라마를 추구했다. 웰메이드 영화 한편 만들자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대박'이 터졌다.

영화계에서는 말한다. "이게 바로 영화하는 맛"이라고. 이런 점에서 '왕의 남자'(감독 이준익, 제작 이글픽쳐스·시네마제니스)의 11일 1천만 관객 돌파가 갖는 의미는 특별하다. 그 흥행의 의미를 짚어봤다.

◇누구도 예측하지 못한 1천만=지난 해 12월29일 정식 개봉 후 45일 만에 달성한 기록이다. '실미도'(1천108만명, 2004년 2월19일), '태극기 휘날리며'(1천174만명, 2004년 4월14일)에 이은 역대 세번째 금자탑이다.

그러나 흥행 추이와 성격에서는 앞선 두 작품과 다르다. 강우석 감독의 '실미도'와 강제규 감독의 '태극기 휘날리며'는 출발부터 1천만 관객을 목표로 했다.

기본적으로 제작비가 100억원을 넘어서는 데다 북파공작원과 한국전쟁이라는 큰 스케일의 소재를 다루면서 제작 단계에서부터 공공연히 한국영화 최고 흥행작을 목표로 삼았다. 감독과 배우 모두 스타 플레이어들이었으니 그래야 체면이 섰다. 하지만 '왕의 남자'는 기자 시사회 직후에도 "작품은 좋은데 과연 흥행이 될까" 싶은 영화였다. 평단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긴 했지만, 그런 작품 중 흥행에 참패한 영화가 어디 한둘인가. 거기다 '실미도' '태극기 휘날리며'처럼 제작 단계에서 언론의 대대적 주목을 받지도 못했고, 흥행에 대한 야심이나 확신이 없으니 물량공세와 손잡은 공격적인 마케팅을 펼치지도 못했다. 그러니 1천만 관객은 꿈도 꾸지 않았다.

그런데 255개에서 출발한 스크린은 개봉 한 달을 넘긴 설 연휴에 397개로 늘어나는 괴력을 발휘했다. 한마디로 누구도 아닌 관객이 만든 1천만 흥행이다.

◇악재 딛고 일어선 성공= '왕의 남자'는 소위 말하는 A급 캐스팅과는 거리가 멀다. 게다가 캐스팅 과정에서 장생 역으로 낙점했던 장혁이 병역 비리로 중도하차하면서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우기까지 했다. 상업성을 띤 배우 중 조선시대 광대 역을 연기할 배우를 찾기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우여곡절 끝에 캐스팅한 감우성과 이준기 조합이 장동건-원빈, 안성기-설경구 조합과 격이 다름은 두말하면 잔소리. 동성애 코드까지 겹쳤다. 제목부터 '왕의 남자'로 동성애 코드를 공격적으로 내세운 이 영화는 '실미도'와 '태극기 휘날리며'가 남성적인 힘을 강조한 것과는 정반대의 길을 걸었다. '칼 부림'은 하지 못할망정 여성성이 강한 공길이라는 캐릭터로 한국 사회의 보수성에 도전장을 내민 것. 여기에 코미디나 드라마, 액션에 비해 오락성이 현저히 떨어지는 사극 장르다.

그러나 뚜껑을 연 결과 이준기는 '여성처럼 예쁜 남자' 신드롬을 낳으며 급부상했고, '왕의 남자'는 사회적으로 동성애 코드를 커밍아웃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인정받고 있다. 캐릭터와의 흡착 여부가 못내 의심스러웠던 감우성은 배우 인생을 걸고 연기한듯 도회적 이미지를 극복하고 자유로운 광대 장생과 하나가 됐다. 또 조선시대 광대놀음은 웬만한 블록버스터 못지않은 화려한 볼거리와 재미를 안겨줬다.

◇저비용 고효율= 이 영화의 순제작비는 44억원이다. '실미도'의 82억원, '태극기 휘날리며'의 147억원과 비교할 때 '턱 없이 적은' 액수. 마케팅비도 22억원으로 두 작품보다 훨씬 적다. 극장 수입으로 따질 때 7천원짜리 티켓 중 2천800원 가량이 투자·제작사의 몫으로 돌아온다. 1천만 관객을 기준으로 280억원. 이를 다시 투자사 시네마서비스와 6대4로 가르면 제작사에 90억원 가량이 돌아온다. 극장을 통해 얻는 순수익만 90억원인 셈. 물론 이글픽쳐스와 씨네월드가 공동 제작을 했으니 양사는 이를 다시 반으로 가른다. 또 '왕의 남자'는 DVD 판매를 기대하고 있다. 마니아들이 많은 만큼 DVD 소장 욕심도 크리라는 예측. 일본 등 해외 판매 성적 역시 좋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왕의 남자' 측은 "줄타기를 비롯한 광대들의 놀음과 조선시대 궁중의 모습 등이 이국적인 재미를 줄 것이다. 한류 스타가 출연하는 영화처럼 높은 가격은 아닐지라도 많은 국가에서 관심을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원 소스 멀티 유즈 영화는 연극 '이'(爾)(김태웅 작)를 원작으로 히트했고, 연극은 영화 덕분에 다시 인기를 얻고 있다. 지난해 12월부터 서울에서 앙코르 공연에 돌입했던 '이'는 총 44회 공연으로 2만9천836명의 관객을 끌어모았다. 여세를 몰아 25일부터 지방 공연에도 돌입한다. (연합뉴스)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