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진화한 아드보카트호…41일의 성과와 과제

아드보카트호는 분명히 진화하고 있다.

지난달 15일부터 22일까지 중동, 홍콩, 미국, 시리아를 거치며 아랍에미리트연합(0-1 패), 그리스(1-1 무), 핀란드(1-0 승), 크로아티아(2-0 승), 덴마크(1-3 패), 미국(2-1 승), LA 갤럭시(3-0 승), 코스타리카(0-1 패), 멕시코(1-0 승), 시리아(2-1 승) 등 10개팀을 공식.비공식 평가전과 아시안컵 예선에서 상대했다.

미국과 비공개 평가전을 포함해 6승1무3패(득 13, 실 8)의 성적표는 비교적 좋은 편이다. 유럽 4개팀, 북중미 3개팀, 중동 2개팀, 클럽 1개팀을 골고루 만났다.

전훈의 화두는 '경쟁'과 '실험'이었다.

10차례 경기에서 교체 멤버로 34명을 투입해 다양한 전략.전술을 실험했다. 23명의 국내파.J리거 태극전사 가운데 여섯 또는 일곱 자리는 경쟁에서 밀려날 수밖에 없는 냉엄한 현실 앞에서 생존 경쟁은 치열함 그 자체였다.

'한국축구에는 맞지 않는다'는 인식이 뿌리깊었던 포백(4-back) 체제를 9경기 연속 가동했고 더블 수비형 미드필더 체제를 안정화했다.

'압박을 통한 그라운드 지배'라는 딕 아드보카트 감독의 전략적 목표는 부침이 있었지만 차츰 현실로 실현되고 있다.

◇포백 장착 '제1 수확'

아드보카트 감독은 포백과 스리백(3-back)을 바꿔가며 쓸 수 있게 됐다는 점을 이번 전훈의 뚜렷한 성과로 꼽았다.

아드보카트호는 지난해 10∼11월 세 차례 평가전에서 기존 구도의 안정감을 중시해 스리백을 썼고 지난달 18일 UAE와 전훈 첫 평가전에도 같은 포메이션을 들고 나왔지만 지난달 21일 그리스전 이후 내리 9경기에 포백을 선발 체제로 썼다.

미국 훈련부터 김동진(서울), 김진규(이와타), 최진철(전북), 조원희(수원)의 포백은 사실상 굳어진 상황이다.

일자 형태 수비라인인 포백은 좌우 윙백(풀백)이 측면 오버래핑을 통해 공격에 적극적으로 가담할 수 있어 스리백보다 공격 지향적인 전술로 평가받는다. 유럽과 남미에서 대세를 점하고 있는 포메이션이기도 하다.

스리백이 대인마크에 중점을 둔 수비 전략이라면 포백은 일종의 '위치 게임'으로 전후 좌우의 움직임만 좋다면 상대 공격 시스템(원.투.스리톱)에 관계없이 구사할 수 있는 카드다.

그러나 아드보카트 감독이 이미 포백을 '월드컵 포메이션'으로 낙점했다고 보기는 이르다. 상대에 따라, 또는 선수 자원의 활용도에 따라 전략 구상은 언제든 달라질 수 있다.

김남일(수원)과 이호(울산)로 더블 수비형 미드필더 체제를 구축한 것도 의미있는 성과다. 이 체제는 미국과 시리아에서 다섯 차례 연속 가동되면서 안정감을 높였다. 압박이라는 과제를 수행해내는데 핵심적인 역할을 한 것도 두 명의 수비형 미드필더다.

◇결정력.공간허점 여전한 과제

아드보카트호는 10경기에서 13골을 뽑아 경기당 평균 1.3골을 기록했다. 그러나 클럽팀인 갤럭시전에서 나온 3골을 빼면 A매치에서는 평균 1골 남짓에 불과하다.

무득점 경기는 UAE전과 코스타리카전 두 번밖에 없었지만 나머지 경기에서도 화끈한 공격력을 보여줬다고 평가하기는 힘들다.

결정력 약화의 원인으로 문전 쇄도의 적극성 부족을 지적하는 전문가들이 많다.

