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진은 망양정과 월송정 등 관동팔경(關東八景) 중 2경이 있을 정도로 절경을 자랑한다. 그 중에서도 예부터 시인묵객의 발길이 끊이질 않았다던 망양정(望洋亭)에 서면 '바다를 바라보는 정자'라는 이름만큼이나 동해의 망망대해가 한 눈에 들어온다.
◆일출 명소
망양정은 울진 근남면 산포리, 왕피천이 동해를 흘러드는 해변 언덕에 자리하고 있다. 근남면 소재지인 노음리의 수산교에서 왕피천을 따라 동쪽으로 약 2km 정도 달리다 보면 은빛 모래밭이 해안을 따라 길게 이어진 망양해수욕장을 만난다. 망양정은 해수욕장 뒷산 정상에 있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산길을 따라 약 500여m를 오르면 산 정상에 정자 하나가 모습을 드러낸다. 정자에 올라 아래를 내려다보면 바다가 저만치 발아래에 놓여있다.
이곳은 일출 명소로 유명하다. 해발 45m 정상에 올라 바라보면 섬이나 다른 장애물이 전혀 없어 일출이 한 눈에 들어온다. 수평선 너머에서 솟아오르는 불덩이는 화려하다 못해 장엄하다. 때문에 많은 관광객들은 새해 벽두부터 저마다 소원 하나씩을 가슴에 담고 이곳을 찾는다. 마치 종교행사라도 치르듯. 주민들도 이들을 위해 매년 12월 31일부터 1월1일까지 해맞이 행사를 개최한다.
군에서도 해돋이 인파들을 위해 올 연초부터 망양정 인근에다 해맞이 공원을 새로 조성 중에 있다. 올해는 종각도 건립, 타종식을 통해 가는 한 해의 아쉬움을 대신할 계획도 구상중이다. 해맞이 행사도 군 행사로 격상시킬 예정이다. 아마 내년 망양정 해맞이는 올 해보다도 더욱 성대하게 치러질 것으로 예상된다.
◆새로 단장한 망양정
망양정은 조선 숙종이 관동팔경 중 그 경치가 으뜸이라 하여 관동제일루(關東第一樓)라는 편액을 하사했다. 하지만 아쉽게도 숙종때의 곳은 지금의 정자가 아니다.
윤명한 울진군청 문화관광담당은 "망양정의 원래 위치는 기성면 망양리입니다. 고려시대 때 기성 망양리 해안가에 있던 것을 조선 성종때 낡았다 하여 망양리 현종산 기슭으로 옮겨왔고 그 뒤 철종 때인 1860년에 현재의 위치로 이전해 지었다고 전합니다"라고 했다.
가만히 보니 그랬다. 기와며 기둥이 모두 새것이었다. '어찌 된 것이냐?'고 물었더니 윤 담당은 "옮겨 온 것도 오랜 세월 비바람에 의해 나무부분이 부식되고 지붕기와가 심하게 훼손돼 작년에 5억3천여만 원을 들여 정자를 완전 해체, 개축했다"고 했다.
◆시인 묵객이 노래한 옛 망양정
옛 망양정은 현재 위치에서 남쪽으로 10여km 떨어진 7번 국도변 절벽 위에 있다. 비록 정자는 사라지고 없지만 옛 영화가 그리운 듯 해풍과 함께 긴 세월을 살아온 늙은 소나무 다섯 그루와 유허비만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송강 정철은 망양정에서의 감흥을 이렇게 읊조렸다.
'천근(天根-하늘 끝)을 못내 보아 망양정에 올라보니/바다 밖은 하늘이니 하늘 밖은 무엇인고/ 가뜩이나 노한 고래(성난 파도) 뉘라서 놀래관대/ 불거니 뿜거니(오르거니 내리거니) 어지러이 구는 지고/ 은산(銀山-파도)을 꺾어 내어 육합(六合-온 세상)에 내리는 듯/ 오월 장천(長天)에 백설(白雪-물보라)은 무슨 일고'
정말 그랬다. 두 눈에 모두 담을 수 없는 바다가 그랬고, 너울대는 파도가 그랬다. 송강이 묘사한 장엄한 모습처럼 파도는 400여년 전이나 지금이나 똑 같은 모습이 아닐까.
망양정의 풍광을 노래한 이가 어디 송강 이뿐이랴.
아계(鵝溪) 이산해(李山海.1539~1609)는 아계유고(鵝溪遺稿)에서, 나재(懶齋) 채수(蔡壽)는 망양정기 등을 통해 절경을 노래했다. 임금도 예외는 아니다. 숙종은 '집채만한 파도가 하늘에 닿아 있네/ 만약 저 바다가 술이라면/ 내 어찌 300잔만 마실 수 있으리/'라고 노래했다.
울진역사연구소 김성준 소장은 "이태백의 시에 보면 '내가 만약 100년을 산다면 3만6천500일을 하루에 술 300잔씩 마시리'라는 구절이 있는데 아마도 여기서 유래가 된 것이 아닌가 싶다"고 해석했다.
어쨌든 임금이 노래할 정도라면 당대에 글 깨나 하는 웬만한 문장가들은 모두 다녀가지 않았을까 싶다. 망양정의 옛 모습은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과 대동지지(大東地志) 등 고서나 그림으로도 남아있다. 우리 산천을 소재로 내재된 아름다움까지 사실적으로 그려낸 겸재(謙齋) 정선(鄭敾,1676~1759)의 진경산수화(眞景山水畵)가 대표적이다.
깎아내린 듯한 해안가 절벽 위에 정면 4칸, 측면 3칸의 팔작지붕의 누각이 늠름하게 서 있고 주변에는 담장으로 둘러 친 대문 비슷한 건축물도 보인다. 바다에는 한가롭게 떠 있는 돛단배 2척이 눈에 들어온다.
누구라도 망양정의 옛 터에 서면 송강의 호방함과 겸재의 사실감이 녹아있는 그 바다를 다시 그릴 수 있을 듯하다.
울진·황이주기자 ijhwang@msnet.co.kr
사진 : (위)망양정 옛터에서 바라본 풍광. 고즈넉하게 서 있는 소나무가 운치를 더 해주고 있다. (가운데)보는 이로 하여금 가슴을 조리게 할 만큼 절벽 끝자락에 세워진 정자의 모습이 늠름하면서도 한가롭게 보인다. (아래)겸재의 망양정 진경산수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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