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역사속의 오늘-2.28 대구 학생의거

1960년 2월 28일 낮 대구 경북고교 운동장에 학생부위원장 이대우와 학생위원 안효영이 조회단에 뛰어올라 결의문을 낭독했다. "백만 학도여, 피가 있거든 우리의 신성한 권리를 위하여 서슴지 말고 일어서라. 학도들의 붉은 피가 지금 이 순간에도 뛰놀고 있으며, 정의에 배반되는 불의를 쳐부수기 위해 이 목숨 다할 때까지 투쟁하는 것이 우리의 기백이며, 정의감에 입각한 이성의 호소인 것이다."

부정선거를 획책하는 자유당 정권의 꼼수에 분노한 학생들은 이들의 격앙된 목소리에 고조돼 함성을 지르고 박수를 쳤다. 그리고 800여 명의 학생들은 자신들의 뜻을 시민들에게 알리겠다며 교문 밖으로 나섰다.

이것이 바로 6·10 만세 사건과 광주학생운동에 이은 고교생들이 주체가 된 학생운동 '2·28 학생의거'의 시작이었다. 민주당 장면 후보의 강연 참석을 막기 위한 일요일 등교 명령에 대한 거부로 촉발된 이날 의거는 사대부고·대구고·대구상고·대구농고·대구공고·경북여고·대구여고 등의 학생 1천200여 명이 참가한 대규모 시위로 발전했다.

신문 보도로 전국에 알려진 이날 의거는 결국 4·19의거로 이어져 자유당 독재정권을 무너뜨리는 도화선이 됐다. ▲1947년 대만 '2·28 양민학살사건' 발생 ▲2001년 공정거래위원회, 신문고시 부활 결정.

조문호기자 news119@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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