아드보카트호의 13골을 분석하면 프리킥 2골(박주영, 김진규), 세트플레이 2골(박주영, 조재진), 중거리슛 3골(김동진, 이동국, 이천수), 페널티지역내 짧은 슛 6골로 분류할 수 있다.

수비수나 골대에 맞고 리바운돼 나온 볼을 처리한 골은 갤럭시전에서 나온 김두현의 골 뿐이었다. 경기 도중 크로스에 의한 득점도 상대적으로 적은 편이다.

이는 박지성이 뛰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간판 골잡이 루드 반 니스텔루이나 웨인 루니가 보여주는 것과 같은 가공할 수준의 쇄도가 부족하다는 사실을 반영한다.

이영무 축구협회 기술위원장은 "박지성을 포함해 우리 선수들의 문전 쇄도가 유럽리그의 정상급 선수들에 비해 전반적으로 모자란다"고 지적한다.

포백 라인의 뒷 공간이 열린다는 허점은 전훈 내내 지적돼왔다.

이론적으로 좌우 측면에서 자주 오버래핑을 시도하면서 수비 라인의 뒷공간까지 허점을 없앤다는 건 불가능하다.

빈도를 줄이는 게 현실적인 목표다. UAE전과 덴마크, 코스타리카, 시리아전까지 돌아보면 아드보카트호의 실점 장면은 공통점이 있다.

뒷공간이 열렸을 때 약속된 커버플레이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태극전사 성적표

3기(期) 아드보카트호 태극전사들의 개인별 성적표를 비교하면 이천수(울산)가 단연 상종가를 쳤다.

이천수는 갤럭시전부터 시리아전까지 4경기 연속 오른쪽 윙포워드로 선발 출전했다. 미국과 비공개 평가전을 빼면 전 경기에서 선발 또는 교체로 나왔다.

공격 포인트는 3골 2도움으로 득점.도움 1위를 동시에 차지했다. 크로아티아전, 갤럭시전, 시리아전에서 터진 골의 순도도 높았다. 오른쪽 윙백 조원희의 공격적인 성향으로 공간을 내주는 오른쪽 측면의 수비 가담도 좋았다는 평가다.

이동국(포항)은 2골 1도움으로 무난한 성적표를 받았다. 함께 경쟁을 벌인 중앙 포워드 요원 조재진(시미즈), 정조국(서울)도 각각 한골씩 뽑았지만 이동국이 우세했다.

왼쪽 윙포워드 자리는 초반 박주영(서울)이 선점하며 전훈 1, 2호골로 주가를 높였으나 후반부에는 선발 싸움에서 정경호(광주)에 밀렸다. 정경호는 활발한 움직임과 두 차례 도움으로 제 역할을 해냈다. 국내에서 논란을 일으킨 박주영의 플레이에 대해서는 "좀 더 보여줘야 한다"는 아드보카트 감독의 지적이 정답일 것 같다.

공격형 미드필더는 2골을 뽑은 김두현(성남)과 초반 4경기 연속 풀타임 출전한 백지훈(서울)이 치열하게 경합했다.

수비형 미드필더에는 서로 라이벌로 지목한 김남일과 이호가 갈수록 안정된 호흡을 선보였다. 김정우(나고야)는 중간에 소속팀에 복귀해 완전한 평가를 받지 못했다.

포백 라인은 좌우 윙백 김동진, 조원희가 자리를 굳혔고 다양한 조합이 이뤄지던 중앙 수비도 김진규, 최진철 '신.구 듀오' 쪽에 힘이 실렸다. 김진규는 프리킥 골도 뽑아 미국 훈련부터 주가를 끌어올렸다. 최진철은 최대 무기인 경험을 십분 살렸다. 김상식(성남)은 교체 카드로 나름의 활용도를 인정받았다.

최태욱(시미즈)의 오른쪽 윙백 실험은 미완성으로 끝난 느낌이다. 왼쪽 장학영(성남)은 경험 부족이 크게 작용했다. 수문장은 이운재(수원)가 변함없는 신임을 받았다. 김영광(전남)은 불의의 부상에 발목이 잡혔다.(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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