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 이후의 삶이 새해부터 화두다. 평균수명은 늘어나면서도 정년은 앞당겨지는 상황에서 40~50대 직장인들에겐 이미 발등의 불로 다가왔다. 은퇴이후 넉넉하지 않은 비용으로 좀더 여유있고 풍요롭게 살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그 대안으로 떠오른 것이 '은퇴이민'. 3년 이상의 준비를 거쳐 6개월전 필리핀 바기오로 은퇴이민을 떠난 정원영(62.육군 중령 전역)씨 부부를 현지에서 만났다.
◆"인생의 제3기 행복"
정원영씨는 지난해 말 바기오에서 행복한 삶을 살고 있다는 언론 보도가 있은 후 유명세를 톡톡히 치르고 있었다. 하루에 수십통씩 걸려오는 문의전화와 매주 한국에서 찾아오는 손님들로 인해 눈코 뜰새조차 없이 바빠졌다.
"일약 스타가 된 기분입니다. 도움이 필요해 찾아온 노후설계 문의자들을 위해서는 최대한 도울 계획입니다." 그는 필리핀에서의 은퇴이후의 삶에 대한 정보를 주는 무료봉사를 하기로 맘먹었다. '그곳에서 외화를 쓰며 편하게 사는 게 자랑이냐?'며 비아냥거리는 네티즌도 적지않지만 바기오에서 사업을 하려는 사람들의 문의도 잇따르고 있다.
지난 8일 밤 직접 와서 보라며 기자를 초대한 정씨는 "30세까지는 부모에 의존한 1기, 60세까지는 아내와 자식을 위한 삶으로 2기, 60세 이후는 자신을 위한 3기인생입니다"며 "누가 뭐래도 바기오에서 200여만 원으로 3기인생을 행복하게 살고 있다"고 밝혔다.
◆그의 신개척지 '바기오'
23년동안 군생활을 하다 육군 중령으로 전역한 정씨는 한국투자신탁에서 일하다 IMF이후 퇴직했다. 재취업도 어려웠다. 위안이 되는 건 매월 고정수입인 군인연금, 국민연금, 월남 참전 보상금 등 200여만 원. 연금을 쪼개쓰며 남은 여생을 좀더 편안하게 보낼 수 있는 방법을 찾을 수밖에 없었다. 그때부터 그는 은퇴이민을 결심하고 3년간 동남아현지를 답사한 결과 '바기오'를 찾아냈다.
정씨는 "이곳 기후는 항상 봄, 가을 날씨기 때문에 생활에 적당하다"며 "뒤늦게 이런 곳을 발견한 것은 작게나마 신대륙을 발견한 기분이었다"고 회상했다.
그는 6개월여동안 살아본 바기오시의 특징을 '8무(無) 7다(多)'로 표현했다. 그가 꼽는 '8무'로는 물(고산도시), 무더위, 에어컨, 평평한 땅, 낡은 트라이시클(Tricycle.세발 자전거), 카지노, 골프장 여자 캐디, 바가지 요금등이었다. '7다'는 구름, 소나무, 한국사람(4천∼5천 명으로 전체의 1%), 교육기관(종합대학 7곳, 단과대학 10여곳, 국제학교 20여곳), 영어어학원(30여곳), 심한 경사 등.
정씨는 "하지만 심각한 빈부격차, 사회간접자본 빈약, 문화시설 부족, 의료혜택 미비 등 불편한 점도 적잖다"고 지적했다.
◆200만원으로 귀족처럼 산다
정씨는 연금으로 나오는 1개월 200만원으로 바기오에서 풍요롭게 살고 있었다. 그는 지난해 7월 바기오 북쪽 '브렌트 우드(Brent Wood)'라는 고급 주택단지에 3층짜리 별장을 월세 40만원에 2년간 계약했다. 이 집은 1층에 벽난로가 있는 거실과 부엌이 있으며 2층 손님방 2개, 3층 침실방 2개의 구조를 갖고 있다. 가족, 친척, 친구들이 찾아와 며칠씩 머물다 가기 때문에 손님방도 필요했다.
농수산물 가격도 한국의 절반정도. 차 기름값도 딱 절반수준이다. 특히 인건비가 싸 20만원이면 가사도우미 2명(5만원×2)에 운전기사(7만원)까지 부릴 수 있다. 좀 더 여유가 된다면 현지 정원사, 집사(12만원)까지 고용할 수 있을 정도.
골프 평생 회원권은 600만원 정도. 캐디비 6천원만 내면 18홀을 돌 수 있다. 이 때문인지 골프를 즐기는 정원영씨 부부는 1주일에 3, 4번씩 필드에 나간다. 승마의 경우도 3천원만 내면 1시간동안 자신의 신체에 맞는 말을 골라 탈 수 있다.
정씨는 "바기오에서 쓰는 200만원은 한국에서 700만∼800만원의 가치가 된다"고 말했다. 필리핀 바기오에서 권성훈기자 cdrom@msnet.co.kr
사진 : 정원영 씨 부부가 지난 8일 밤 현지에서 모임을 끝낸 후 집으로 돌아와 벽난로 앞에서 차를 마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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