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 80년대에 학창 시절을 보낸 이들이라면 라디오 기능이 있는 카세트를 붙잡고 play, stop 버튼을 번갈아 눌러가며 충혈된 밤을 샌 기억이 있을 것이다. 연인이 좋아하는 노래를 짜깁기한 녹음테이프로 수줍은 고백을 대신하는 일은 당시의 유행이었다.
요즘, 직접 책을 만들어 선물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연인과의 100일 기념, 예쁜 아기를 위한 육아일기, 버리기 아까운 문자메시지…. 어느 것이나 좋다. 추억과 애정만 있다면 당신도 이 책의 저자가 될 수 있다.
◆오직 하나, 당신만을 위한 책
최근 1, 2년 사이 '책 만들기 사이트' 들이 인터넷에 등장해 큰 인기를 얻고 있다. 디지털 기술과 아날로그적 감성이 결합한 최근 트렌드의 전형이다.영남대 서양화과를 졸업한 주형도(29·대구시 달서구 신당동) 씨는 지난해 겨울, 사귄 지 600일을 기념해 여자친구에게 책을 선물했다. 서점에서 산 '이달의 베스트셀러'쯤이라고 생각한다면 착각. 한 인터넷 주문출판업체 사이트에 가입해 주씨가 직접 만들었다. 여자친구 이름을 딴 '윤정이를 사랑하는 주형도입니다'가 책 제목. 근사한 표지는 유명 일러스트레이터가 만든 것을 다운로드받았다. 첫 만남에서부터 최근 모습을 담은 사진까지 페이지마다 들어있다. 책을 만들면서 떠오른 추억들은 그 옆페이지에 글로 옮겼다. 여자친구는 감동 그 자체였다.
"예전에 CD에 사진을 담아 주거나 직접 시집을 만들어 준 적이 있지만 이처럼 완벽한 책 형태로 만들어 선물하니까 독특하고 성의도 더 돋보이는 것 같습니다". 주씨는 나흘 만에 100페이지짜리 책을 만들었다. 비용은 고작 2만 원 남짓.
올 초 대구에서 경기도 안양으로 이사를 간 나혜원(26·주부) 씨. 나씨는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 이미 28개월짜리 아들과 남편을 위한 세 권의 책을 '출간'했다.
"디지털 카메라로 사진을 찍으면 현상을 잘 하지 않아서 지워버리기 십상이잖아요. 남편과 함께 책을 만드니까 더 즐거웠어요". 책을 만드는 요령도 사이트에서 가르쳐 주는 대로 따라하기만 하면 돼 아주 간단했다.
두꺼운 사진앨범에 비해 펼쳐 보기도 손쉽고 나만의 추억을 담아 개성 있는 책을 만드는 일이 무엇보다 매력적이었다. "꼬마가 갓난아기 때 자기 사진을 보면서 '애기 때 나야?' 하는 모습이 너무 이뻤어요". 나씨는 남편, 시부모님과 주고받은 문자메시지도 책으로 만들었다고 했다.
◆디지털 기술+아날로그 감성='개성'
"불황에 허덕이던 출판업계에 5, 6년 전 '주문형 출판(POD:Publish On Demand)'이 새 트랜드로 등장했습니다. 누구나 손 쉽게 책을 만들어보자는 취지였죠."
인터넷 주문출판 업체 '퍼블로그(Publog)'의 김용식(36) 사장은 POD가 나만의 것을 나타내고 소유하고 싶어하는 젊은 층의 감성에 잘 어필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의 회사는 지난해 창업, 전국 2만여 명의 회원을 가지고 있다.
주문형 출판의 소재에는 경계가 없다. 절판된 책이나 수필집, 시집에서부터 학회지, 육아일기까지 다양하다. 최근에는 개인적인 의미를 부여한 책 만들기가 인기다. 책 제작도 의외로 간단하다. 해당 사이트에 내 공책을 만들어 놓고 글을 쓰거나 사진을 붙인다고 생각하면 된다.블로그, 인터넷 카페, 싸이월드 등 사이버 공간에 친숙한 젊은 세대들도 결국은 종이에서 편안함을 찾는 모양이다.
◇ 어떻게 만드나, 비용은
인터넷에서 '책 만들기'나 '맞춤책'으로 검색해보면 다양한 책을 만들어주는 사이트를 쉽게 만날 수 있다.책 제작 과정은 대략 비슷하다. 우선 마음에 드는 사이트에 회원으로 가입한다. 대부분 회원 가입은 무료다. 그 다음 자신이 만들고자 하는 책의 목적이나 취향에 맞는 스타일의 책 모델을 선정한다.
이제 본격적인 책 만들기가 시작된다. 요령은 의외로 간단하다. 컴퓨터 화면에 뜨는 자신의 '책 틀'에 맞춰 글을 쓰고 사진을 퍼 담으면 된다. 제목이나 표지도 자신이 정할 수 있다. 책 만드는 요령을 상세하게 안내해주기 때문에 따라하는데 어렵지 않다. 단 기초적인 포토샵만 할 줄 알아도 책은 더욱 돋보일 것이다. 사이트에서 공개하는 남이 만들어 놓은 책을 참고하면 큰 도움이 된다.
입력이 끝나면 인터넷으로 출판신청을 하면 된다. 비용은 천차만별. 8천 원부터 4만, 5만 원선까지 다양하다. 100일동안 하루도 빠지지 않고 육아일기를 쓰면 무료로 출간해주는 곳도 많다.국내 주문출판업체들에 따르면 업체 수는 대략 10곳 가량. 여러 사이트를 둘러보면서 내 취향과 비용에 안성맞춤인 곳을 찾아보자.
▶추천 사이트='퍼블로그'(www.publog.co.kr), '맘스다이어리'(www.momsdiary.co.kr), '아이러브'(www.ilove.co.kr), '포토북'(www.photobook.co.kr), '엔체리'(www.ncherry.com), '온프린트'(www.onprint.net) 등이 있다.
최병고기자
글·최병고기자 cbg@msnet.co.kr
사진·정재호 편집위원 newj@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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