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가루와 같이 부드러운 고양이의 털에 / 고운 봄의 향기가 어리우도다. // 금방울 같이 호동그란 고양이 눈에 / 미친 봄의 불길이 흐르도다. // 고요히 다물은 고양이 입술에 /포근한 봄 졸음이 떠돌아라. // 날카롭게 쭉 뻗은 고양이 수염에 / 푸른 봄의 생기가 뛰놀아라." 대구가 낳은 시인 고월 이장희(1900~1929)는 일찍이 '봄은 고양이로다'에서 이렇게 노래했다. 고양이의 수염에 뛰노는 봄의 생기를 심상에 비추어 생생하게 묘사한 시다.
쪊봄이 오는 길목이다. 요즘 날씨가 변덕스럽기는 하지만, 고월이 노래한 대로 벌써 푸른 봄의 생기가 가깝게 느껴지기도 한다. 옛 시에 이르기를 "앉을 성품 못되어 이리저리 어정대는 노인(散脚道人無座性) 문 닫고 열흘 동안 매화 피길 기다린다(閉門十日爲梅花)"고 했다. 노년에 보는 봄꽃의 의미는 이처럼 각별하지만, 길가에 핀 봄꽃 한 송이도 예사롭게 보는 사람이 있을까. 아직은 마음까지 움츠리면서도 화신(花信)을 기다리게 된다.
쪊올해는 개나리·진달래 등 봄꽃이 지난해보다 6~7일, 평년보다는 2~3일 일찍 필 것으로 보인다. 기상청은 개나리가 3월 16일, 진달래는 3월 19일 제주 서귀포에서 피기 시작해 남부지방엔 19~23일과 20~28일 각각 개화할 거라고 전망했다. 날씨 변화에 따라 개화 시기가 다소 달라질 수는 있으나, 이같이 올 봄의 꽃들이 일찍 피는 까닭은 다음 달 평균 기온이 평년(영하 1도~영상 10도)보다 높을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쪊봄꽃은 기온의 변화에 가장 큰 영향을 받으며, 동일 위도에서도 고도가 100m 높아질 때마다 평균 이틀가량 늦게 피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아무튼 올해의 봄꽃들이 여느 해보다 일찍 핀다는 소식이 예사롭게 들리지 않은 건 '왜'일까. 마음까지 움츠리며 껴입었던 겨울 외투를 벗어 버린 가슴 속으로 유난히 파고들기 때문일는지 모른다.
쪊중진 시인 황동규가 최근 새 시집 '꽃의 고요'를 냈다. 이 꽃소식 같은 선물을 반갑게 받아 읽고 있다. 표제시에 이런 구절이 보인다. "'고요도 소리의 집합 가운데 하나가 아니겠는가? / 꽃이 울며 지기를 바라시는가, / 왁자지껄 웃으며 지길 바라시는가?' / 노래하며 질 수도…'" 그랬다. 우리는 너무 오래 몸도 마음도 무겁게 지쳐 있다. 올 봄에는 아름다운 꽃들이 고요한 평화의 노래를 읊조려 주기를 기대하는 마음 간절하다.
이태수 논설주간 tspoet@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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