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56년전 살려주신 그 은혜 "목이 메어 불러봅니다"

대명성당 강순건신부-백발의 미국인 감격상봉

26일 오전 대구 남구 대명성당. 이날 미사가 끝나자 이 성당 강순건(56) 신부가 신도 틈에 끼어있던 백발의 한 미국인을 얼싸안았다.로버트 루니(Robert Lunney·79) 씨. 강 신부는 루니 씨를 생명의 은인이라고 소개했다.

그리고 그들은 56년 전 겨울을 추억했다. 압록강까지 진군했던 연합군은 중공군의 대공세에 밀려 전면 철수 작전을 개시했고 강 신부의 어머니도 남으로 피난을 결심했다. 하지만 마땅한 교통수단이 없어 발을 동동 굴렀는데 이 때 등장한 것이 미국 병참 수송선 매러디스 빅토리호(선장 마리너스 레너드 라루).

미국 본토에서 승무원 47명과 제트연료를 가득 싣고 포화 속에 어렵게 흥남항에 정박했다.숨돌릴 틈 없던 그 때 미군 측은 피난민 수송 작전을 제의했고 선장과 승무원들은 제트연료를 싣고 있어 위험한데도 불구 최대한 많이 태우겠다며 수락했다.

다른 배들은 위험 때문에 속속 출항했지만 빅토리호는 끝까지 남아 피난민을 태웠다. 강 신부의 어머니도 이 속에 포함돼 있었다.루니 씨는 당시 상황을 똑똑히 기억했다. "12월22일 저녁 영하 30℃의 강추위 속에서 한 젊은 여성이 양 손에 아이 손을 잡고 등에 아기를 업은 채 배에 탔습니다. 등에 업힌 생후 10개월 아기가 강 신부님이었어요."

빅토리 호는 1950년 12월 23일 낮 '구할 수 있는 모든 인원'을 승선시킨 뒤 흥남 출항 사흘만인 1950년 12월 26일 피난민들을 무사히 경남 거제도에 안착시켰다.루니 씨는 한국전쟁 이후 코넬대 법과대학원에 진학, 미국 법무부 연방검사로 일하다 현재는 변호사로 활동중이다. 이달 전주 우석대의 초청으로 방한, 24일 명예정치학박사 학위를 받았고 어머니로부터 '1950년 흥남부두의 사연'을 들어온 강 신부와도 상봉의 기쁨을 나눴다.

당시 과감한 결단으로 피난민을 구한 라루 선장은 휴전 이후 한국정부로부터 을지무공훈장을, 루니 씨를 비롯한 선원들은 대통령 표창을 받았다. 빅토리호는 미국 의회로부터 '용감한 선박 표창(1960년)을 받았으며 2004년 9월엔 가장 많은 인명을 구조한 배로 공인받아 기네스북에 오르기도 했다.

채정민기자 cwolf@msnet.co.kr

사진: 1950년 12월 한국전쟁 흥남철수 당시 메러디스 빅토리호에 1만 4천명의 피난민을 태워 무사히 구한 미국인 루니(79)씨(가운데) 부부가 26일 오전 대구시 남구 대명성당을 찾아 당시 배로 함게 탈출했던 강순건(56) 신부와 상봉, 기쁨을 나누고 있다. 김태형기자thkim21@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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