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2006년 '왕의 남자' 한국영화 흥행史 새로 쓴다

영화계 주요 인사 축하 메시지·의미

관객의 힘이었다. 영화 '왕의 남자'가 한국 영화의 흥행 기록을 다시 쓴다. 배급사인 시네마서비스에 따르면 이번 주말 2004년 '태극기 휘날리며'가 갖고 있던 1천174만 명이라는 기록을 깰 것으로 보인다. 1일 현재 1천159만6천 명이 들었기 때문이다. '왕의 남자'의 기록 경신은 2004년 '실미도'와 '태극기 휘날리며'가 잇달아 1천만 명 이상의 관객을 동원하며 '관객 1천만 시대'를 이끈 이후 2년 만에 갈아치우게 되는 것이다.

영화계는 특히 한마음으로 '왕의 남자'의 대기록 달성을 축하하고 있다. 이 같은 흥행 기록을 관객이 만들어줬다는 데서 의미가 더욱 크기 때문이다. 물론 관객이 들었다는 점에서는 '실미도'나 '태극기 휘날리며'와 같지만, 두 영화는 애초부터 흥행 기록을 목표로 한 블록버스터로서 배급과 마케팅 분야에서 대대적인 물량 공세를 펼쳤다. 이와 달리 '왕의 남자'는 순제작비 43억 원이라는 작은 규모로 촘촘하고 완성도 있는 작품을 만들어 관객의 자발적이고 적극적인 참여를 이끌어내 이 같은 성과를 거뒀다.

또한 스타 캐스팅이 아니었음에도 흥행 성공을 해 스타를 고집하는 제작자와 투자자들에게 경종을 울렸다. 지금까지 흥행과 거리가 멀었던 사극이라는 장르로 이런 성적을 거둔 것도 소재 발굴에 숨통을 트이게 했다.

무엇보다 '좋은 작품은 관객이 알아본다'는 진리를 새삼 확인한 것이 영화계에는 힘을 주는 요인이다. 영화계 주요 인사들로부터 '왕의 남자' 흥행 신기록이 갖는 의미와 축하 메시지, 소감 등을 들었다.

◇정진영('왕의 남자' 연산 역) = 개인적으로 실감이 잘 나지 않는다. 이 영화를 찍을 때 촬영 전 캐릭터를 알려고 노력했던 다른 영화와는 달리 제대로 모르고 임했다. 논리나 이성으로 연산을 접근한 게 아니라 감성으로 마구 달렸다. 그래서 촬영을 마치고 쉽게 이 역을 잊어버릴 수 있었다. 그런데 막상 영화를 보니 퀄리티가 보장된 것 같아 기뻤다. 유사한 영화가 없었던 이 영화만의 독창성에 관객이 큰 점수를 준 것 같다. 연산이라는 인물은 식상하게 생각되기 쉽고, 조선시대 광대는 별다른 관심을 두지 않은 계층이어서 영화가 뻔할 줄 알았는데 전혀 새롭다는 느낌이 관객에게 크게 다가온 것이라 본다. 영화에 녹아 있는 우리 정서들에 대해 관객 스스로 재발견하고 즐긴 듯하다. 개인적으로 한국 문화의 깊이를 보여줄 수 있는 작품을 해보고 싶었는데 이 영화를 통해 그런 경험을 했고, 좋은 반응을 얻어 기분이 좋다. 흥행 여건이 좋지 않았는데도 관객이 여기까지 끌고 와주셔서 고맙다.

◇전찬일(평론가) = 한국 영화계에 너무 많은 의미를 던져준 영화라 한마디로 이야기하기 곤란할 정도다. 우선 '자발적인 흥행'을 들 수 있다. 지금까지 한국 영화 흥행작은 인위적 마케팅을 통해 만들어냈다는 인상이 짙었다. 이 영화라고 해서 인위적인 마케팅을 안 했을 리는 없는데 수면 위로 드러나지 않아 반감을 만들어내지 않았다. 도리어 관객이 자발적이고, 능동적으로 나서서 영화 흥행을 유도했다. 관객이 흥행에 자기 일처럼 나서는 가장 이상적이고 기념비적인 형태를 보였다.

또한 '왕의 남자'는 결국 흥행의 초석은 작품성이라는 인식을 깔아줬다. 결코 작품성이 흥행의 척도는 아니지만 작품성이 바탕이 돼야 대중적 만족도를 주고, 그래서 관객이 앞장서서 입소문을 내준다는 평범한 사실을 일깨워줬다. 지금까지 작품성과 대중적 만족도의 결합이라는 측면에서 '살인의 추억'이 가장 근접한 작품이었는데 '왕의 남자'는 더욱 대중의 지지를 받은 작품이다. 반복 관람이라는 특이한 현상을 이끌어낸 점에서도 예외적인 텍스트다. 한국 영화 투자 관행으로 볼 때 '스타 캐스팅'이 흥행에 절대적인 요소가 아니라는 것을 여실히 보여준 점도 큰 의미를 갖는다.

◇이춘연(영화인회의 이사장) = '왕의 남자'가 기록을 세웠다는 건 분명 축하할 일이다. 그러나 1천만 명 이상이 들었다는 기록 자체에만 의미를 둔다면 한국 영화인들의 그릇이 작은 거다.

한국 영화 중 1천만 관객 이상이 든 영화가 벌써 세 편이 됐다. 이를 토대로 한국 영화가 한국에서뿐 아니라 아시아, 세계로 나가는 발판을 만드는 디딤돌이 돼야한다. 우리 것을 해외에 알리는 것도 최우선이지만 남의 것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즉 문화는 교류라는 문화 선진 마인드가 필요한 때다. 문화는 장사의 대상이 아니라 교류의 대상이다.

'왕의 남자'의 기록은 대단한 사건이다. 그러나 우리들끼리의 잔치가 돼서는 안 된다. 한국 영화계가 최소한 아시아 문화를 아우르는 터전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한다.

◇노종윤(노비스엔터테인먼트 대표) = 무엇보다 영화 자체의 힘, 관객의 힘만으로 이 같은 대기록을 만들어냈다는 게 고무적이고 큰 의미가 있다. 사극 치고는 저렴한 제작비로 만족감 있게 만들어낸 영화가 배급 파워, 마케팅 파워, 스타 파워가 아닌 영화와 관객의 힘만으로 이런 결과를 얻었다. 지금껏 쌓아온 한국 영화의 힘이 '왕의 남자'를 통해 제대로 드러났다고 본다. 이 영화의 성공을 계기로 영화 산업을 움직이는 모든 틀에 대해 반성하게 한다.

영화 제작자나 감독에게 좋은 시나리오, 좋은 기획 등 영화 본질적인 측면이 가장 중요하다는 사실을 새삼 일깨워줬다. 날로 의미가 변질돼 가는 '배급'의 의미도 돌아보게 됐다. 400개, 500개 스크린을 장악하며 배급의 힘으로 흥행을 만들어가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왕의 남자'는 불과 200여 개의 스크린으로 시작해 관객의 요구로 스크린 수를 늘려갔다. 이게 진정한 배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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