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시조와 하이쿠

긴 겨울밤의 꿈보다도 짧았던 일본 여행 동안, 나의 뇌리를 지배하고 있었던 최대의 화두는 하이쿠와 시조였다. 다 알다시피 시조와 하이쿠는 한일 양국을 대표하는 전통 시가 장르인데, 이 양자의 현재적 상황은 그야말로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우선 하이쿠는 전 일본 국민들의 뜨거운 사랑을 받고 있고, 이를 바탕으로 세계의 언어로 번역되었다. 그리하여 마침내 세계문학사의 전개에도 결코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고, 세계 곳곳에서 자기 나라 언어로 하이쿠를 짓는 경향마저도 점차 확산되고 있는 모양이다. 요컨대 일본은 이 도도한 세계화 시대에 가장 일본적인 시형으로써 세계화 대열에 뛰어들어, 이미 상당한 성과를 이룩해놓고 있는 것이다.

반면에 시조는 우리의 좁은 문학판 내에서도 여러모로 크게 소외되어 있다. 물론 아직도 살아 있고, 살기 위해 혼신의 몸부림을 치고 있으나, 여러모로 위기 국면을 맞이하고 있음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초'중등학교의 국어교과서에서 시조의 비중이 현저하게 낮아졌을 뿐만 아니라 중요 문예지들도 이제 서서히 시조문학을 외면하고 있으며, 국민들의 관심도 시큰둥하다. 나라 안의 위상이 이렇다 보니, 시조의 세계화는 그 자체로서 허황된 몽상처럼 느껴질 지경이다.

왜 그럴까? 사람들은 흔히 시조 형식이 지닌 태생적 한계에 그 근본 원인을 돌리곤 한다. 시조는 중세적 세계관을 바탕으로 탄생된 중세의 시가이므로 중세적 세계관이 해체되어버린 현대에서는 그 존립의 근거를 찾기가 어렵고, 현대인의 복잡한 정서를 담아내기에는 그 그릇 자체가 너무 작다는 것이 그것이다. 물론 근거가 전혀 없는 주장은 아니지만, 그렇다면 하이쿠는?

하이쿠는 그럼 현대적 세계관을 바탕으로 하여 현대에 새로 태어난 장르란 말인가? 5-7-5의 음수율을 철저하게 준수해야 하고 한 편의 글자수가 17자에 불과하다는 점에서, 형식적 폐쇄성이 시조보다도 훨씬 더 심한 하이쿠는 그럼 그릇이 커서 아무런 문제도 없는 것일까?

물론 시조와 하이쿠는 각각 제 나름의 미학적 기반과 미의식의 원리가 있으므로 단순 비교를 할 수는 없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더라도 하이쿠가 국내외적으로 큰 성공을 거두었는데, 시조는 도저히 성공할 수 없는 그 무슨 숙명적인 이유라도 있을까?

설사 이유가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태생이나 형식의 한계 등 시조의 내부에 있다기보다는, 민족의 노래인 시조에 대한 야박할 정도의 애정결핍 등 시조를 둘러싼 외부 환경에 더 큰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닐까?

이종문

계명대 사범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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