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춘래불사춘

팔공산 응달진 봉우리는 아직 눈모자를 쓰고 앉았는데, 비 온 뒤 날씨가 마치 봄날 같다. 떠나길 주저하는 겨울의 끝자락은 계절의 가장자리를 서성대지만, 대지에 일렁이는 봄기운은 어찌할 수 없는 일이다.

머지않아 풋풋한 흙냄새 위로 새싹 움트는 소리가 산자락에 스밀 것이다. 이장희의 시 '봄은 고양이로소이다'에 나오는 구절처럼 '꽃가루와 같이 부드러운 고양이의 털에 고운 봄의 향기가 어리울' 것이다.

올봄은 유난히 추웠던 겨울 너머로 오는 것이어서 더욱 반가울지도 모른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라 호들갑을 떤다. 봄이면 으레 등장하는 이 말은 '호지무화초(胡地無花草)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란 이백의 시구에서 유래한다.

여기에는 기막힌 사연이 들어 있다. 중국 한나라 원제는 걸핏하면 쳐내려오는 북방의 흉노족을 달래기 위해 후궁을 흉노왕에게 시집보내기로 했다. 그런데 누구를 보낼 것인가 고민하던 원제는 궁녀들의 초상화집을 가져오라고 했다.

그리고는 그 중 가장 못나게 그려진 왕소군(王昭君)을 찍었다. 그런데 흉노의 땅으로 떠나는 왕소군의 실물을 본 황제는 땅을 치고 후회를 했다. 궁녀들의 초상화는 궁중화가 모연수가 그렸는데, 다른 궁녀들과 달리 미모에 자신이 있었던 왕소군은 모연수에게 뇌물을 바치지 않아 가장 못나게 그려졌던 것이었다,

황제의 사랑 한번 받아보지 못하고 북방으로 팔려가는 왕소군의 눈에는 눈물이 고였고, 뇌물을 받고 그림을 엉터리로 그린 모연수는 목이 날아갔다. 이같이 정략결혼의 희생양이 되어 흉노의 땅에서 봄을 맞았던 왕소군의 심정을 대변해서 읊은 시가 바로 '춘래불사춘'이다. '오랑캐 땅에는 꽃도 풀도 없으니, 봄이 와도 봄 같지 않구나'라는 것이다.

하기사 꽃 피고 풀 무성한 내 땅에서 봄을 맞이한들, 봄이 정녕 봄 같은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봄이란 미인(美人)처럼 그 고운 이면에 또 슬픔을 내재하고 있는 것을…. 그래서 일찍이 김소월은 '실버들 천만사 늘여놓고도 가는 봄을 잡지도 못한단 말인가'라고 봄의 무상함을 노래하지 않았던가.

신태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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