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식사 자리에서 만난 한 선배는 얼굴에 웃음이 가득했다. 번번이 말썽만 부려 골치를 썩이던 초등학생 아들이 통지표를 받아왔는데, 자세히 보니 지난 일 년 동안 상을 다섯 번이나 받았다는 것이다. 자는 아들을 깨워 용돈까지 줬다는 선배는 "나는 일 년 가야 개근상 받은 게 전부였는데, 그놈 상 받은 걸 너무 몰랐어." 하며 자신의 무심함을 타박하기까지 했다.
상이란 참 좋은 것이다. 적어도 지금의 부모들 세대에게는 내용을 떠나 무언가 상을 받는다는 것 자체가 대단하게 여겨진다. '벌주기' 교육을 받고 성장한 탓이다. 질서가 학교 교육의 중요한 목표이던 그때는 온통 지켜야 할 것, 하지 말아야 할 것투성이였다. 금지사항을 위반하면 어김없이 벌이 따랐다. 몽둥이도, 얼차려도 질서를 위해 당연한 일로 받아들였다.
해야 할 것에도 벌은 담겨 있었다. '열심히 공부해서 부모님 은혜에 보답하라'는 말에는 드러난 긍정보다 '공부하지 않으면 불효자가 돼 손가락질을 받을 것'이라는 이면의 부정이 더 컸다. '복도에서는 뛰지 맙시다'라는 표어는 '뛰다가 선생님께 걸리면 벌 받는다'는 뜻으로 인식됐다.
최근 몇 년 학교 현장을 보면 이 같은 '벌주기' 교육이 차츰 '상주기' 교육으로 바뀌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개근상이나 학력우수상 외에 수행평가나 체험학습, 방학숙제 등 다양한 명목으로 많은 학생들에게 상을 줌으로써 학습 동기를 일으키려는 노력이 보인다.
졸업식 때 졸업생 전원에게 각기 다른 상을 주는 학교도 적잖이 눈에 띈다. 학생의 취미와 개성, 꿈 등을 반영해 갖가지 이름으로 상을 주는 것이다. 자신의 꿈을 이루라는 뜻에서 학생에 대한 칭찬 문구를 담은 '꿈 장'을 졸업장과 함께 줬다는 학교도 있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경구에 대한 공감대가 그만큼 확산됐다는 방증이다.
바람직한 현상이지만 아쉬움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학습이나 성취 동기를 부여하는 매개가 벌에서 상으로 바뀐 것은 그나마 다행이지만 벌이든 상이든 외부로부터 가해지는 자극이기 때문이다. 비루먹은 당나귀야 말을 듣지 않으면 당근을 주기도 하고 채찍질도 하지만, 학습이나 자아실현을 위한 노력은 내적 동기가 작용하지 않으면 진정성을 가지기 힘들다. 요컨대 우리 교육도 이제는 학생들이 내적 동기를 스스로 일으킬 수 있도록 도와주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는 얘기다.
책은 10분도 가만히 앉아 읽지 못하는데 장난감을 조립하라면 하루 종일 꼼짝도 않는 아이는 왜 그런지, 수업시간에 꾸벅꾸벅 졸다가도 쉬는 시간이 되면 벼락같이 농구장으로 달려나가는 학생들은 또 왜 그런지, 조금만 생각해 보면 알 일이다. 그들이 과연 어떤 벌을 무서워했는지, 어떤 상을 바랐는지, 혹은 얻을 것도 잃을 것도 분명치 않은 일들에 무엇을 바라고 그리 열심인지 들여다볼 때다. 거기에 상을 준다면 더욱 값질 것이다.
김재경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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