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출향 경제인과 차 한잔] 이영탁 한국 증권선물거래소 초대 이사장

"2008년'세계 톱10'선물거래소 만들겠다"

이영탁(58) 한국증권선물거래소(KRX) 초대 이사장은 매주 절반은 서울에, 절반은 부산에 있다. 증권선물거래소 본사가 꼭 1년 전 부산에 세워졌으나 여전히 서울에서의 업무가 막중하기 때문에 왔다 갔다 할 수밖에 없다.

그러다보니 거대 수도권의 힘과 지방의 몸부림을 동시에 지켜볼 수 있다. 비행기 속에서든 KTX를 타고서든 서울, 부산과 그의 고향인 영주와 경북, 대구의 미래를 자주 비교해보는 일은 그에게 자연스러운 일이다.

◆국제금융도시로 도약하려는 부산=1년 전 부산은 큰 경사를 맞았다. 증권선물거래소 본사를 부산에 설립하기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증권선물거래소는 기존의 증권거래소, 선물거래소, 코스닥 등 3개 시장을 하나로 합친 증권 거래의 몸통이다. 부산이 국제금융도시가 되겠다는 부푼 꿈을 꾸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 이사장은 "부산이 국제금융도시가 되는데에는 시간이 걸리겠지만 그 면모를 갖추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말했다. "국제금융도시에 증권시장 본부가 있느냐 없느냐는 결정적입니다. KRX가 선발대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죠."

부산이 국제금융도시라는 비전을 갖고 있었기에 국가균형발전위원회가 금융관련 공공기관을 부산으로 이전하기로 결정한 데에 이견이 없었다. 한국전력처럼 여러 도시가 부산을 상대로 경쟁하려고도 하지 않았다. 바로 선점 효과다.

이 이사장은 "맏형격인 KRX가 있었기에 증권예탁결제원, 자산관리공사, 한국주택금융공사, 대한주택보증, 기술신용보증기금 등 금융관련 공공기관의 부산 이전이 가능했다"고 말했다.

물론 KRX의 부산 진출에 따른 직접적 경제효과는 아직 그리 크지 않다. 임직원 150여 명이 집을 옮긴 정도다. 아직 본사 사옥도 설립하지 않았다. 부산에서는 말로만 부산에 온 것 아니냐는 불만도 갖고 있다. 이 이사장은 이에 대해 기우라고 했다. 증권선물거래소법에 KRX 입지를 부산이라고 못박아둬 결국 부산이 '증권 수도'가 될 것이라는 얘기다.

◆세계 톱10 거래소 만들겠다=이 이사장은 KRX 초대이사장이 되자마자 '글로벌 KRX, 동북아 최고의 자본시장'이란 비전을 제시했다. 비전 달성을 위한 4가지 구체적 목표 가운데 하나가 2008년까지 '세계 톱10 거래소'가 되는 것이다.

톱10은 거래대금 등 외적 규모가 전부가 아니다. 시장 안정성, 투자자 자세, 시장 시스템, 시장 운영 노하우, 시장 감시 시스템, 정부 규제 정도 등 제반 여건이 성숙돼 선진화할 때 톱10이 될 수 있다고 그는 믿고 있다.

이 가운데 우선 주력하고 있는 것이 국제화다. 중국 등 외국기업 상장 추진이 그것. 그는 "외국기업이 상장돼 있지 않은 곳은 우리밖에 없다"며 "대외적 위상에서 국제 거래소가 되기 위해서는 외국기업 상장이 필수적"이라고 말했다.

그는 지난해 중국기업 상장을 위해 중국증권감독위원회 상푸린 주석을 만나 실무자 협의체 구성에 합의하는 결실을 맺었다. "지난해 가시적 성과가 날 것으로 기대했지만 조금 늦춰지고 있습니다. 중국 국유기업의 경우 주식의 30%만 유통시키고 70%를 비유통주로 묶어두고 있어 차질이 생긴 거지요. 상반기 중 가시적 성과가 있을 것으로 봅니다."

그는 KRX를 올해 안에 상장시킨다는 목표도 갖고 있다. 통합거래소가 주식회사가 된 만큼 기업공개(IPO)가 자연스럽다고 본 것. "KRX가 상장되면 경영이 더욱 정도로 가고 투명해질 것입니다. 지배구조가 선진화하고 회계관행도 국제규범에 맞게 되겠지요. 그래서 세계 유수 거래소는 대부분 공개돼 있거나 공개를 추진하고 있습니다."

◆KRX의 부산화=KRX는 올해 화두로 국제화와 함께 부산화(釜山化)를 함께 들고 있다. 부산 시민의 사랑과 관심을 받는 KRX가 되겠다는 것. 이를 위해 다양한 방안을 강구하고 있다.

일부 언론에서 '부산 법적 본사, 서울 사실상 본사' 체제로 비효율이 크다고 지적하지만 이 이사장은 "몸은 피곤해도 업무에 큰 문제점은 없다"고 했다. 직원 회의는 영상회의로, 결재는 전자결재로 한다. 서울서 할 일과 부산서 할 일을 몰아서 하기 때문에 집중력이 높아지는 측면도 있다.

지역민 기대가 큰 공공기관 이전에 대해 그는 "이전 기관 직원들 주거문제, 취학문제 등을 풀어줘 불편하지 않게 해줘야 지역에 하루라도 빨리 착근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대구·경북은 미래를 스스로 비관한다=목소리 톤이 유난히 낮은 편인 이 이사장은 부산과 대구의 차이를 묻자 톤이 조금 올라갔다. 성공한 경제관료로서 지난 총선 때 고향을 위해 일하겠다며 열린우리당 후보로 나섰다가 고배를 마신 쓴경험이 있는 그로서 회한도 있을 법하다.

"부산은 대구와 다릅니다. 같은 지방으로서 위기의식은 대구와 마찬가지로 갖고 있지만 각종 개발사업이나 앞으로 지향하는 바를 보면 부산에는 활력이 있어요. 부산은 외지 사람에 대한 포용력이 큽니다. 더불어 살아가려는 자세가 갖춰져 있는 거죠. 바닷가라서 그런지 날씨도 좋고 먹을 거리도 풍부해요. 우리 직원들도 '살기 좋다'고 합니다. 그러나 대구·경북은 어떻습니까?"

조금 뜸을 들인 그는 대구·경북을 "일자리 구하기 어렵고, 유망한 기업체가 있는 것도 아니고, 인구는 줄고, 앞으로 딱히 잘 되겠다는 전망이 있는 것도 아니고, 선거다 뭐다 해서 민심은 갈라져 있는 곳"이라고 규정한 뒤 "바뀌려면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 같다"고 안타까워했다.

특히 그는 대구·경북이 이러한 문제의식은 갖고 있지만 문제를 풀려는 노력이 매우 부족하다고 강조했다. "대구·경북 사람들을 만나보면 현재 처한 문제점을 너무도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말만 그렇지 행동을 하지 않잖아요? 리더들이 깊이 고민하는 것이 정말 필요합니다."

정치세력의 다양성이 부족하고, 지역의 미래를 스스로 비관하는 대구·경북의 병(病)을 치유할 묘책을 그도 갖고 있지 못한 듯했다. 병의 원인이 워낙 복합적이고 치유에 시간이 걸리는 문제여서인지도 모른다. 그는 "어떤 식으로든 미래에 대해 희망을 갖고 주민이 함께 뛰는 계기가 마련됐으면 좋겠는데 마음만 너무 상해있는 듯하다"며 말끝을 흐렸다.

최재왕기자 jwchoi@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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