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단골맛집을 찾아서 鼎談情論> 패션 디자이너 박동준과 카페 프란체스코

어떤 분야든 35년을 외길로 걸어왔다면 그 발자취가 결코 녹녹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것도 경쟁이 치열한 창의적 분야라면 더욱 그렇습니다.

한 걸음 한 걸음 힘들었던 산행도 정상에 서면 한 줄기 시원한 바람에 피로가 씻겨가면서 비로소 여유가 생기듯, 인생의 길도 산행과 비슷하지 않을까요. 그래서 오랜 프로의 길이 아름답게 보일지도 모릅니다.

패션 디자이너 박동준(55)씨.

그녀는 아직도 옷을 갈무리 할 때면 한 손으론 위 깃을 쥐고 다른 손으론 하단을 소중히 받쳐 듭니다. 그녀에게 패션은 생활이자 삶과 직결되기 때문입니다. 카페 프란체스코에서 검정 투피스를 입은 박씨와 맛 토크를 가졌습니다.

봄을 재촉하는 겨울 해거름이 창을 통해 긴 여운을 드리운 늦은 오후, 대구 남구 대봉동 P&B아트센터 6층 카페 프란체스코에서 만난 박씨 앞에는 그릴에 살짝 구운 빨강, 노랑, 파랑 색의 파프리카와 버섯, 호박, 가지 등 웰빙 모듬야채구이가 발사믹과 오리엔탈 소스와 나란히 놓여 있었다.

"점심과 저녁은 주로 일식, 아니면 이탈리아식을 즐겨 먹어요. 그 중에서도 채소류와 버섯류가 섞인 샐러드나 샌드위치를 특히 좋아하죠."

카페 프란체스코는 박씨가 하루에도 서너 번 찾는 단골집. 박씨의 숍은 카페 프란체스코와 같은 건물에 있기도 하지만, 식사나 고객 접대를 위해서도 찾지만 무엇보다 외국여행이 잦은 박씨가 현지에서 맛 본 맛있는 음식이나 소스를 설명하면 바로 그 맛을 재현해 내는 곳이기 때문이다.

"최근 홍콩의 한 백화점에서 먹어 본 아보카드 샐러드와 땅콩'레몬향의 소스가 인상적이었다"는 박씨는 이어 홍콩공항에서 맛 본 버섯 샐러드를 그림 보듯 설명을 했다. 직업 탓인지 색감이나 재료의 신선도를 요리 전문가 이상의 눈썰미로 풀어냈다. 자연히 프란체스코 주방에선 요리 레스피의 국제적인 벤치마킹이 이뤄질 수밖에 없다.

"10년 전부터는 아침을 꼭 챙겨먹어요. 그것도 주로 김치찌개와 된장찌개로 넉넉하게 밥을 먹죠."한식으로 충분히 배를 채우면 하루가 든든할 뿐 아니라 다른 스타일의 음식을 즐겨도 아쉬움이 남지 않더라는 것.

"끓는 물에 질 좋은 멸치를 한 움큼 넣고 파, 청양고추, 마늘, 고추장만으로 심심하게 맛을 내면 깔끔한 뒷맛에 정신이 번쩍 들면서 하루 일이 피곤할 줄 모르고 지나가게 됩니다."

김치찌개도 약간 익은 김치를 쓰면 더욱 감칠맛이 난다는 말을 덧붙였다.접시의 음식이 반쯤 지어갈 무렵 화제를 돌려봤다. 디자이너 일을 그만두고 싶을 때는 없었느냐고.

"패션 디자이너는 천직으로 알지만 숍의 경영까지 맡게 되자 책임감에 대한 스트레스와 압박감이 없다면 거짓말이겠죠."

이럴 땐 전시나 연극 등 문화관람 활동으로 재충전한다. 여가활동은 작품 활동의 영감을 얻는 계기가 된다. 그래서 그녀의 손엔 메모장이 떠나지 않는다. 여행이나 심지어 차를 마시다가도 영감이 떠오르면 바로 스케치에 들어간다. 단순한 일상생활마저도 창작성과 연결짓는 프로의 기질이다.

그래서인지 1972년 당시 22살의 나이로 패션업에 진출, 이듬해 맥향 레스토랑에서 첫 데뷔 쇼를 가진 이후 백 수십 회에 이르는 패션쇼를 이끌어 온 그녀지만 지금도 옷을 소중히 여기는 기본에 충실해야 한다는 초심을 견지하고 있다. 다만 세월의 풍화에 달라진 것이 있다면 블랙과 화이트 계열만을 선호하던 초기 색감이 변해 회색과 하늘빛도 좋아졌고 최근엔 보다 컬러풀한 색상이 작품에 반영된다는 것. 성숙에서 완숙으로 접어든 까닭일까. 박씨의 뒷 창 너머 퍼지는 노을빛이 여느 때보다 아름다웠다.

◆카페 프란체스코

이탈리안&프렌치 레스토랑인 카페 프란체스코는 패션을 전공한 주인 김희정씨의 남다른 감각에 따라 짙은 감색톤의 실내로 꾸며져 있다.

주로 파스타와 리조또, 그라탕 등 20여종의 이탈리아, 프랑스 풍의 요리를 제공하고 있는 곳으로 전 메뉴가 웰빙메뉴를 지향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특히 올리오 야채 리조또는 올리브유에 버섯, 가지, 호박, 죽순, 마늘을 얹고 뚝배기에 끓인 라이스류로 그 맛이 담백하고 쉽게 물리지 않는다.

이곳의 명물인 실외 테라스는 밤이면 신천을 끼고 있어 야경이 멋진 스카이 라운지 같은 느낌을 준다. 다양한 와인도 갖추고 있다. 30명 수용. 053)423-9625

사진.박순국 편집위원 tokyo@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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