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시론-하나되어 미래를 향하는 노동운동

한국 노동운동은 지금 역사적으로 중요한 시점에 서 있다. 세계화라는, 각 국가의 정체성과 독립성마저 뒤흔드는 국경을 초월한 경쟁력으로 인해 세계 노동의 지형은 급격한 변화를 맞고 있다. 하지만 한국 노동운동은 이 중요한 변화의 흐름을 인식조차 못하고 있다. 새로운 변화로 노동자들은 최악의 국면을 맞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어려운 난관을 헤치고 나갈 수 있는 전략 전술에 실패했을 뿐만 아니라, 고통받는 노동자들의 이익을 효과적으로 대변할 수 있는 하나의 조직으로 연대하고 결집하는 데도 실패하고 있다.

노동운동은 전체를 꿰뚫어보는 통찰력의 결핍과 대중성 확보의 실패로 말미암아 현재 대단히 위험한 상태에 놓여 있다. 머지않아 아무도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경청하지 않으려 할 뿐더러, 이대로 가다가는 민주노동조합의 지도력이 우리 사회에서 더 이상 그 영향력을 잃어버리고, 노동운동 자체가 붕괴될 가능성도 없지 않아 보인다.

현대의 그 어떤 사회도 중요한 지향점이 경제적 부나 국방의 힘은 아니다. 기술의 선진화가 전부일 수도 없다. 이 모든 것을 얻는다 해도 전체 국민의 몇 퍼센트 안 되는 특수계층만이 그 혜택을 누릴 뿐이다. 한 사회의 성공은 다수 국민의 희생에 의해서만 가능하며, 결국 그것이 사회계층 간의 빈부격차를 줄이는 데 도움이 되지 않고 있다.

이러한 점에서 사회정책의 원칙적인 가이드라인은 '공평함'의 원리가 그 기본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공평함'은 모든 사회 이익집단의 평등함을 의미한다. 기업에 정규직이 필요한 만큼 비정규직의 역할도 중요하다. 그리고 기업의 성공이 중요한 만큼 농민들이 희망을 잃지 않는 것도 대단히 중요하다.

공평한 사회 발전을 위해서는 원활한 대화구조와 균형잡힌 의견들이 차별 없이 반영될 수 있어야 한다. 다시 말해, 사회 모든 집단은 자신들의 목소리가 있어야 하고, 그 목소리에 편견을 두어서는 안 된다. 노동의 세계를 구성하는 중요한 세 가지 부문에는 정부, 기업, 그리고 노동자들이 있다. 정부의 역할과 의무는 국민 전체의 이익을 고려해야 하고, 기업은 경영과 이윤 창출에 그 목적이 있다. 그리고 노동자들의 권리와 이익 대변은 노동조합의 중요한 역할이다.

이러한 점에서 비효율적이고 무능력한 노동조합을 원하는 사람들이 있다. 만약 심각한 노사분규 없이 노동자들을 지배, 조종할 수 있다면 높은 생산성과 이윤을 극대화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서이다. 그러나 이 생각은 잘못된 것이다. 경제성장을 최대화하기 위해서는 정부, 기업, 그리고 노동력, 이 세 부분이 동등하게 또 충분히 영향력을 발휘해야만 한다. 이러한 평등을 획득할 수 있는 것은 각 부문의 목소리가 대표성을 띠어야 하는데, 정부나 기업들은 문제가 안 된다. 하지만, 여기서 치명적인 취약점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 노동자의 대표성 문제이다. 오늘날 한국에는 두 개의 노총이 서로 다른 목소리로 각자의 길을 가고 있다. 그리고 민주노총은 수백만 명의 고통받는 노동자들을 보호하고 그들의 이익을 위해 헌신하고 앞장서 싸우기보다는 케케묵은 이념 갈등과 권력 다툼으로 노동운동을 분열시키고, 힘을 약화시키는 데 일조하면서 노동조합이 앞장서서 기업과 정부의 일을 대신하는 꼴을 보이고 있다.

지금 노동운동의 결집과 단결이 절실히 필요하지만, 이 문제를 풀어가는 데 장애 요소는 현재 노동운동을 하는 사람들의 사고가 여전히 30년 전에 머무르고 있으며, 과거의 이념 체제에 사로잡혀 해야 할 역할을 방기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을 극복하는 데는 큰 용기와 성숙함으로 각자의 이념을 접어놓는 자세가 필요하고, 과거에 매달리기보다는 미래를 예측할 수 있는 통찰력을 가져야 한다. 그동안 수많은 사람들이 한국의 민주노동운동을 위해 투쟁했고, 얼마나 많은 희생의 값을 지불했는가를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그들이 보여준 희생의 대가와 성과는 우리들의 집단의식 속에 생생하게 기억되고, 또한 살아 있다. 하지만 역사는 우리의 선생이지 우리의 지배자가 아니라는 교훈을 잊기가 쉽다. 시간은 변화를 가져오고 환경을 바꾼다. 이것을 받아들이고 변화에 대한 준비를 해야만 미래를 볼 수 있을 것이다.

전순옥(참여성노동복지터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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