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노 대통령의 신년연설로 양극화 문제가 주요 화두로 등장하였다. 우리나라의 양극화 원인에 대하여 다양한 분석이 있지만, 1960년대부터 시작된 성장중심주의정책으로 인하여 양극화가 이루어져 왔고, 특히 IMF 외환위기 이후 지속된 소득격차와 분배구조의 악화는 양극화를 심화. 확대시켜 왔다.
IMF 이후 대규모 구조조정을 경험한 기업들은 투자와 고용을 축소시켰고, 단기 수익성을 추구하는 금융시장의 환경변화는 지속적인 노동시장의 유연화를 가져왔으며, 이는 노동시장의 불안정성 증대, 실질임금의 하락을 가져왔다. 특히 전체노동시장의 60%를 차지하는 비정규직에 대한 임금, 근로조건의 차별은 근로빈곤(working poor)이라는 새로운 빈곤유형을 구조화했고, 부동산 등 자산소득에 대한 재분배 기능의 취약은 부의 격차를 대물림시킬 위기에 처하게 하였다.
이러한 사회적 위기는 총체적이고도 심각하여 참여정부는 그간 기회가 있을 때마다 "양극화 해소"와 "동반성장"이라는 구호로 당면한 사회의 위기 극복에 대한 의지와 방향을 밝힌 바 있었지만 참여정부의 실제 경제정책과 사회정책의 운영은 그와 정반대의 길을 걸어왔고, 사회정책의 패러다임적 전환과는 거리가 먼 부분적. 선별적 조치에 그치고 있다.
그리고 최근 노 대통령은 신년연설에서 양극화 해소를 위한 해결책으로 '일자리 창출'을 강조하였으나 이를 실현하기 위한 구체적인 해법은 제시되지 못하고 있고, 특히 재원확보방안이 불투명한 점에서 양극화 해소를 위한 근본적 대책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당면한 양극화 문제는 일시적이거나 특정부분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우리사회 전반에 걸친 총체적 문제로서 그 해법 또한 부분적. 단기적 조치가 아닌 장기적으로 근본적 틀을 변화시키는 방향으로 진행되어야 한다.
이러한 점에서 독일의 예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1990년 통독 당시 독일 국민들은 번영한 조국에 대한 기대로 벅차 있었다. 그러나 통일 이후 나타난 독일사회는 막대한 통일비용과 독일병이라고 불리는 고비용 저효율의 경직된 사회구조로 인하여 장기적 경제침체와 높은 실업률에 고통받고 있었고, 계층간의 격차는 사회적 위기로까지 간주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1998년 사회민주당(SPD)을 중심으로 한 좌파정권이 출범하게 되었고, 총리가 된 슈뢰더는 신중도(neue Mitte)를 표방하며 사민당 내의 노선갈등을 극복하고 정적들과의 대타협을 통하여 3년간의 연구 끝에 2003년 3월 독일병과 사회양극화 해소를 위한 장기적 마스터플랜인 Agenda 2010을 발표하였다. Agenda 2010은 지속가능한 사회보장시스템, 경제활성화, 실업감소를 위한 잠재력 창출을 목표로 2004년부터 2010년까지 독일정부가 추진하고자 하는 경제. 사회 전 분야에 걸친 개혁프로그램이다. 이러한 독일정부의 치밀함에 비해 참여정부는 어떠한가? 노 대통령의 신년사는 솔직담백하였다.
그러나 우리 사회가 요구하는 것은 대통령의 솔직한 고백이나 사회쟁점에 대한 재확인이 아니다. 실기(失期)는 실각이자 국운의 후퇴이며, 준비된 정부만이 준비된 정책을 통하여 준비된 미래를 창조할 수 있다. 따라서 참여정부는 조속한 시일 내에 부를 창출하기 위한 혁신적 산업정책과 공정한 분배를 위한 조세개혁, 비정규직 개선과 노동시장의 고용창출, 빈곤층에 대한 교육투자와 사회보장제도의 확대방안 및 이를 실현하기 위한 선결과제인 경제'사회주체들 간의 이해충돌과 가치갈등을 줄일 수 있는 대타협 방안 등을 마련하여 양극화 해소를 위한 장기적. 종합적인 개혁프로그램을 제시하여야 한다.
이러한 한국식 agenda 2010을 제시하지 않고 단순히 우리 사회의 양극화 문제의 심각성만 주장한다면, 이는 한낱 구호에 불과하며 차기에 다시 정권을 잡기 위한 정치적 술책에 불과하다는 정적들의 비판을 면하지 못할 것이다.
이호철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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