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일 대구시 중구 교동 전자상가를 찾은 40대의 한 여성. 이웃이 왠지 자기 집을 감시하는 것 같은 느낌을 지울 수 없어 도청기나 몰카 탐지기를 샀다. 남편과의 사소한 말다툼이 다음 날엔 어김없이 이웃 주부들의 입에 회자가 되더라는 것. 이 여성은 집안에 보이지 않는 눈과 귀가 있는 것 같은 불안감에 휩싸여 있다가 자구책으로 탐지기를 찾아 나섰다고 했다.
이곳에서 만난 다른 한 여성은 "주변사람들이 내 사생활을 속속들이 알고 있다. 노이로제에 시달리다가 혹시 내 몸에 도청장치가 없는지 탐지를 부탁했다"라며 울먹였다. 이처럼 교동시장 내 전자상가 등엔 몰카와 도청장치 탐지기에 관한 문의가 평소보다 30~40%정도 늘면서 판매도 늘고 있다고 한다.
불법 도청기와 몰카를 탐지해 내려는 사연과 이유도 각양각색이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선거 입후보자와 참모들은 자신의 선거 사무실을 대상으로 이뤄질지도 모를 도청을 막고 싶다며 탐지 업체를 찾고 있다. 법원에서 소송을 벌이고 있는 사람들이 "송사 상대편이 통화내용을 알고 있더라"며 탐지기를 설치하거나 구입하고 있다.
이밖에도 △서로의 과실을 찾아내려는 이혼 앞둔 부부 △한 아파트 단지를 두고 경쟁하는 부동산 중개업자 △재건축 조합의 평당 보상가격 협상내용 △임금협상을 앞둔 노조 사무실의 기밀 유지 등도 몰카'도청 탐지의 수요를 낳고 있다. 경쟁업체의 덤핑 공세를 차단하겠다며 자사 외국인 바이어 숙소에 몰카나 도청기를 탐지하는 기업도 있다.
정치인이나 유명인사를 단골로 둔 식당이나 모텔의 경우 도청 탐지업체에 의뢰해 점검을 한 후 '불법 도청 안심구역'이라는 패찰을 붙여놓기도 한다. 이렇게 하면 실제 매출도 증가한다는 게 업주들의 귀띔이다.
가정에서 무심코 사용하는 무선 전화기도 불법도청에 노출돼 있다. 집밖에서 전화선에 간단한 장치만 부착하면 텔레뱅킹으로 다이얼링을 할 때 손쉽게 계좌번호와 비밀번호 정보가 그대로 유출될 수 있다.
몰카와 불법 도청에 대한 두려움이 상호불신을 낳고, 이런 상호불신은 이해 당사자간 감시를 위해 다시 몰카와 불법 도청의 확대 재생산을 부추긴다. 몰카와 도청, 그 악순환의 고리.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불안함의 현주소이다.
우문기기자 pody2@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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