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윌리 증후군 '우리 아이도 울 수 있다면'

선민(13개월)이는 얼핏 보면 3, 4개월 난 아기로 보인다. 제대로 울지도 못하고 숨을 잘 못 쉬어 세상 밖으로 나오자마자 인큐베이터 신세를 져야 했다. 태어날 당시 몸무게도 1.9㎏에 불과했다. 병명을 듣기 전까지는 예정보다 한 달 일찍 태어난 탓에 몸이 약한 것으로만 여겼다.

프래드 윌리 증후군(PWS). 선민이 병명이다. 일부 염색체(15번) 손상으로 발육부진, 지능발달 미숙으로 인한 학습장애가 오는 병이란다. 또 자라면서 먹고 싶은 욕구를 억제하지 못하게 돼 비만이 되기 쉽다는데 다행히 아직까지 그런 징후는 나타나지 않았다.

의사 선생님들도 사례를 찾기 힘든 희귀병이라는데 내가 병명을 들어보았을 턱이 없다. 다만 완치라는 말을 입에 올리기 어렵다는 사실에 고개를 떨구었을 뿐이다. 나도, 남편도 애타게 기다리던 아이였건만 조그만 몸에 그런 병을 안고 있을 줄은 몰랐다.

선민이는 혼자선 목을 가누지도, 앉지도 못한다. 잘 울지도 보채지도 않는다. 잠자는 시간이 대부분이다. 사정을 모르는 사람들은 아이가 참 순하다고 칭찬이다. 그렇다고 일일이 설명해줄 수도 없는 일. 겉으로는 웃어넘기지만 그 말을 들을 때마다 가슴 속은 시퍼렇게 멍이 든다.

아기들은 자신이 필요하면 울음으로 의사를 표시하게 마련 아닌가. 선민이는 때맞춰 우유를 안 줘도, 기저귀가 젖어도 울지 못한다. 다른 아이들처럼 그러지 못하는 것이 속상하다. 병실을 돌아다니는 아이들이 제각기 무슨 병을 앓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아이들이 부럽다.

나란 사람을 만나 고생하는 남편(37)에게 미안하다. 남편은 시댁의 반대를 무릅쓰고 아들(10)이 딸린 나를 기꺼이 아내로 맞아준 사람이다. 덕분에 결혼식도 못 올리고 함께 살게 됐지만. 자신의 피가 섞이지도 않은 아이를 아껴준 사람. 다행히 아이도 남편을 잘 따랐다. 선민이를 낳은 것이 남편에게 힘이 될 줄 알았는데 착한 그에게 또 다른 짐을 안겨준 셈이 돼 버렸다.

홀로 사시는 시어머니에겐 선민이가 아프다는 사실을 차마 알리지 못했다. 시어머니는 아이 몸이 약하다는 정도만 아실 뿐이다. 선민이를 낳은 뒤론 나를 대하시는 태도도 조금 누그러지셨는데 차마 사실대로 털어놓을 수 없었다. 건강도 좋지 않으신데 걱정을 끼쳐드릴 수는 없는 일이다.

선민이에게 들어가는 돈이 만만치 않다. 병원비만 이미 1천만 원. 전세보증금은 이미 다 날리고 집도 월세(월 25만 원)로 옮겨야 했다.

나도 한때 낮에는 선민이를 돌보고 밤엔 섬유공장에 나가봤지만 일주일 만에 포기했다. 남편이 출근하고 내가 퇴근하기까지 홀로 남겨질 수밖에 없는 선민이 때문이었다. 섬유공장에서 일하며 혼자 가족의 생계를 짊어진 남편의 처지가 딱하다. 선민이가 나을 수 있다는 말을 들을 수 있다면 남편의 처진 어깨도 펴질 텐데….

박정민(36·여·경북 칠곡군 왜관읍) 씨는 선민이를 낳은 뒤 잠시도 마음을 놓지 못했다. 이는 그의 남편도 마찬가지.

"태어나자마자 인큐베이터에 들어간 선민이를 보며 마음을 졸였어요. 남편은 하룻밤 자고 난 뒤 선민이가 숨을 쉬고 있으면 '아직 살아있구나' 하고 안심했다가 이튿날 숨을 멈출라치면 '이 아이는 우리하고 인연이 아닌가 보다' 라고 생각하길 반복했대요."

박씨의 바람은 소박하다. 선민이가 또래 아이들처럼 웃고 우는 평범한 아이가 될 수 있기만 바랄 뿐이다. 하지만 미래는 그리 밝지 못하다. "자랄수록 음식을 자제하지 못해 옆에 붙어서 말리지 않으면 비만한 아이가 되고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할 가능성이 크대요. 지능도 또래 아이들보다 떨어지고요. 나이가 들수록 선민이가 받을 상처는 커지겠지요. 선민이 몸에서 병을 밀어낼 방법은 없는 걸까요?" 채정민기자 cwolf@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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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이선민 군은 어머니 박정민 씨의 도움을 받아야 겨우 앉을 수 있다. 박씨가 이름을 불러도 또래 아이들과 달리 제대로 알아듣지 못한다. 선민이는 자신에게 닥쳐올 미래에 대해 안타까워하는 어머니의 마음을 알고 있을까. 이상철기자 finder@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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