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엔 각종 사기꾼들로 넘쳐난다?'
새 5천원권의 방향을 이리저리 돌려보면 그림이 바뀌거나 색이 변한다. 율곡 이이 선생이 그려져 있는 앞면에는 빛나는 동그란 부분이 방향에 따라 한국 지도, 태극과 5천, 4괘 등 3가지 그림으로 바뀐다. 또 뒷면의 5000이란 숫자도 각도에 따라 색깔이 황금색에서 녹색으로 변한다.
여기에는 홀로그램, 색 변환 잉크 등의 기술이 동원됐다. 홀로그램 아래쪽에는 볼록하게 문자가 인쇄돼 있다. 이는 비단 5천원권 지폐에만 사용되는 기술이 아니다. 세계 각국의 지폐에는 최첨단 과학의 기술들이 집결해 있다.
외계인 형상의 특수 나노섬유가 '지문'처럼 포함된 지폐 제작 기술도 개발된 상태여서 머지않아 이 같은 지폐가 상용될 전망이다. 하지만 여기서 머물지 않는다. 지폐 속의 이러한 기술들은 또 다른 과학적 기술을 요구하며 계속 진화하고 있다.
그렇다면 모든 첨단의 과학 기술이 지폐 속으로 들어가고 있는 까닭은 무엇일까?마치 진짜인 것처럼 똑같이 만들어 내려는 위조의 기술 또한 멈추지 않고 발전을 거듭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에게 소유에 대한 욕망이 자라나면서 세상에는 언제나 '진짜'와 함께 '가짜'들도 생겨났다.
벌거벗은 채 거리를 달리며 "유레카"를 외쳤던 아르키메데스. 수학자이자 발명가이기도 했던 그가 고대 위조 주화 식별 전문가였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그리 많지 않다. 가짜는 고대 그리스·로마 시대부터 존재하고 있었다. 가짜의 역사는 그만큼 깊다.
책 '발칙하고 기발한···'은 일반인의 상식으로는 상상조차 불가능한 기상천외한 위조방법과 사기꾼들의 역사를 흥미롭게 모아 놓았다. 역사상 갖가지 위조된 것들을 둘러싼 에피소드와 이의 진위 여부를 가려내기 위한 정밀한 기술이 책에서 소개되고 있다.
화폐에서부터 미술품, 문서, 고대유물 등 가짜가 등장했던 범위는 넓고도 다양하다. 과학수사에 대한 전문 저술가인 저자는 이런 가짜들이 어떻게 위조되고 유통되었으며, 결국에 어떤 처벌을 받았는지 그 궤적을 쫓으며 가짜들의 경이로운 세계를 펼쳐보인다.
에펠탑을 두 번이나 팔아먹은 빅토르 루스티그, 단 10초 만에 앙리 마그리트의 드로잉 작품을 그려내는 드 호리, 유럽 전역을 홀로코스트의 공포에 빠뜨린 히틀러의 일기마저 돈벌이의 수단으로 위조한 콘라트 쿠자우, 미국 재무부도 그 섬세한 기술에 혀를 내두른 위조 화폐범 윌리엄 스미스 등의 이야기가 독자들의 눈을 뗄 수 없게 한다.
위조와 사기에 능수능란한 이들의 수완은 과연 어느 정도였을까?미켈란젤로도 가짜 미술 제작자였다. 그는 '잠자는 큐피드'라는 조각상을 모사해 땅에 묻어두었다가 다시 파내어 산 조르조 추기경에게 팔아먹었다. 추기경이 나중에 가짜라는 사실을 알고 환불을 요구했지만 주위 사람들은 조각상의 가치를 몰라본다며 오히려 추기경을 손가락질했다.
위조된 이탈리아 독재자 베니토 무솔리니의 일기는 그의 아들마저 속일 정도로 정교했다. 다윈이 제시한 진화론의 사라진 고리로 불리던 '필트다운 인류'는 오랑우탄 턱뼈에 사람의 어금니 뼈를 붙여 놓은 것이 발각되면서 비로소 가짜로 판명되었다.
가짜는 신분을 속여 사는 삶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제임스 배리 박사는 여자임에도 남장을 하고 죽는 날까지 남자 군의관으로 살았다. 국교 정상화를 위해 러시아 황궁에 들어가 활약한 프랑스의 여장 스파이, 의사 신분으로 위장해 한국전에 참전했다가 얼떨결에 세 명의 한국군의 목숨을 살려주고 명의로 이름을 날린 데마라, 자신이 볼셰비키 혁명 후 살해된 러시아 황제 니콜라이 2세의 딸 아나스타샤라고 주장한 안나 앤더슨의 이야기는 1950년대 최고의 여배우 잉그리드 버그만이 주연한 영화로 만들어질 정도였다.
위조와 사기의 기본 목적은 말할 것도 없이 부당한 방법으로 돈벌이를 하는 것. 그러나 전문가들을 속이는 데 보람을 느낀 이들도 있었다.가짜 조각상을 너무도 완벽하게 만들어 명성 높은 미술관들을 감쪽같이 속여 작품을 구입하게 한 도세나는 "나는 결코 남의 작품을 모방하지 않는다. 이는 단지 내가 작품을 만드는 방식이다"며 전문가들을 농락했다.
탐욕이 위조와 사기를 탄생시켰지만 어쩌면 이 탐욕은 사기꾼들만의 것이 아니라 여기에 속는 피해자의 탐욕이기도 했다.
언제나 많은 돈을 벌어주겠다는 사기꾼들의 제안에 빠져드는 이들 또한 이미 그것이 불법적인 방법으로 돈을 버는 것이라는 것을 알지만 단지 큰 이득을 볼 수 있다는 개인적 욕심 때문에 그 유혹에 빠져드는 것을 보면 결국 위조와 사기는 인간의 무한한 욕구에서 비롯된다는 사실과 맞닿아있는 것이다.
최두성기자 dschoi@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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