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슈포럼-車부품 납품단가 인하 안된다

현대'기아차가 환율하락과 원자재가 상승을 이유로 협력업체의 부품 납품단가를 평균 10% 인하할 예정이라고 한다. 모기업의 납품단가 인하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며, 현대'기아차의 경우 매년 연초에 협력사의 납품단가를 2~5% 인하해 왔다. 업계는 원'달러 환율의 급락에 따른 수익성 악화로 올해 모기업의 납품단가 인하압력이 예년보다는 거셀 것이라고 짐작은 하고 있었지만 솔직히 이 정도일 줄은 예상하지 못하였다.

그래서 이번 현대'기아차의 납품단가 인하 발표는 부품업체 입장에서 더욱 큰 충격으로 다가온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국내 부품업체 대다수는 완성차 생산라인에 들어가는 OEM납품 비중이 전체 매출의 90%에 달하고 있고, 부품업체의 영업이익률은 3~6% 수준에 불과해, 납품단가 인하가 예정대로 시행되면 대다수 부품업체가 적자를 면치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당장 일부 기업 중에는 외환'금융위기와 대우차 부도 이후 처음으로 다시 구조조정을 할 수밖에 없다는 소리도 들린다.

납품단가 인하 발표로 여론의 몰매를 맞고 있는 현대'기아차는 나름대로의 불가피한 조치라고 하소연하고 있다. 환 헤지가 가능한 해외공장 생산분을 제외하고도 수출 비중이 60%가 넘어, 원화 가치가 10원 상승할 경우 매출은 1천200억 원, 영업이익은 800억 원이나 감소해 납품단가를 인하하지 않고는 도저히 채산성을 맞출 수가 없다고 한다.

하지만 삼성전자, 포스코, 한전과 더불어 순익 1조클럽에 진입했고, 판매대수 기준으로는 푸조'시트로앵에 이어 세계 7위의 자동차 메이커 치고는 이번 수익성 악화에 따른 대응방안이 너무 안이한 수순이란 생각이다. 도요타를 벤치마킹해 초일류기업의 반열에 오르려는 기업이 귀족노조의 횡포와 피나는 자체 원가절감은 도외시한 채 납품단가 인하라는 가장 손쉬운 방법을 선택했으니 말이다.

현대'기아차가 예정대로 납품단가를 큰 폭으로 인하하면 대구지역은 산업 전반에 걸쳐 큰 피해를 입을 것으로 예상된다. 자동차부품산업은 산업 고유의 특성인 수직계열화로 인해 모기업이 납품단가를 낮출 경우 하위 부품업체로 내려가면서 연쇄적으로 비용을 전가할 수밖에 없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또한 1차부품업체들은 나름대로 수출을 하고 있어 현대'기아차와 마찬가지로 환차손도 입고 있고, 2차 이하 영세 부품업체들은 원자재 가격 급등세로 납품단가를 큰 폭 인하하면 아마 얼마 가지 않아 한계상황에 직면할 것이다. 더욱 우려되는 점은 자동차산업과 밀접하게 관련된, 도금'금형'플라스틱 등의 기타 관련산업도 단가 조정으로 연쇄적인 타격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대구지역 자동차부품산업은 매출액 기준으로 지역 제조업 매출의 20%에 달할 만큼 중추산업으로 성장하였다. 섬유, 안경테, 섬유기계 등 기존 전통산업의 부진 속에서도 그나마 지역 산업의 버팀목 역할을 해준 산업이다. 이번 납품단가 인하 조치로 자동차부품산업마저 위기에 빠져들면 지역 산업은 침체의 골이 더욱 깊어지게 된다. 이는 외환'금융위기 이후 고착화 되어온 수도권과 지방, 대기업과 중소기업, 첨단업종과 전통산업 간의 양극화를 한층 고착화시키는 요인이 될 것이다.

현대'기아차는 이번 납품단가 인하 조치를 철회해 부품업체와 모기업 간 상생의 기회를 찾아야 할 것이다. 이제는 연례적으로 납품단가를 낮추는 관행도 고쳐야 한다. 현대'기아차는 이제 해외시장에서 가격 경쟁력으로 승부하기보다는 기술력과 품질, 브랜드 가치로 승부해야 할 것이다.

정부도 보다 실질적인 중소기업 육성대책을 내놓아야 한다. 부품업체도 이번 일을 거울삼아 기술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직수출 비중을 늘려 안정적인 경영 기반을 구축해야 한다. 향후에도 이 같은 일이 발생 시 대처할 수 있도록 업체 차원의 다각적인 대비책을 마련하여야 할 것이다.

이희태 대구상공회의소 상근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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