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영국의 최대고민은 '어떻게 인도를 지키는가' 하는 것이었다. 미국이 독립해 인도가 영국에게 가장 중요한 식민지가 되었고 따라서 대영제국의 번영은 인도가 없이는 불가능했기 때문이었다. 영국이 세계 최강의 함대로 인도양을 지키는 한 유럽의 어떤 열강도 인도로 들어올 수 없지만 러시아만은 예외였다. 러시아는 아프가니스탄을 통해서 걸어서 인도로 들어올 수 있었기 때문이다. 영국의 고민은 바로 여기서 시작되었다. 약한 영국의 육군으로 세계 최대 규모인 러시아 육군과 싸울 수는 없었다.
영국은 유럽에서 러시아와 국경을 접하고 있는 독일을 이용하기로 하고 독일에게 영'독 동맹을 제의했지만 거절당하고 말았다. 독일의 입장에서는 고래와 북극곰 사이에 전쟁이 벌어지면 영국이 허약한 러시아 함대를 상대로 바다에서 편안한 해전을 할 때 독일은 국운을 걸고 세계 최대 규모의 러시아 육군과 혈전을 벌여야 하는 곤란한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 와중에 극동에서 일본이 청'일 전쟁에서 승리하여 요동반도를 청나라에게서 빼앗았다.
만주에 이권을 가지고 있는 러시아는 만주를 위협하는 일본의 요동반도 점령을 좌시할 수가 없었다. 러시아는 동맹국인 프랑스와 협의하고 여기에 독일까지 가담시켜 그 유명한 '삼국간섭'을 감행해 요동반도를 일본으로부터 다시 빼앗아 세 나라가 비교적 공평하게 나누어 가졌다. 독일은 삼국간섭에 가담하여 자오조우만을 확보하는 소득을 올렸지만 러'불 동맹과 영국 사이에서 엄정중립을 지킨다는 독일외교의 원칙이 훼손되어 훗날 독'오 동맹과 러'불 동맹의 충돌로 일어난 1차 세계대전에서 영국과 적이 되어 값비싼 대가를 지불해야 했다. 독일이 삼국간섭에 가담한 것은 영국의 정확한 의도를 오해한 데서 비롯되었는데 이는 독일외교의 최대 실패작이었다.
삼국간섭으로 유럽에서는 독일이 외교적 고립에 직면했지만 극동에서도 중대한 사건이 벌어졌으니 바로 명성황후(이하 민비) 시해사건이었다. 임오군란으로 대원군이 재집권을 하자 민비는 급히 청나라에 원조를 요청하였다. 민비의 요청을 받은 청국군이 대원군을 톈진으로 압송하여 독립국으로서의 조선의 체면은 완전히 땅에 떨어지고 말았다. 그후 갑신정변에서 민비는 다시 한번 청나라의 도움으로 정권을 회복하여 확고한 친청 보수 정책을 취하게 되었다.
그러나 청'일전쟁에서 일본이 승리하자 민비는 일본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서 친일내각을 기용했으나 러시아가 총 한발 쏘지 않고 삼국간섭으로 일본을 굴복시키는 것을 본 후 다시 친러정책으로 급선회하여 친일 인사를 모조리 축출하고 친러내각을 구성하였다. 일본은 분개하였고 미우라 공사는 결국 민비의 원수 대원군과 손을 잡고 곧 해산될 위기에 처하여 불만이 쌓인 조선군 훈련대를 동원하기로 하였다.
결국 군부대신 조희연, 훈련대 대대장 우범선(씨없는 수박으로 유명한 우장춘의 아버지), 동 참령 이두황, 경무사 권영진 등 수도의 핵심 군지휘관들이 조선 훈련대 병사를 동원하여 일본 낭인 50명의 호위를 받으며 서대문에 도착한 대원군과 합류했다. 앞장선 대원군은 미신에 젖어 금강산의 모든 절에서 세자를 위한 불공을 드리고 날마다 굿판을 벌여 국고를 탕진하고 나라의 기강을 어지럽힌 민비를 엄히 질책하는 고소문을 발표하고 누구든지 이 대열의 앞을 막으면 죽음을 면치 못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우범선이 지휘하는 조선군이 궁궐문을 맹공격하여 궁궐수비대인 400명의 시위대를 제압하고 대원군이 궁성으로 진입하였다. 이두황이 궁내를 수색하여 민비를 찾아내자 일본 낭인들이 우범선 입회 하에 민비를 시해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이 사건에 대하여 러시아는 일본을 맹비난하였지만 어디까지나 말뿐이었고 러시아를 믿고 친러배일 정책을 쓰다 비명횡사한 민비의 복수를 위해서 어떠한 무력도 행사하지는 않았다. 한국의 현집권층이 중국을 믿고 미국의 영향권에서 벗어나 자주외교를 추구하는 것 같은데, 뜻은 가상하지만 매우 위험한 일이다. 힘이 약한 약소국이 특정 강대국의 힘을 믿고 다른 강대국에게 저항한다는 것은 명성황후 사건 같은 재앙을 초래할 수가 있기 때문에 보다 정교한 외교정책이 필요한 것이다.
이용재 대구경북개원내과의사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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