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사블랑카(Casablanca)'는 스페인어로 '하얀 집'이라는 뜻이다. 모로코의 대표적인 항구도시 이름이기도 하고, 잉그리드 버그만과 험프리 보가트가 주인공으로 나오는 추억의 명화 제목이기도 하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카사블랑카'는 내가 허물없는 친구들과 가끔씩 들르는 술집 이름이라는 것이다. 포말이 하얗게 부서지는 바닷가 언덕 위에 위치한 것이 아니라, 대구시내 어느 아파트촌 입구에 8년째 자리하고 있는 지하 카페이지만, 내게는 그곳이 때로는 하얀 집이기도 하고, 아름다운 항구도시이기도 하고, 추억의 공간이기도 하다.
지난해 미국영화연구소(AFI)가 영화평론가와 시나리오 작가, 배우, 감독 등 1천500여 명을 대상으로 '영화 속의 명대사'를 조사한 결과 카사블랑카에서 험프리 보가트가 잉그리드 버그만을 향해 술잔을 들어올리며 "당신에게 건배를…"이라고 한 대사가 5위를 차지했다고 한다.
내가 카사블랑카를 찾는 이유도 술을 좋아하는 친구들이 있고, 잉그리드 버그만을 닮은(내 눈에는…) 마담이 있고, 음악이 있어서이다. 그곳에서 우리는 영화 속의 험프리 보가트처럼 가슴이 따뜻한 사람끼리 술잔을 기울이며 음악을 듣는다.
나는 그 카페가 노래를 하는 곳이 아니라, 듣는 곳이어서 좋다. 아우성 같은 노래방의 소음보다는 조용히 술잔을 앞에 두고 듣는 추억의 노래가 한적한 바닷가 하얀 집을 스치는 바람소리 같다.
이 카페는 상당한 수준의 레코드판을 보유하고 있고, 마담이 손수 선곡을 해서 음악을 들려준다. 우리는 자칭 이 집 마담의 '애인'이라는 한 친구의 애창곡인 러시아 음악 '백학'을 들으며, 그 장중한 비감에 취해 한잔 술을 더 마신다.
드라마 주제곡이었던 '아씨'라는 노래를 통해 단아하고 정감 어린 옛 여인의 정취가 그리워 다시 또 건배를 한다. 그리고 카사블랑카에서 빼놓을 수 없는 우리의 노래 '봄날은 간다'가 조용필의 애조 띤 목소리를 타고 흘러나오면 무상(無常)에 겨운 술잔을 다시 든다.
그러나 그런 고답적인 분위기도 계속 누릴 수는 없다. 카페 계단을 올라와 거리의 한 줄기 찬바람과 마주치면, 40대 가장의 고단한 어깨들만 하나둘 아파트촌으로 흩어져 간다. 낭만의 술잔을 주고받던 험프리 보가트가 연인 잉그리드 버그만을 보내고 비행장에 홀로 서있던 쓸쓸하고도 담담한 모습. 그것이 결국은 우리 모두의 자화상이었다.
신태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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