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제2 추기경 탄생까지…한국 천주교 발자취

성인품 순교자만 103명 달해

이 땅에 천주교의 씨앗이 뿌려진 지 222년. 마침내 우리나라 천주교회는 두 명의 추기경 시대를 맞게 됐다. 하지만 한국 천주교의 역사는 가장 드라마틱하면서도 믿지 못할 정도의 수난사이기도 했다. 조선조 100여 년간 혹독한 박해 속에서 수만 명의 순교자를 내면서도 꾸준히 발전해온 한국 천주교회는 초기 '로마'시대를 방불케 했다.

1784년 이승훈이 북경 천주교회에서 영세함으로써 시작된 한국 천주교는 선교가 아닌 한국민 스스로 받아들여 능동적으로 세웠다는 점에서 특이하다. 1784년 2월 이승훈은 북경 천주교회에서 드 그라몽 신부로부터 세례를 받았다. 조선인으로서 첫 영세자였다. 그전까지 단순한 학문적 차원을 넘어 종교로 승화된 것이었다. 그해 이승훈은 여러 사람에게 세례를 베풀게 되었고, 주일이나 첨례를 지키기 위해 자주 모임을 갖게 되었는데 이것이 처음으로 신자공동체를 이루게 되어 넓은 의미의 교회가 탄생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서울 명예방(지금의 명동) 김범우의 집을 교회로 삼아 주일첨례를 지내며 신심을 키웠던 모임은 해괴한 모임으로 간주돼 김범우는 귀양을 떠나야 했다. 이것이 1785년 을사추조적발사건인데 천주교회에 가해진 최초의 박해로 기록되고 있다. 후일 김범우의 집터엔 명동성당이 세워졌다.

이 사건 이후 교인들의 신앙심은 더욱 깊어졌다. 조선교회를 조직하고 가성직제도까지 실시했다. 이를 소위 자치적 조선교회시기로 일컫는다. 권일신이 주교로 추대되고 이승훈·이단원 등이 신부가 되어 성무를 맡아보며 신품권을 행사했다.

1791년에는 전라도 진산에 살던 윤지충이 모친상을 당해 상주로 상례를 올렸으나 위패를 모시지 않고 제사를 폐지, 관헌들이 "천주교도는 부모를 업신여기니 짐승과 같다"며 처형한다. 이것이 진산사건 또는 신해교난으로 조선 교회사상 최초로 순교의 피를 흘리는 사건이 됐다.

조선의 천주교 신자들에 대한 정부의 탄압과 박해는 이미 신자공동체가 탄생한 다음해인 1785년부터 시작되어 100년이 넘도록 계속되었다. 이 기간 동안 10여 차례의 크고 작은 박해가 있었는데, 큰 박해만 하더라도 신유박해(1801), 기해박해(1839), 병오박해(1846), 병인박해(1866)로 네 차례나 있었다. 이들 수많은 순교자 중에서 성인품에 오른 이들이 103명이다.

우리나라는 1876년 문호를 개방하여 새로운 시대에 접어든다. 그러나 신앙의 자유는 1884년을 전후한 시기에 이르러서야 묵인될 수 있었다. 한국교회는 이를 즈음해 새로운 시대를 맞게 되었다. 선교사들의 중심 역할을 하게 될 본당조직이 급속도로 발전해 서울, 인천, 원산, 부산 등 개항지에서부터 시작되어 갓등이, 풍수원 등 시골 교우촌으로 확대되었으며 이 시기 말에 이르러서는 그 수가 50개에 이르렀다. 신자 수도 7만을 넘게 되었다.

일제시대(1910-1945)에 교회는 민족과 함께 일제의 탄압으로 많은 어려움을 겪어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교구와 본당 등 교회 조직면에서는 현저한 발전을 보였다. 교구는 조선교구 하나뿐이었는데, 이 시기에 대구교구, 원산교구, 평양교구, 연길교구, 전주교구, 광주교구, 춘천교구가 증설되었다. 본당은 50여 개에서 170여 개로 늘어났고, 공소는 1천여 개에서 1500여 개로 늘어났다. 또한, 7만여 명이던 신자가 18만 명을 넘게 되었다.

해방 후 온전한 종교자유의 시대가 열렸다. 10년 사이에 근 40만의 신자가 불어났고, 1962년 교계제도의 설정으로 한국교회는 완전한 자립교회가 되었다. 이에 따라 모든 교구는 정식 교구가 되었고, 서울과 광주, 대구는 대교구로 승격되었으며, 서울교구의 대주교는 추기경으로 서임되었다.

1981년과 1984년은 한국교회의 쇄신과 발전에 또 다른 계기가 되었다. 1981년 조선교구 설정 150년에 즈음하여 한국교회는 성대한 기념행사와 기념사업으로 쇄신의 기회로 삼고, 교회 창립 200주년인 1984년에 즈음해서는 교회의 최고 목자인 교황을 초청하여 함께 성대한 기념행사를 가졌다. 무엇보다도 한국교회의 뿌리이며 영광인 순교자 103위를 성인으로 선포하는 장엄한 시성식을 가졌다.

최두성기자 dschoi@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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