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출향 경제인과 차 한잔-김상범 이수그룹 회장

삼성 코오롱 쌍용이 그랬듯이 이수그룹의 모태는 대구다. 초대 대구은행장, 경제부총리 등을 지낸 김준성(86) 명예회장이 대구에서 양말 기계 두 대로 시작해 이룬 그룹이다.

하지만 이수는 대구·경북민에게 친숙하지 않다. 소비재가 아니라 화학제품, 세라믹, 인쇄회로기판(PCB) 등 중간재를 생산 판매하는 회사이기 때문이다.

이런 이수그룹이 올부터 변신을 꾀하고 있다. 대구·경북으로부터 사랑받는 기업이 되겠다는 것이다.

그 중심에 김상범(金相範·45) 이수그룹 회장이 있다. 김준성 명예회장의 셋째 아들이자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의 사위다. 2003년 프랑스 정부로부터 문화예술 공로 훈장을 받은 김선정(41) 대림미술관 큐레이터의 남편이다.

◆수줍음 타는 CEO=김 회장이 이수그룹 사령탑이 된 것은 지난 2000년. 그러나 일반인에게는 낯설다. 나서기 싫어해 언론에 자주 노출되지 않은 탓이다.

말수도 적다. 목소리도 들릴 듯 말 듯 가늘다. 아주 가끔 웃을 때 모습은 마치 수줍음 타는 소년같다.

그는 대구에서 태어나 대구교대부설초교와 대구중학교를 졸업한 뒤 고교 때 서울로 갔다. 공부를 잘 해 두 번이나 월반, 두 살 많은 형들과 함께 서울대 경영학과에서 공부했다. 그래서 미국 미시간대에서 경영대학원(MBA)과 법학을 잇따라 공부해도 나이 여유가 있었다. 김 회장은 "경영학 박사 과정에 들어가보니 적성이 맞지 않았다"며 "이왕 시작한 공부이니 무라도 베자는 심정으로 법학을 시작했다"고 했다.

결과는 '만족'이다. 법학을 하면서 논리적으로 문제에 접근하는 방법과 문제를 분석하는 능력을 배웠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2년반 변호사 생활을 하며 회사법과 재무법, 인수합병(M&A) 관련 사건을 많이 접했다. 자연스레 경영수업을 받은 셈이다.

◆준비된 CEO=변호사 생활을 하며 보고 겪은 미국의 기업문화가 그에게 영향을 줬다. CEO가 되자마자 직원들에게 넥타이부터 풀도록 했다. 주력이 화학인 그룹이라 어느 정도 보수적인 분위기는 인정하지만 답답해서 싫었다. 사고가 유연해지려면 옷차림부터 자유로워져야 되겠다고 생각했다.

그 자신도 넥타이를 풀었다. 대구·경북 지역민에게 첫 선을 보이는 인터뷰 자리에도 노타이였다. 비서진에서 넥타이를 매도록 권한 모양이지만 그는 자연스러움을 택했다.

CEO로서 경영 능력은 이미 검증됐다는 것이 회사 안팎의 평가다. 2003년 지주회사인 (주)이수를 설립해 경영 투명성과 안정성 기반을 마련했다. 자회사 가운데 상장회사는 지분의 30%, 비상장회사는 지분의 50%를 지주회사가 확보해야 한다. 경영권 방어가 용이해 정부가 적극 권장하고 있는 그룹 형태다.

그가 선택한 이수의 전략은 기업 인수합병(M&A)이다. 지주회사가 있어 M&A가 용이하다.

수백 개 인수대상 업체와 제품을 검토했다. 결국 2004년 서울의 의료정보화 전문업체인 이수유비케어를 인수했다. 주위에서 반대했다. 그러나 김 회장은 중견그룹이 크기 위해서는 새로 창업하는 것보다 기존 기업을 인수하는 것이 유리하다고 굳게 믿고 강하게 밀어붙였다.

이수유비케어는 적대적 M&A의 시도로 2년여간 경영권 분쟁을 일으켰던 회사였다. 이수유비케어의 벤처정신을 존중했다. 그래서 조직을 그대로 뒀다. 인수 후 이수그룹에서 넘어간 직원은 단 두 명에 불과했다. 안정을 추구하는 이수의 노하우와 유비케어의 벤처정신이 결합해 회사 정상화에 주력한 결과 적자였던 회사가 지난해 대규모 흑자로 돌아섰다.

대구 달성공단의 이수페타시스(옛 남양정밀)는 김 회장의 또 다른 작품이다. 인수 당시 남양정밀은 자본 잠식 상태로 매출액이 300억 원도 되지 않았다. 지금은 미국의 대표적인 IT 회사인 시스코에 납품하는 등 세계적 품질력을 자랑하고 있다. 지난해 매출액은 1천500억 원을 훌쩍 뛰어넘었다. 노사화합이 잘돼 대구시로부터 노사화합상도 받았다.

◆1류를 지향한다=이수건설이 대구시 수성구 범어동 대구법원 건너편에 건설하려는 주상복합아파트 '브라운스톤 수성'의 공개가 1주일가량 늦춰졌다. 현장을 방문한 김 회장이 모델하우스를 전면 교체하라고 지시했기 때문이다. 그는 "조명이 어둡고 마음에 들지 않아서 고치라고 했다"고 했다.

'브라운스톤'은 2002년 김 회장이 만든 브랜드. 미국 뉴욕, 보스톤 등지 상류층의 고급 주거양식인 브라운스톤처럼 안락한 고급 아파트를 짓겠다는 생각에서다. 이미 수도권에선 고급 아파트란 브랜드 마케팅에 성공했다.

그런 마당인데 대구에서 첫선을 뵈는 모델하우스 조명이 어두웠으니 그의 성에 찰 리 없는 노릇이다.

브라운스톤의 대구 진출 계획은 야심차다. 김 회장은 "언젠가 대구에 진출하려 했다"며 "대구에서 제일가는 주거단지를 만드는게 꿈"이라고 했다.

첫 작품은 148가구로 작지만 점차 물량을 늘릴 계획이다. 4월 수성구 지산1동 73가구 이외에 추가로 6개소 사업을 검토하고 있다.

브라운스톤의 자부심은 철저한 하청업체 관리에 있다. 품질은 경쟁력 있는 하청업체에서 나온다고 믿고 있다. 대구에 본격 진출하는 김에 지역 업체를 많이 쓸 생각이 없느냐고 묻자 김 회장은 "이왕이면 대구업체를 쓰겠다"면서도 "그래도 브라운스톤이 원하는 하청업체 기준에 맞아야 한다"고 잘랐다.

◆고독한 선장=이수그룹은 지난해 환율하락으로 어려웠다 한다. 그래서 그룹의 내실을 다지는 데 온 정열을 쏟았다.

CEO는 고독했다. 아픈 뒤 성숙해지는 법일까. 인터뷰 내내 그는 매출액 1조6천억 원, 계열사 11개의 그룹을 '작은 회사'라고 말했다.

김 회장은 올해를 장기 발전의 바탕을 마련하는 원년으로 잡고 있다. 주력 회사 사장 3명을 40대로 전격 교체했다. 이수그룹에서 획기적인 인사다.

조용하고 꼼꼼한 성격인 그는 의외로 스포츠광이다. 그것도 테니스 같은 격렬한 운동을 좋아한다. 골프는 너무 단조롭다고 했다.

스스로 발전 원년으로 잡은 올해 그가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궁금하다.

최재왕기자 jwchoi@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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