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 28일 타계한 재일 인권변호사 고(故) 김경득(56)의 유언이 뒤늦게 알려지는 순간, 등골이 서늘해졌다. 김 변호사의 '마지막 절규'가 담고 있는 일본 '평화 헌법'의 '위기'를 국내에서는 무관심하게 흘려 버리기 때문이었다. 재팬타임스와 아사히신문에 의해 공개된 유언은 재일 교포들이 용도 폐기될 처지가 된 일본 '평화 헌법'을 지켜달라는 사명감을 주문했다.
◇고인은 지금부터 30년 전인 1976년, 재일 교포로 일본 사법시험에 합격했으나 "귀화를 해야 연수원에 받아 준다"는 차별 조치를 당했다. 기득권층이 누릴 부귀영화를 제시하며 '귀화'를 종용했으나 '쉬운 길'을 포기하고 일본 최고재판소와 아사히신문에 청원서를 내는 '좁은 문'을 택했다. 이후 일본 양심 세력의 지지를 얻어 일본 내 첫 외국인 변호사가 되자마자 재일 교포의 인권과 지위 개선에 앞장섰다. 지문 날인 거부 운동과 일본군 위안부 소송을 포함한 전후 보상 소송의 꼭짓점에 김경득이 있었다.
◇그런 김 변호사가 사신(死神)을 마주하며 거론했던 일본 평화 헌법의 위기는 심각하다. 날로 우익화, 군사 대국화하는 일본은 군대 보유와 전쟁을 못하도록 막고 있는 '평화 헌법'을 언제든지 쓰레기통으로 집어넣을 태세다.
◇요즘 일본 청년들은 경제 대국 일본이 왜 군대를 갖지 못하는지에 대해 납득하지 못한다. 일본 정부가 세계사를 객관적으로 가르치지 않고 민족을 앞세워 왜곡된 역사를 가르치기 때문이다. 21세기적 침략 시도를 일본 평화 헌법이 힘겹게 막아 주는 형국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그에 대해 관심도 없고, 대응 방안도 갖지 못하고 있다. 오죽하면 고인이 식민 통치의 부산물로 원치 않게 재일 교포가 된 65만 명에게 그런 사명감을 부여하고 떠나야 했을까.
◇평화 헌법은 일본만이 아니라 우리나라에도 소중하다. 지난해 죽순문학회와 구상 선생 추모식 참석차 대구에 왔던 일본 미야자키현의 세구치, 미나미 등 문인과 노벨 평화상 수상자인 오에 겐자부로 등은 평화 헌법을 지키려는 대표적인 파수꾼들이다. 하지만 일본 내 양심 세력은 절대적인 열세이다. 이제 재일 교포와 우리나라가 중국 태국 필리핀 등 일본 식민 통치의 피해를 입은 인접 국가들과 연대해 일본 평화 헌법 지키기에 나서야 할 때다.
최미화 논설위원 magohalmi@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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