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서가에서-장바닥에 비단 깔기

수운 최제우 선생께서는 대구 장터에서 목이 잘리었다. 동학의 창시자로 잘 알려져 있는 선생은 경주가 고향이다. 동학혁명하면 의례 전라도 지역을 떠올리게 되는데 선생이 큰 깨달음을 얻은 곳도, 그리고 처음으로 가르침을 편 곳도 모두 경주 인근이다. 한민족 역사상 가장 위대한 실천적 사상가중의 한분이신 선생이 도달하고자 했던 이상향은 '비단이 깔린 시장'이다. 묘하다. 비단은 무엇을 의미하고 시장은 무엇을 상징하는 것일까?

육체와 정신 또는 물질과 마음의 문제는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의 전통적인 숙제였다. 이 대립을 해소시키려는 수없이 많은 시도가 있어왔다. . 하지만 결국 동서양을 막론하고 육체와 물질은 부정적이고 악마적인 것으로, 정신과 마음은 선하고 순결한 것으로 굳어져 왔다. 육체적 쾌락과 물질적 행복을 추구하는 모든 것들이 모이는 곳, 시장에 대한 부정적 편견은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양반들은 시장에 관련된 모든 사람들을 쌍놈으로 무시한다. 하지만 그들의 비단옷도 쌍놈들이 만든 것을 시장에서 사야한다. 'cogito, ergo sum'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고 선언하고 우주적 가치를 추구하는 정신이라 하더라도 육체가 없이 성립될 수 없는 노릇이다. 양반들은 학문이라는 지식 정보시스템을 통해 저자거리의 민중들을 지배한다. 학문이라는 정신적 가치의 집약물은 원래 삶의 현장인 시장에서 출발한 것이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마치 다른 고매한 곳에서 온 것처럼 행세하기 시작한다. 비극의 시작이다. 고향을 부정하고 어머니를 부정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삶의 현장과 분리된 지식은 이무기처럼 용이 되지 못한다. 결코 지혜가 될 수 없다. 선생은 이 운명적 분리가 종식되는 곳을 유토피아로 보는 것이다. 지식 정보는 시장의 사람들을 향하고 시장은 정신적 가치를 향하여야 한다. 정신적이고 교육적인 경제 공생체가 만들어 질 때 일단의 다툼과 괴리는 종식될 것이라 선언하신 것이다.

국조 단군이 태백산에 신시(神市)를 열었다는 사실, 그리고 신라 시대 화랑들이 수련과 공부를 위해 스승이 있는 곳을 찾아가 머물면서 시장을 열었다는 사실은 그래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황보 진호 하늘북 커뮤니케이션즈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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