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 고대 전쟁사 박물관 / 존 워리 지음 / 임웅 옮김 / 르네상스 펴냄
인류사(史)에서 전쟁의 기록을 빼버린다면?
아마도 지금처럼 역사책이 두툼해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홀쭉해진 역사책은 그다지 흥밋거리를 던져주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또 무기를 팔아 번 돈으로 강국이 된 미국이 지금처럼 약소국에 큰 소리를 칠 수 있었을까. 사내 아이들이 장난감 권총을 갖고 싶어 엄마를 조르는 일은 볼 수 없었을 것이다. 리들리 스콧(영화 '글래디에이터'를 만든 감독)은 우리에게 남녀의 애정을 그린 영화감독으로 더 알려졌을지도 모른다.
이런 상상은 무한하다.
그만큼 세계의 역사에서 전쟁은 거의 역사의 대부분의 페이지를 차지할 만큼 인간은 전쟁과 더불어 역사를 창출해 나갔다. 전쟁은 인류가 이뤄낸 유·무형의 자산이 총동원되는 일대 사건이다. 그리고 인류 탄생 이래로, 끊이지 않는 행사였다.
전쟁은 전투원이 피를 흘리는 것을 원했지만 항상 그런 것은 아니었다. 피 흘리지 않는 전쟁이 섞여 있는 전쟁사에는 인간사가 집약돼 있다. 삶과 죽음을 오가는 전장(戰場)이라는 극단적 상황에서는 더 집약적이고 다양한 인간 본래 모습들이 오간다. 전쟁은 또 파괴를 수반했지만 모든 것을 무너뜨리지는 않았다. 승리를 위한 과학의 발전을 이끌었고, 인류의 삶에 기여할 발견을 이뤄내기도 했다.
그런 의미에서 전쟁사는 흥밋거리를 넘어서 인류사를 이해하는 중요한 학습도구가 된다.
책 '서양 고대 전쟁사 박물관'은 인류사와 같이 해온 전쟁사에서 특히 그리스의 등장에서 로마의 멸망까지 1천년 이상 유럽과 근동을 지배했던 전사와 전쟁에 대해 집중한다.
책은 지금으로부터 3천300여 년 전인 기원전 1천300년 경, 아가멤논, 아킬레우스, 오디세우스, 헥토르, 파리스 등 수많은 전쟁 영웅들이 세계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던 트로이 전쟁에서 시작한다.
그리고 서방과 동방 사이의 최초의 세계대전인 페르시아 전쟁, 세계의 통합을 부르짖은 알렉산더 대왕의 동방 원정으로 촉발된 그리스와 동방 세계의 전쟁, 지중해의 패권을 놓고 세차례에 걸쳐 싸운 로마와 카르타고의 포에니 전쟁, 그리고 율리우스 카이사르를 로마의 영웅으로 만들었던 로마와 갈리아의 전쟁 등 1천년을 훌쩍 뛰어넘는 기간동안 유럽과 근동의 역사 속에 등장하는 전쟁과 수많은 전투 이야기를 전한다.
하지만 단순히 전쟁에 대한 기술적인 설명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은퇴한 케임브리지 학자인 저자 존 워리는 다양한 전술과 전략, 수많은 전투도와 그것에 수반된 즉, 당시 병사들이 입었던 군복, 군사 장비 그리고 병력 배치 등을 그려 넣어 전투의 상세함과 그 생동감을 전달한다.
고대 세계 문명 전반에 대한 전문적 식견으로 전쟁사를 기술한 저자는 전쟁에 얽힌 이야기를 잡다하게 풀어놓으면서도 핵심적인 사실에 대한 집중력을 놓치지 않고 있다.
저자는 그리스 로마 세계의 전체 역사를 어떻게 보고 있는가. 존 워리는 야만에 맞선 기나긴 전쟁으로 간주한다.
"그리스 도시국가들과 로마 장군들 그리고 제위 요구자들의 치명적인 대립은 단지 좌절과 쇠퇴를 가져오는 간주곡들에 불과하다. 가끔씩 그리스인들과 로마인들은 야만에 맞선 전쟁을 자유를 위한 전쟁으로 생각했지만, 전쟁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부득이하게 자유가 희생되었다. 사실 그것은 자유를 위한 전쟁이라기보다는 읽고 쓰는 능력을 위한 전쟁이었다. "
무엇보다 14개의 각 장에 '고대의 문헌들'이라는 표제를 달아 역사적으로 유명한 전쟁들을 모호한 방식으로 설명, 독자들에게 그 해석을 맡기는 경향에서 탈피한다. 저자는 이를 통해 그 시대의 학자들에 대한 정보를 제공해주는 것은 물론 기록된 사건들의 출처를 언급함으로써 신뢰를 높여준다.
저자는 "연대기는 지중해와 서아시아의 사건들을 더 멀리 동족의 문명 중심지들에서 발생했던 사건들과 서로 관련시키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사실로 남는 것은 이 책에서 다루고자 하는 기간 동안 대부분의 기록된 역사가 그리스와 로마의 역사라는 점이다"라고 말한다.
최두성기자 dschoi@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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