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옴니버스 옴니아(모든 이에 모든 것이).'
"주교로서 모든 사람을 대등하게, 나와 같은 사람으로서 맞이하겠다. 내가 가진 모든 것을 다내 놓겠다. 내가 가진 시간, 생명, 사랑, 능력, 정성 모든 것을 다 주겠다."
1970년 39세로 최연소 주교수품을 받은 정진석 추기경은 바오로 사도가 코린토인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사용한 이 말을 교구장의 사목지침으로 삼았다. 그리고 스스로 실천하되 남에게 강요하지 않는 헌신의 자세로 삶을 살아왔다. 정 대주교를 아는 사람들은 "인화를 바탕으로 사람들을 폭넓게 감싸안는, 너그럽고 겸손한 분"으로 입을 모은다.
1998년 로마 교황청이 그를 서울대교구장에 임명한 것도 사회적 영향력이나 종교적 카리스마에 앞서 정 대주교의 이러한 덕성을 높이 샀기 때문이다. 정 대주교는 교회 내에서는 교회법의 대가로 통한다. 1988년 '전국 공용 교구 사제 특별 권한 해설'(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을 낸 것을 시작으로 현재까지 총 22권의 교회법 관련 저서를 출간했다.
정 추기경은 1931년 서울의 독실한 가톨릭 집안에서 태어났다. 어머니의 희한한 태몽은 교계에선 널리 알려진 얘기. 천주교 신자였던 정 추기경의 어머니가 임신했을 때 "엄마 나 주교 됐어"라며 달려드는 태몽을 꾸었다는 것. 그로부터 39년이 지난 70년 정 추기경이 주교에 임명돼 어머니한테 이 사실을 알리자 어머니가 "어떻게 태몽과 이렇게 같을 수가 있느냐"며 혼절했다는 것이다.
중학교 2학년 때 사제의 길을 걷기로 결심한 정 추기경은 그러나 홀로 남은 어머니께 이 말을 하기 어려워 50년 서울대 화공과에 입학했다. 그러나 6·25 전쟁 와중에 다시 믿음을 얻어 성신대학(지금의 가톨릭 대학)에 입학했다.
1961년 3월 사제서품을 받은 정 추기경은 서울 중림동 성당 보좌신부를 시작으로 사제생활을 시작, 성신고교 부교장, 한국 천주교중앙협의회 총무 등을 역임했다. 70년에는 로마 우르바노 대학에서 교회법 석사학위를 받은 뒤 주교로 수품됐다. 당시 나이 39세로 최연소 주교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주교 서품을 받은 정 추기경은 청주 교구장 주교에 임명돼 98년 서울 대교구장 대주교로 착좌할 때까지 사목활동을 했다.
최두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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