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주말에세이-봄볕과 만나는 또 하나의 기쁨

겨우내 불어 닥친 칼바람을 이겨내고 금빛 옷을 벗어버린 나무들은 가지마다 새순을 내기 위해 눈을 만들고 있습니다. 꽃이 피었다 지고 다시 바람이 불고 눈비가 내려도 끄떡하지 않는 당당함으로 서있기 위해 봄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논두렁 밭두렁에도 나물을 뜯기 위해 아낙들이 바구니를 챙깁니다. 조상들이 춘삼월 피는 꽃으로 화전을 부쳐 먹듯 아낙들의 손끝에 들린 냉이와 어린 쑥은 사랑하는 가족의 식탁에 오를 봄의 전령사입니다.

그리고 벚꽃이 새하얗게, 산수유는 샛노랗게, 연분홍 복사꽃도 봄볕 앞에 부끄러운 듯 속살을 살며시 드러내다가 어느새 흐드러지게 피어나겠지요. 봄 들판이 우리들의 눈을 호사시켜 줍니다. 눈이 부십니다. 그렇게 봄이 찾아옵니다.

그러나 조용히 생각에 잠겨봅니다. 사람들은 푸르고 당당한 나무에 피어나는 꽃들과 화사해진 여인들의 옷차림과 같이 크고 화려한 것들에서만 봄을 느끼는 것은 아닌지요. 따사로운 햇살 아래에도 그늘이 있듯이 발 딛고 살아가는 내 땅 내 마음에도 햇살이 그냥 비껴가는 곳이 너무나 많다는 것을 생각해 봅니다.

조용히 그러나 가장 먼저 봄을 알리지만, 땅 끝에서 피어나는 민들레꽃과 할미꽃같이 엎드려 찾아온 낮은 꽃들은 외면하고 짓밟지는 않았는지요. 그들에게도 우리의 눈과 마음을 주는 것은 어떨는지요.

작고 앙증스런 꽃잎과 이파리들이 밟히고 밟히면서도 매년 또 그 자리에나 그 옆자리에 피어나는 끈기를 이제는 사랑스럽게 내려다볼 일은 아닐는지요. 지난 겨울 석간신문 한쪽에서 가슴 뭉클한 아름다운 기사를 접한 적이 있습니다.

새까만 고사리 손들이 마음을 모아 배달한 사랑이었습니다. "할머니 할아버지 따뜻한 겨울 되세요." 밤새도록 하얀 눈이 쌓인 좁디좁은 골목길에 까만 인간 띠가 등장했던 것입니다. 서울의

어느 초등학교 학생봉사단이 외로운 노인들께 난생 처음으로 만져보는 연탄을 선물로 드리는 장면이었습니다.

우리는 이렇게 살아가면서 비록 선생님의 가르침이 아니더라도 참으로 소중한 것들을 많이 만나게 됩니다. 봄바람이 살랑이며 불어오고 있습니다. 고요하던 나무가 흔들립니다. 나무를 흔드는 바람을 손으로 잡을 수는 없지만, 흔들리는 나무를 보면 그곳에 바람이 스쳐 지나감을 알 수 있습니다.

사랑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렇게 소중한 일들은 눈에 보이지도 않고 만질 수도 없는 것들이 참 많이 있습니다. 사랑뿐이 아닙니다. 우리의 나이, 미래에 대한 두려움, 목 메는 그리움, 타인에 대한 미움도 모두 볼 수도 만질 수도 없는 것들입니다.

다만 사랑도 미움도 모두 느끼고 깨닫는 받아들임의 정도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겠지요. 비록 매력 있고 세련되지는 못하더라도 우리 내면에 감춰진 이러한 것들에 진짜 봄을 가져오는 일. 낮게 피어나는 작은 꽃들을 내려다보는 심정으로 나 자신과 사회를 신뢰하고 다가가는 일이 소중하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지금 후회 없이 사랑하고 조건 없이 사랑해야 진짜 사랑이라는 어느 스님의 수행론처럼, 아무런 조건 없이 이루어지는 이러한 자기성찰이야말로 마치 낮은 데서 피어나는 민들레의 아름다움을 인식하는 것과 다를 바 없을 듯합니다.

오백 년 전 다빈치의 하늘을 날고 싶은 꿈이 노력으로 이루어졌듯이 삶을 이루고 있는 작은 인연들을 사랑과 자성으로 엮는 노력을 기울인다면, 다빈치의 꿈은 앞으로 오백 년 뒤에도 계속될 것입니다.

오늘 당신의 사랑을 담은 한마디의 말, 한 장의 쪽지, 한 통의 안부전화가 피어나는 꽃잎에 윤기를 더해 주는 봄비가 될 것입니다. 봄볕과 함께 만나게 되는 이 작은 생명들과 함께 또 다른 삶의 기쁨을 만나는 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류정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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