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화가루 날리는/ 외딴 봉우리// 윤사월 해길다/ 꾀꼬리 울면// 산지기 외딴 집/ 눈 먼 처녀사// 문설주에 귀대이고/ 엿듣고 있다.'(박목월의 '윤사월' 전문).
'뒷내 자갈밭 패랭이꽃은/ 가물이 들수록 붉어나고/ 황룡골 산중 복분자는/ 철이 겨워 검어난다// 황룡골 산중 우는 새여/ 사월 오월 해도 길다//….'(김동리의 '황룡골의 노래' 중에서).
한국문학의 거봉인 김동리(金東里·1913~1995)·박목월(朴木月·1916~1978) 선생의 고귀한 예술적 생애와 문학적 업적을 기리기 위해 세운 '동리·목월문학관'이 3월 24일 개관을 앞두고 마무리 작업이 한창이다.
40억 원의 사업비를 들여 2004년 11월 착공한 동리·목월문학관은 토함산 자락인 경주시 진현동 불국사 일주문 건너편 4천200평 대지 위에 연건평 476평의 한옥으로 단장을 했다. 목월의 시 '달'에 등장하는 시 구절처럼 '도화(桃花)가지 반쯤 가리고 달이 가는, 불국사 터를 잡은 그 언저리'에 자리한 것이다.
2층 한옥 골기와 양식의 ㄷ자 건물로 이루어진 문학관은 2층 왼쪽 공간이 동리문학관이고 오른쪽이 목월문학관이다. 1층에는 사무실과 회의실·영상실·세미나실·자료실·도서실 등이 자리하고 있는데, 도서실(수장고)에는 문학관에 진열하고 남은 동리와 목월의 유품과 서적들을 보관하고 있다.
심포지엄 개최가 가능한 영상실에는 동리와 목월의 문학적 발자취를 담은 7분짜리 영상물을 상영하고 있는데 고인의 육성도 들을 수 있다. 문학관 입구에 지은 '신라의 숨결'이란 건물은 신라의 성인들을 기리는 공간으로 활용할 예정이다.
동리문학관에 들어서면 오른쪽 벽면에 동리의 연보가 그려져 있고 앞쪽으로 그의 흉상이 관람객을 반긴다. 흉상 뒷면에 '동리문학은 나귀이다. 모든 것이 죽고 난 뒤에 찾아오는 나귀이다'라는 이어령의 글귀가 한눈에 들어온다.
동리의 생애와 문학 자료를 전시한 코너에는 고인의 체취가 묻은 육필원고와 그림(자화상)은 물론 사진과 서적, 신문에 소개된 자료들과 생전에 사용하던 시계와 거울, 수첩, 낙관, 벼루, 부채 등을 전시하고 있다.
창작활동에 사용하던 책상과 소파를 가져다 평소의 서재를 그대로 재현해 놓았으며, 부인인 손소희 여사의 관련 자료도 소개하고 있다. '황토기'와 '등신불' 애니메이션 영상물을 가동하고 있고, '무녀도'의 전개과정을 형상화해 둔 것도 눈길을 끈다. 동리문학관에는 샤머니즘과 토속성을 주조로 민족적 정체성을 탐구한 작가 김동리의 소설미학과 삶의 흔적들이 구석구석 배어 있다.
목월문학관 관람도 입구에 선 목월의 흉상을 만나면서 시작된다. 목월의 생애와 문학을 연대별로 정리한 가운데, 시집과 평전을 비롯해 목월이 생전에 사용하던 펜과 연필 그리고 장갑과 문갑, 육필원고, 부채, 노트, 사진 등에다 월급봉투까지 진열해 놓았다.
목월의 서재에도 책상과 책꽂이를 그대로 옮겨 놓았고 고인이 착용했던 도포와 구두까지 비치하고 있다. 목월의 작품세계는 연륜에 따라 변모해온 △서정적 자연과 향토의 세계 △삶의 일상과 인간애의 세계 △향토회귀와 존재탐구의 세계로 구분해 보여주고 있다. '나그네', '윤사월', '산도화' 등 시의 배경 그림도 눈에 띄며, 경주와 관련된 시작품인 '불국사', '운복령', '토함산', '선도산하' 등을 별도 코너에 모아둔 것도 주목할 만하다. 청록파 시인인 목월문학관에는 우리 전통의 한 갈래인 남도적 정서와 가락을 대표하는 민족시인의 자취가 고스란히 스며 있다.
장윤익 동리·목월기념사업회 회장(전 경주대 총장)은 "다른 사람에게 넘어간 동리와 목월의 생가를 매입해 복원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며 "문학관이 경주의 문화유산과 연계한 관광명소로 자리잡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편 문학관이 문을 여는 24일을 전후해서는 전야제에 이은 동리·목월문학심포지엄과 시화전, 모화굿제, 추모음악회와 백일장, 작품 속의 현장탐방 등 전국 문화예술인들이 참여하는 다양한 행사가 펼쳐진다.
조향래기자 bulsajo@msnet.co.kr
-장윤익 동리·목월 기념사업회장-
"2001년 2월 발기인대회를 치른 후 5년여 만의 결실입니다." 동리·목월문학관 건립에 남다른 정열을 쏟아온 장윤익(66·문학평론가) 동리·목월 기념사업회장은 "경주가 낳은 동리와 목월은 경주의 자랑인 동시에 전 국민의 자랑"이라고 강조했다.
"동리와 목월의 문학적 깊이와 무게를 논하는 것은 새삼스러울 뿐"이라는 장 회장은 "동리는 한국 근대소설사의 시금석으로 일컬어진다"며 "동리가 이룩한 소설미학은 우리나라 단편문학의 전범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고 했다.그는 이어 "목월은 식민지시대 민족의 얼과 혼을 향토적 서정과 시공간을 초극하는 자연의 노래로 형상화했다"며 "'북에는 소월, 남에는 목월'이란 말이 있을 정도로 목월 역시 한국 근대문학사의 대표적인 시인"이라고 밝혔다.
경주가 고향이기도 한 장 회장은 동리와 목월의 작품 소재와 정서는 경주의 자연과 사상에 뿌리를 두고 있지만, 이제는 한 시인·작가의 고향과 활동지역이 더 이상 그를 기억하는 사람들만의 몫이 아니라고 했다. 그들을 기념하는 것은 곧 당대의 문화자산을 보존하고 관리하는 또 하나의 문화산업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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