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경주 옛 절터 여행

천년 세월 걷어내면 찬란한 부처님 佛法이…

경주여행. 수학여행부터 시작해 수없이 다녀온 곳. 하지만 경주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나. 경주여행도 아무런 준비 없이 가면 여느 관광지와 마찬가지로 훑고 지나가는 여행이 되기 쉽다. 으레 불국사와 석굴암, 박물관에 치우친 여행이 되기 십상. 하지만 신라천년의 문화가 오직 이곳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조금의 시간과 여유만 가지고 찬찬히 둘러보면 의외의 알찬 여행을 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옛 절터가 그런 곳이다. 어찌보면 절터는 휑뎅그렁하다. 석탑 하나만 남아 천년의 세월을 지키는가 하면 표지판만 덩그러니 서있는 곳도 있다. 황량하게 보일 법하지만 옛 절터 여행은 여행자의 상상력에 따라 그 맛이 달라진다. 터만 남았어도, 석재들만 뒹굴고 있어도 이곳에선 천년 전의 모습을 그대로 그릴 수 있고 천년 전의 사연들을 들을 수 있다. 옛 절터는 그렇게 천년의 세월을 되새김질해 준다. 황룡사지가 그랬고, 사천왕사지가 그랬다. 주춧돌만 남아 텅 빈 듯한 그곳에 서면 의외로 찬바람도 잊을 만큼 마음이 편안해진다.

▶황룡사터

경주IC를 나와 포항으로 가는 국도를 따라가다보면 보문단지 입구 네거리 못미처 왼쪽으로 황룡사터를 알리는 큰 입간판이 벌판에 서 있다. 황룡사터는 발굴된 담장 안쪽만 해도 2만5천여 평이나 된다. 신라에서 가장 컸던 사찰. 하지만 지금은 터만 남았다. 절터에 있던 민가들을 이주시키고 1976년부터 1983년까지 발굴조사도 끝낸 상태. 드넓은 절터 위에 박혀 있는 주춧돌들만 옛 영화를 기억할 뿐이다.

황룡사9층목탑 터에는 이 목탑을 받치고 있던 64개의 주춧돌이 촘촘히 박혀 있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이 목탑은 신라가 백제의 장인 200여 명을 모셔와 3년간 약 80m 높이로 완성했다. 하지만 고려고종 25년 몽고의 침입으로 가람 전체가 불타면서 목탑도 함께 소실됐다.

맞은편의 분황사는 원효대사와 자장율사가 거쳐간 사찰이다. 제일 눈길을 끄는 것은 3층 모전석탑. 구들장으로 많이 쓰는 편편한 안산암을 벽돌 모양으로 다듬어 쌓았다. 원래는 7층이나 9층이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탑의 4개면에 부처님을 모신 감실을 만들고 금강역사상을 조각했다. 이 탑 외에 추사 김정희 선생의 글이 새겨진 비석좌대와 우물인 석정 등이 볼거리다. 우물은 통돌을 가져와 외곽은 8각형으로, 안쪽은 원형으로 깎아 만들었다.

▶사천왕사터

국립경주박물관에서 울산으로 가는 7번국도를 따라가면 왼쪽으로 능지탑, 선덕여왕릉, 사천왕사터가 차례로 나온다. 경주박물관에서 1.9㎞정도 남쪽으로 내려가면 '하강선마을' 입구에 이르고 도로 바로 옆에 앙증맞은 당간지주가 서 있다. 당간지주 바로 위쪽이 사천왕사터다. 지금은 금당터와 2기의 목탑이 있던 자리만 남아 있다. 남아 있는 주춧돌도 제멋대로 뒹굴고 있다. 사천왕사는 불력으로 당나라의 침략을 막기 위해 지어졌다. 하지만 일제가 강당터를 가로지르는 철로를 놓으면서 절터가 상당부분 훼손됐다. 그나마 2011년 동해남부선인 이 철로가 철거된다니 다행이다.

절 앞 도로변 쪽에 자칫 지나치기 쉬운 두 개의 비석좌대가 남 있다. 거북모양이 선명하나 아쉽게도 목이 잘린 상태. 도로 건너편 논 한가운데 소나무 숲이 있는 곳은 망덕사터다. 이곳엔 13층인 두 개의 목탑이 있었다.

