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서 쓰는 제품 중에 수입품이 있어요?"
주부 류은주(35) 씨는 한참을 머뭇거리더니 "화장품 한두 가지 말고는 아무리 생각해도 수입품이 없네요"라고 대답했다. 류씨는 "물론 고가 수입 식기류 한두 가지나 목욕용품, 면도기 등 일부 수입 제품 선호도가 높은 품목들이 있다"며 "하지만 얼핏 생각해도 집에서 과연 외제를 쓰고 있나 하는 의구심이 들 만큼 가정에서 외제가 줄었다"고 했다. 그만큼 국내 제품의 품질과 가격 경쟁력이 뛰어나기 때문이다.
생필품에서 수입품이 갖는 무게감이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 한때 교동시장이나 봉덕시장 수입잡화점에서나 볼 수 있던 희귀 수입상품들은 이미 '희귀'라는 수식어가 떨어진 지 오래다. 백화점, 대형 유통점 곳곳에 수백 가지 품목들이 진열돼 있다. '희귀'라는 가치가 없어진 수입제품들은 품질·가격에서 국산에 밀린다. 한때 고급, 고가로 통하던 수입 과자류, 음료, 주류 등의 매출은 갈수록 줄고 있다.
동아백화점 수입식품 담당 이영동 계장은 "특히 수입식품의 경우 우수·고가라는 인식은 이미 사라진 지 오래됐다"며 "다만 고객 입맛이 글로벌화하면서 다양한 각국의 특색있는 요리재료가 인기를 모으고 있을 뿐"이라고 했다.
◆국산이 최고
국내산 제품 중 가장 두드러진 성장을 보이고 있는 부문은 단연 가전제품. 특히 디지털 영상가전의 경우 최근 3, 4년간 눈부신 기술 개발에 힘입어 매년 20~30% 이상 높은 신장률을 기록하며 전자제품 매출을 주도하고 있다. 불과 10여 년 전만 해도 대형TV 시장은 일본, 미국 등 수입 브랜드가 독차지했다. 하지만 최근엔 상황이 완전히 뒤바뀌었다. 현재 백화점 매장에서 국내산 영상제품과 수입산 영상제품의 판매 비율은 6.5대 3.5 수준. 전체 시장을 따진다면 수입산의 비중은 훨씬 떨어진다. 냉장고는 이미 백화점에서도 국산 비율이 80% 이상 차지하고 있다. 그나마 수입품이 명맥을 유지하는 분야는 소형가전 및 일부 전자제품.
화장품은 어떨까? 수입품이 주를 이루는 와중에 국산의 약진이 두드러지고 있다. 대구백화점 본점의 경우 25개 화장품 브랜드 중 국내산은 헤라, 오휘, 오션 등 3가지뿐. 이들 중 '헤라'가 화장품 브랜드 중 매출 1위를, 대백 프라자점에서는 26개 브랜드 중 2위를 기록하고 있다. 태평양화장품 '헤라'에서 선보이고 있는 한방화장품 '설화수'는 중장년층으로부터 폭발적 인기를 누리고 있으며, LG생활건강 '오휘' 화장품도 한방화장품인 '후'를 선보이며 매년 큰 폭의 신장세를 기록하고 있다.
의류 매장도 상황은 비슷하다. 대백 프라자점 남성팀의 경우, 제일모직에서 선보이는 국내 브랜드 '빈폴'이 캐주얼 의류 부문 매출액 1위를 기록했고, 아웃도어를 포함한 스프츠 의류 부문에선 '코오롱 스포츠'가, 캐포츠 의류에선 역시 토종 브랜드인 'EXR'이 단연 매출 선두를 달리고 있다. 대구백화점 매입부 안정원 과장은 "국내산 제품이 브랜드 파워를 구축하고, 질적인 면에서도 인정받고 있다"며 "무작정 수입 브랜드를 선호하는 경향은 갈수록 흐려지고 국내산 선호 추세가 두드러진다"고 했다.
◆모르고 쓰는 수입산
질레트 면도기, 도브 비누, 팬틴 샴푸 등은 너무 익숙한 나머지 외국 수입브랜드라는 인식조차 잘 못하는 제품들. 롯데백화점 대구점 생활용품 매장의 경우 주요 생활용품 수입 브랜드를 보면 팬틴·비달사순·헤드엔숄더 샴푸 등이 있고, 질레트 면도기, 오랄비 칫솔, 니베아·존슨즈베이비 로션, 페브리즈 방향제, 도브 비누 등이 대표적인 수입품이다.
하지만 이처럼 친숙한 브랜드에 대한 국산의 도전도 거세다. 이미 수입용품에 대한 고급화 인식이 사라진 만큼 품질로 경쟁하면 충분히 승산이 있다는 것. 생활용품류 대표기업인 LG생활건강과 애경은 각각 엘라스틴, 케라시스 등 고급 브랜드를 선보여 시장을 넓혀가고 있다. 도브 비누에 대항해 LG의 세이 비누는 허브, 로이스쳐 등 다양한 기능을 선보여 오히려 더 높은 가격에도 불구하고 인기가 높다. 이들 브랜드는 고기능성과 더불어 높은 가격대로 고급화를 꾀하고 있는 것. 실제 롯데의 경우 수입 생활용품들의 올해 신장률은 작년 동기에 비해 5~10%로 다소 주춤한 데 비해 국산 브랜드 매출은 20%대 신장세를 보이고 있다.
롯데백화점 대구점 지명각 생활건강매장 파트매니저는 "90년대 후반부터 국산 제품들이 수입 생활용품들을 벤치마킹하면서 수입품의 인기가 떨어졌다"며 "생필품의 경우 수입과 국내산 브랜드의 경계는 이미 허물어졌다"고 했다.
◆새로운 수입품 시장
웰빙 열풍과 함께 수입 올리브유의 매출은 2002년부터 50% 이상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아울러 외국 유학생, 해외여행 등의 증가로 외국요리에 관심이 커지면서 일본 된장, 올리브잎, 인도산 카레, 샐러드용 소스, 오이피클, 스파게티 재료 등을 중심으로 매출이 매년 10%대의 신장률을 보이고 있다. 물론 판매는 일부 마니아층의 고정고객을 중심으로 이뤄진다.
지난해 이마트 대구 5개점에 판매된 기장 대표적인 상품으로 와인, 올리브유, 수입 치즈 및 버터 등이 있다. 젊은층을 중심으로 식생활이 서구적으로 바뀌면서 매년 기록적 신장세를 나타내고 있다. 특히 와인의 경우 매년 30% 이상의 높은 신장세를 나타내고 있으며, 기존 미국 및 프랑스 와인에서 최근 칠레와 호주 등으로 다양해지면서 시장도 커지고 있다.
치즈의 경우에는 기존의 국산 슬라이스 치즈가 판매 주종을 이루고 있었다면 최근엔 수입산 치즈(일명 덩어리 치즈) 판매도 활발하다. 이마트의 경우 전체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아직 미미하지만 신장률은 127%에 이른 다.
수입 소스의 인기도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일본 기꼬망 간장과 스프, 홍콩과 호주의 이금기·라구레또 소스, 미국 하인즈의 피클과 콩류, 그리스·이탈리아의 시티아·베르톨리 올리브유 등이 대표적인 상품으로 인기몰이 중이다.
김수용기자 ks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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