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동해안 1천리를 가다-(7)울진 봉산 꽁치젓갈

남정네 뱃일 밀치고 마을 '주소득원'

'바닷가'하면 떠오르는 먹을 거리는 회와 젓갈이다. 회가 자연 그대로의 맛을 표현한다면 비릿하면서도 짭짤하고 구수한 맛을 내는 젓갈은 저장음식의 대표 선수인 셈이다.

삼국사기에는 신라의 신문왕이 왕비를 맞이할 때 폐백음식으로 젓갈로 사용했다는 기록이 있다. 그만큼 우리 식탁에서 오랫동안 사랑받은 음식인 셈이다. 울진 기성면 봉산리에 가면 다른 지역과는 좀 다른 독특한 젓갈이 있다.

◆흔한 꽁치가 젓갈로 변신, 특산품으로 승화

남·서해안에 새우 젓갈이 있다면 동해안엔 꽁치젓갈이 있다.

봉산 마을이 젓갈을 만들어 본격 판매에 나선 것은 지난 1995년. 농어촌 여성 일감 갖기 사업을 권장하던 울진군이 옛날부터 이어지고 있는 봉산 아낙네들의 꽁치젓갈 솜씨에 경영마인드를 접목시킨 뒤부터이다.

"김치를 담글 때마다 섞어 넣던 그 흔한 꽁치젓갈을 대량 생산해 판매하자는 제의를 받았을 땐 솔직히 황당했어요. 집집마다 젓갈을 담가 먹는데 누가 사먹겠냐는 생각에서죠. 그런데 그 흔한 젓갈이 팔리고 돈이 되더라고요."때마침 주문이 들어와 상품을 포장하던 최용선(53) 봉산생젓갈식품 대표의 말이다.

그러나 봉산 젓갈도 지금의 위치로 성장하기까진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처음 6명의 부녀회원이 모여 시작했지만 계속되는 적자로 창립멤버들이 거의 떠나고 최 대표와 이종언니인 황금자 씨만 남게된 것. 하지만 이왕 시작한 김에 끝을 보자는 생각에 끊임없이 연구한 끝에 이제는 울진을 대표하는 특산물로 성장했다. 사업이 성공궤도에 오르자 사업장을 떠났던 창립 멤버들과 일부 마을 주민들도 소규모 젓갈사업에 뛰어드는 등 마을의 상당수가 젓갈과 연을 맺고 있다.

울진군 농업기술센터 김선원 생활개선담당은 그동안 정말 힘들었다는 표정으로 이렇게 말했다. "최 대표만 그런 줄 아세요. 나는 답답하다 못해 안타까웠어요. 이 솜씨, 이 맛이면 상품화해도 충분히 승산이 있는데 막무가내로 안 하겠다고 하니, 정말 기가 막혔어요. 우여곡절 끝에 생산에 들어갔고, 또 적잖은 시련도 있었고……. 이제 주변으로부터 성공한 사업으로 평가받고 있어 정말 다행이에요."

◆동해안 별미의 비결

어느 고장이나 젓갈은 원료를 선별해 바닷물에 깨끗이 씻어 물기를 뺀 뒤, 원료와 소금을 적당한 비율로 섞어 용기에 담아 4, 5개월 숙성시키는 과정을 거친다.

하지만 봉산 젓갈은 옛 포구에서 담는 전통법인 토굴 발효법을 참고하고 있다는 게 특징이다. 토굴법은 산 밑에 굴을 파고 그 안에 항아리를 묻어 서늘한 기온에서 발효시키는 방법이다. 세월이 바뀌어 토굴을 파서 보관하지는 못하지만 대신 지하 창고에다 발효통을 보관, 토굴서에처럼 10~15℃로 저온 숙성시키고 있다.

또 하나는 소금으로 간을 맞추는 염장법이다.

"결정적인 비결은 소금에 있어요. 중국산 정제염 대신 국산 천일염만 사용하는거죠." 공장장 격인 황금자 씨의 남편 이경일(65) 씨가 거들었다. 여기에다 황씨는 "더욱 중요한 것은 소금을 얼마만큼 집어넣을 것인가 하는 손 감각에 달려 있지요. 고기의 크기와 신선도에 따라 넣는 양이 모두 달라요. 너무 많이 넣으면 짜고 색깔도 검게 되고 너무 적으면 싱겁게 돼 제맛이 나지 않아요"라고 덧붙였다.저온창고로 가 밀봉된 용기를 열고 맛본 젓갈은 짠맛이 거의 없고 담백하고 구수한 맛을 내고 있었다.

◆부업에서 주업이 된 젓갈 생산

이곳저곳을 살피는 동안 최 대표와 황씨가 점심 준비를 위해 자리를 뜨면서 남편들에게 이것 저것 지시했다. 최 대표의 남편 김진선(56) 씨는 "아내들이 회사 대표와 공장장이고 우린 종업원이죠. 회사가 잘 되려면 상사의 말에 절대 복종해야 하는 것 아니냐"며 웃었다. 옆에 있던 이씨도 "연간 매출이 1억 원이 넘어요. 그러다 보니 부업으로 여겼던 젓갈 생산이 주업이 되고, 뱃일을 하던 우리도 이 일에 매달릴 수밖에 없게 됐다"고 말했다.

점심을 먹고 난 뒤 "맛은 좋은데 먹고 난 다음 냄새 때문에 직장인들이 점심시간에 이용하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지 않겠느냐"고 묻자 대답은 간단했다. 울진군과 협력해 상품 다변화 및 신제품 개발을 시도하고 있으며 그 중 매실을 이용한 젓갈을 대안으로 들었다.

"곧 '매실꽁치 젓갈'을 시판할 계획이에요. 현재 시제품이 나와 있고 성분 분석도 끝냈는데 젓갈 특유의 냄새도 많이 줄어들었고 무엇보다도 비린내가 거의 없어요. 게다가 매실의 자연 방부제 역할로 김치의 익는 속도가 더디게 돼 늘 싱싱한 김치를 먹을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제품은 꽁치젓갈 2kg 한 통에 1만 원. 식해(1kg 1만 원)와 게장(1kg 1만 원)도 판매한다. 70% 정도가 맛을 봤거나 입소문을 통한 소비자의 주문에 의한 우체국 택배 판매이고, 나머지는 울진 후포수협 바다마트, 그리고 직접 찾아온 고객들에게 판매된다. 연락처: 054)787-6493, 787-6188. 홈페이지:http://bongsan.farmmoa.com

울진·황이주기자 ijhwang@msnet.co.kr

사진: 1. 저온창고에서 젓갈의 숙성상태를 살펴보고 있는 최용선, 황금자 씨, 김선원 담당 (왼쪽부터) 2. 게장에 양념을 섞고 있는 황금자·이경일 씨 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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