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전원주택을 찾아서-경산시 남산면 '아삶공'

지난달 27일 경산시 남산면 사월리에 주택 겸 사무실을 짓고 사는 김경호(39·건축가) 씨를 만나서 두 번 놀랐다. 버려진 폐가의 변신에 놀랐고, 나이보다 젊어뵈는 집 주인이 "집이란…"으로 운을 떼더니 "선조들"이니 "수오지심"이니 하는 말을 툭툭 던지는데 놀랐다. 전원주택에 다니다 보면 자기 집에 대한 각별한 애정과 철학을 지닌 주인들을 더러 만나는데 김씨는 그 중에서도 유별난 축에 들었다.

"우리가 배워야 할 것들은 모두 옛것에 있습니다" "분칠(?)한 집은 좋아하지 않습니다." 이런 식의 대화가 이어졌다. 하긴 이런 주인을 만나지 못했다면 이 오래된 한옥은 포클레인 삽질 한방에 헐리는 운명을 면치 못했으리라.

◇ 농촌 폐가의 변신

"첫인상요? 한마디로 암담했죠."

김경호 씨는 지난 2003년 경매로 나온 이 집의 터를 보러 왔다 말문이 막혔다고 했다. 250여 평이나 되는 집터는 어디서부터 손 대야 할지 난감할 정도로 훼손이 심했다. "행랑채는 이웃사람들이 개 축사로 써 악취가 풀풀 나지, 기와는 다 무너져가지, 마당에는 쓰레기와 모기가 가득하지, 풀은 허리춤까지 자랐더라고요."

이후 1년간이나 새집 구상에 골몰하던 그는 우연찮게 숙제를 풀었다. 이웃 할머니가 전하는 이 집의 내력에 귀가 번쩍 뜨인 것. 얘긴즉 일제시대 면장을 지낸 박 부자란 이의 집으로 마을 사람들이 이 집 우물에서 물을 자주 길었고 그 답례로 산비탈을 파내 흙창고까지 만들어 줬다는 내용. 그는 "그런 소중한 기억들을 끊어서는 안되겠다 싶었다"고 말했다.

김씨가 직접 설계한 새 집은 지난해 여름 착공, 4개월 만에 완성됐다. 집은 '아삶공'(아름다운 삶의 공간)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이웃과 공간을 나누겠다는 철학이 집 안 곳곳에 배어있다.

마당에 들어서니 눈을 어디에 둬야 할지 모를 만큼 볼거리가 많다. 본채, 행랑채, 흙창고, 사무실, 정자, 야외무대 등이 제 각각의 모양과 크기로 '빚어져' 있다.

본채에는 방 2개와 부엌이 있다. 한지로 새로 도배한 안방의 서까래는 이 집이 지어질 당시 그대로다. 아궁이에는 숯검정이 새카맣다. 기둥이며 문설주며 어느 것 하나 다듬지 않아 울퉁불퉁하다. 금세라도 방문을 열고 상투머리 주인이 나올 것 같다.

행랑채는 개 축사에서 품격있는 문화공간으로 거듭났다. 행랑채 안쪽에는 여러 장의 전통 문을 연달아 붙여 여름이면 마루 위로 문을 달아 올릴 수 있도록 했다. 본채와 행랑채를 연결하는 데크를 마당에 설치해 번거롭던 화장실 이용도 다소 편해졌다. '여락당'(與樂堂·함께 즐기는 곳)이란 이름의 흙창고는 그 내부가 가장 돋보이면서도 이웃을 위해 내놓은 공간이다.

본채 뒤에 앉은 2층 건물이 김씨의 사무실. 4면 모두가 유리다. 이 집터 건물 중에 유일하게 현대식 외형이다. 그 뒤편 나무정자에서는 김씨 집 마당과 멀리 도로 건너편 동네까지 한눈에 들어온다.

◇ 집은 자연·이웃과 나누는 공간

김경호 씨는 성균관대 건축과 86학번이다. '5都2村'(닷새는 도시에서, 이틀은 시골에서)이 팍팍한 도시민의 삶을 풍요롭게 바꿔줄 것이라고 믿고 있다. 그는 공간의 아름다움에 매료된 사람이었다. 아삶공에는 모두 6채의 건물이 있지만 정작 이곳을 돋보이게 하는 것은 행랑채와 본채 사이, 본채와 흙창고 사이, 본채와 정자 사이의 '공간' 이었다. 회화나무, 배나무, 우물이 어우러진 마당과 정자에서 내려오는 비탈에 기왓장을 깔아 만든 인공 시냇물이 아기자기한 미를 연출하고 있다.

대구시내 사무실과 이곳을 번갈아 출근한다는 김씨는 아삶공이 소중한 문화공간으로 쓰이기를 원한다고 했다. 가끔 세미나, 모임에 집을 빌려주고 이용료를 받지만 정해진 액수가 없어 성의표시에 가깝다. 제집처럼 소중하게만 써 줬으면 하는 바람이다.김씨는 집에 대한 저술을 준비 중이다. 30%쯤 썼다고 말했다. 그는 "사람 사는 공간에 대한 아름다운 해석을 내리고 싶다"고 말했다.

◇ point-이웃 위한 열린 황토방

'이웃과 나누는 공간을 만들고 싶다'는 김경호 씨의 바람은 흙창고에서 가장 분명하게 드러난다. 오죽하면 이름도 여락당(與樂堂)으로 지었을까.

사각형 흙집의 평범해 보이는 외관과 달리 이 흙창고의 내부에 쏟은 정성은 놀랍기 그지 없다. 집주인인 김씨 자신이 아니라 이웃에게 공간을 내준다는 발상 자체가 더욱 그렇다. 흙창고 안으로 들어가면 왼쪽이 황토방이다. "이웃 사람들이 자주 놀러와서 불 넣고 쉬다 갑니다" 방 안에 널린 얇은 이부자리는 황토 찜질방 모습 그대로다. 이웃들이 아궁이에서 고구마를 구워 먹기도 한다고 했다.

이 흙창고는 산비탈을 깎아 지어 이색적이다. 한 면이 산비탈인 셈이다. 김씨는 망치와 정으로 깎여진 비탈의 단면을 볼 수 있도록 벽 대신 유리를 세우고 조명을 설치했다. 언뜻 슬레이트에 검정칠을 한 것처럼 보이지만 펄프에 슬러지를 첨가해 만들었다는 수입산 지붕도 인상적이다. 천한 광택이 나지 않을 뿐 아니라 단단해 보인다.

글·최병고기자 cbg@msnet.co.kr

사진·정재호 편집위원 newj@msnet.co.kr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