▶황복사터

사천왕사터에서 나와 경주시내쪽으로 향하다 네거리서 우회전하면 포항으로 가는 국도다. 철길이 지나는 굴다리를 지나면 바로 오른쪽으로 최치원 선생 독서당이 있고 200여m를 더 가면 오른쪽으로 황복사터를 알리는 표지판이 있다. 왼쪽의 황룡사터 남쪽의 석탑 있는 곳은 미탄사터다. 들판을 지나 마을에 들어서면 3층석탑이 모습을 드러낸다. 국보 제37호로 지정된 구황리삼층석탑이다. 감은사지 석탑보다 10년 늦지만 신라양식을 잘 보여주는 석탑이다. 절터는 없고 석탑만 남아 있다. 탑 앞쪽 논 한가운데에 있는 돌무더기는 폐왕릉으로 추정된다.

▶천관사터

천관사는 김유신 장군과 기생인 천관의 전설이 얽혀 있는 곳이다. 젊은 시절의 김유신 장군은 기생 천관과 어울렸다. 어머니의 꾸중을 듣고 다시는 그녀의 집으로 가지 않겠다고 맹세한다. 하지만 어느날 술에 취해 집으로 돌아가던 중 그가 탄 말은 늘 가던 버릇대로 천관의 집앞에 멈추었다. 정신이 든 김유신은 말의 목을 베고 돌아섰다. 그후 천관은 그의 무정함을 원망하는 원사(怨詞)를 짓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김유신은 삼국통일을 완성한 후 천관의 집을 찾아 그곳에 천관사라는 절을 세우고 그녀의 명복을 빌었다.

절터는 신라 오릉 동쪽 논 가운데에 있다. 현재 폐탑 1기의 기단석만 남아 있고 일부 석재도 논둑에 노출되어 있다. 탑재도 많이 유실돼 천관의 이루지 못한 사랑을 대변해준다. 인근의 김유신 장군 생가의 연못인 재매정이 잘 단장되어 있는 것과는 대조를 이룬다.

◇ 알고 가면 감동 두배

경주는 다른 어느 지역보다 아는 만큼 더 잘 보이는 곳이다. 가능하면 문화유산해설사의 도움('경주여행에 도움되는 사이트' 참조)을 받고 미리 인터넷 등에서 자료를 찾는 등 사전준비를 철저히 하고 가면 좋다.

경주엔 문화유산해설을 곁들인 답사여행을 이끄는 단체나 여행사가 많다. 경주시에서 경비 일부를 지원해 무료로 안내를 받을 수도 있다. 수시로 프로그램이 달라지기 때문에 떠나기 전 각 사이트를 한번 훑어보는 것이 좋다.

특히 옛 절터를 찾는 여행이나 경주남산을 찾아가는 여행이라면 문화유산해설은 필수다. 주말부터 시작하는 봄방학이나 토·일요일에 프로그램이 집중되어 있다. '신라사람들'에선 경주지역 테마투어버스를 운영한다. 문화재강사가 교과서를 중심으로 한 내용으로 재미있고 상세한 유적지 및 문화재 설명을 해준다. 화·목·토요일 코스는 석굴암, 분황사, 배리석불입상, 국립경주박물관이고 수·금·일요일 코스는 불국사, 괘릉, 탑골, 안압지, 탁본체험 등이다. 비용은 어른 3만5천원, 청소년 3만 원.

♣ 경주여행에 도움되는 사이트

경주시 문화관광 홈 054-779-6396(시청 문화관광과) http://culture.gyeongju.go.kr/

신라문화진흥원 054-746-1950. www.shilla.or.kr

신라사람들 054-748-7707. www.kjman.co.kr

경주남산연구소 054-745-2771. http://kjnamsan.org

신라문화원 054-774-1950. www.silla.or.kr

신라체험나라 054-772-5173. www.dabsa.co.kr

글·박운석기자 dolbbi@msnet.co.kr

사진·정재호편집위원 newj@msnet.co.kr

사진: 경주 남산 옆의 낭산에 자리잡은 황복사터. 국보 제37호로 지정된 구황리삼층석탑만 남아있다 2. 화랑 김유신과 기생 천관의 사랑이 얽혀 있는 천관사지. 사진 가운데 기와집 너머 개울건너편에 김유신 장군 생가의 연못이었던 재매정이 있다 3. 분황사3층모전석탑. 앞쪽에 우물 석정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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