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전에 잘 만들어 놓은 드라마가 스토리도 탄탄하다." "실력파들의 연기가 한수 위인 것 같다…."
아찔한 촬영장 교통사고로 제작이 중단된 '늑대'를 대신해 지난 6일부터 방영된 MBC 월화드라마 '내 인생의 스페셜'에 대한 시청자들의 반응이다. 드라마 완성도는 좀 더 지켜봐야 알겠지만 사전제작 드라마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그러나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 드라마를 제작하는 관행에 물들어 있는 방송사는 사전제작에 대해 대체로 부정적이다. 왜 그럴까. 사전제작이 어려운 이유는 무엇이며 촬영장 사고를 막을 대안은 없는 걸까.
◇졸속제작과 촬영장 사고=드라마 제작 현장에서는 지금도 크고 작은 사고가 계속 일어나고 있다. 어느 정도 사고의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게 드라마 촬영의 물리적인 구조라 해도 수난을 당한 연예인을 일일이 손꼽기 어려울 정도다.
지난 97년 홍리나는 드라마 '산' 촬영도중 절벽 아래로 추락, 안면골격 함몰 등 부상을 당했고, 이후 2년간 방송활동을 중단해야 하는 치명적인 피해를 입었다. 명세빈은 '결혼하고 싶은 여자'에서 직접 몸을 날려 구르다 오른쪽 눈밑부터 볼까지 10cm 정도 깊게 긁히는 사고를 당했다. 박지윤은 '비천무'를 찍다가 말에서 떨어져 오른팔 골절 중상을 입었고, 김민정은 두 번이나 부상의 희생자가 되는 우여곡절을 겪었다.
촬영장사고의 가장 큰 원인은 뭐니 뭐니 해도 안전불감증이 빚어낸 사고들이다. 그동안 숱한 불상사가 빚어질 때마다 사고예방책이 도마 위에 올랐지만 여전히 현장에서는 뒷전으로 밀리고 있다.
또 다른 원인은 흔히 '초치기'로 불리는 졸속제작 환경이다. 부족한 제작시간, 항상 지쳐있는 스태프 앞에서 안전은 공염불일 수밖에 없다. 방송 한 달 전 촬영이 시작되면 그나마 다행이고 대부분 1, 2주 전 촬영에 들어가기 일쑤다. 두세 달 전 촬영에 들어가더라도 7, 8부를 넘기면 초치기 제작관행을 면치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무늬만 사전제작인 셈이다.
◇외국에서는 어떻게=외국드라마를 즐겨보는 시청자들은 '시즌'이라는 말에 익숙해진다. 이때 드라마의 시즌은 미국의 드라마 제작방식을 일컫는 말. 방송사가 1년 단위로 계약해 드라마를 제작한 뒤 인기도에 따라 후속 시즌을 계약, 방영하는 방식이다. 현재 미국에서 1년 단위로 계약하는 시즌당 방영편수는 대략 20~30개 내외다. 시트콤 '프렌즈', 'CSI 과학수사대', '섹스 앤 시티' 등 인기 외화들은 대부분 '몇 시즌'이라는 인식표를 달고 있다.
지상파 TV의 자회사에서 드라마를 제작하는 일본도 사전제작이 많은 편이다. 1주일에 편성되는 드라마 편 수도 우리의 3분의 1가량. 우리가 주 2회 방송이 일반적인 반면, 일본은 주 1회, 12회 전후로 완결되는 드라마가 적지 않다. 총분량이 짧은 만큼, 스토리 전개도 빠르고 컷의 길이도 짧은 편이다.
◇사전제작으로 못 만드나=사전제작제의 성공 사례로 방송가에서는 '다모'를 꼽는다. 전편 사전제작을 목표로 했던 '다모'는 결국 방송시작 전 70% 정도를 완성하는 데 그쳤지만 방송이 시작된 뒤의 촬영에도 비교적 여유를 가질 수 있었다.
'다모' 이후 별다른 사례를 찾기 힘들던 드라마 중 최근 사전제작 방식이 외주제작사를 통해 조금씩 늘고 있다. 방송사를 잡지 못해 방영을 못하고 있는 '비천무'는 중국에서 먼저 방송됐다. 배용준 주연의 '태왕사신기'는 국내 편성을 정하지 않은 채 촬영개시를 선언했고, 현재 촬영 중인 감우성·손예진 주연의 '연애시대'는 오는 4월 SBS를 통해 방송될 예정이다.
사전제작의 취지가 아무리 좋더라도 가장 큰 걸림돌은 역시 시청률 때문이다. 시청자의 반응을 흡수해 가며 순식간에 드라마의 방향을 바꾸는 '기동력'에 맛을 들인 방송가 제작진에게 사전제작론은 치명적인 결함이다.
방송3사 드라마 제작진은 "대본과 캐스팅 문제가 선결되면 일부 사전제작은 가능하다"면서도 "시청률에 흔들리지 않는 완벽한 사전제작은 아직 힘든 실정"이라고 입을 모았다.
노진규기자 jgroh@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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