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산은 만만한(?) 산이다. 도심 가까이에 있고 오르기도 어렵지 않다. 정겨움을 주는 산이다. 그런 앞산이 짓밟히고 죽어가고 있다. 이리저리 길을 만들고 이런저런 시설을 자꾸 들여놓기 때문이다. 매일신문 기획탐사팀은 2차례에 걸쳐 훼손 현장을 돌아보고 앞산을 살리는 해법을 찾아봤다. 편집자
"이게 어디 산입니까? 온통 길 뿐이에요. 등산로를 여기저기 뚫어놓으니 멧돼지, 노루, 토끼는 달아나고 꿩도 어쩌다 한번 볼까말까 합니다."
앞산 달비골에서 만난 강재우(63.대구시 달서구 본동)씨. 13년 전부터 매일 산을 탔다는 그는 "하루 지나면 하나씩 생기는 등산로가 앞산을 버려놓았다"며 "예전에는 사람이 산을 겁냈는데 이제는 산이 사람을 겁낸다"고 했다.
■이리저리 뚫린 거미줄 등산로
달비골에서 시작하는 주등산로를 따라 걷다보니 잇따라 샛길이 나타났다. 어떤 길은 불과 10여m 간격으로 오솔길이 이리저리 뻗어있었다. '거미줄'을 방불케 했다.
평안동산 약수터에서 만난 김만일(71)씨는 "사람들이 모두 자기집 앞에서 쉽게 오르려고 길을 만들고 있다"고 했다. 1965년 자연공원으로 지정된 이후 각종 놀이시설, 상업시설이 들어서면서 소등산로가 몇갈래 생기기 시작했고 웰빙바람이 불기 시작한 10년전부터 수많은 샛길이 만들어졌다.
산 능선을 따라 걷다보니 문제는 더 심각했다. 폭 8m가 넘는 등산로도 있었다. 얼마전만 해도 오솔길이었는데 등산객들의 발길에 주변 식물이 훼손되면서 길이 넓어졌다는 것. 뿌리를 앙상하게 드러낸 채 죽음을 기다리는 큰 나무도 곳곳에 보였다. 방향 표지판이 있는 길 외에도 사방에서 사람들이 오르락내리락 했다.
정상에서 만난 이은철(41)씨는 "맨날 다니는 길은 심심하고 밋밋하니까 새 길을 개척(?)하게 된다"며 "좀 더 가파르고 험한 길을 찾는게 산악인의 심정"이라고 했다.
지난해 5월 4개 주등산로 훼손 실태조사를 벌인 대구경실련 조광현 사무처장은 "샛길에다 다시 갈라지는 작은 길까지 합하면 주등산로마다 100개 이상의 길이 있을 것"이라고 했다. 앞산은 사람들의 발길에 신음하고 있었다.
■난도질 당하는 앞산
앞산 골짜기 초입부마다 설치된 크고 작은 체육공간도 앞산 훼손을 가속화시키고 있었다. 앞산의 체육시설은 모두 16곳이나 된다. 큰골 케이블카 아래의 체육시설과 달비골 쪽 평안동산 등 몇곳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이용률이 저조했다. 이들 체육시설은 등산객이 쉬고가는 '벤치' 역할만 하고 있었다.
체육시설에는 토양이 단단하게 다져져 식물이 자랄 수 없고 야생동물의 통로를 차단하고 있다. 크고 작은 나무들을 베어 내고 만든 체육시설에서 인근 등산로나 앞산 정상을 향해 생긴 샛길이 2, 3개씩 됐다.
큰골 케이블카 입구에서 만난 김기철(75.남구 대명동) 할아버지는 "20년 전에는 옆으로 물이 졸졸 흐르고 온갖 산새들이 지저궜는데 이제는 길이 너무 많고 시설이 널려있어 어지럽다"며 말끝을 흐렸다.
국립산림과학원 권진오 박사는 "대구 앞산은 부산 황령산, 대전 보문산 등과 같이 도심에서 조금만 들어가면 큰 숲이 펼쳐지는 대구의 '허파' 역할을 하고 있다"며 "숲 가꾸기를 해도 모자라는 판에 체육시설 등으로 산을 망가뜨리고 있다"고 했다.
■휴식이 필요하다
등산객 등이 앞산 생태계를 유린하고 있지만 훼손 범위가 너무 넓고 관리도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다.
김종원 계명대 생물학과 교수는 "거미줄 등산로로 인해 동·식물의 서식처가 분할돼 유전자 교류가 어려워졌고, 등산객의 답압(땅을 밟는 압력)은 땅속의 미생물세계를 아스팔트보다 더나쁜 환경으로 만든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뉴욕 도심의 센트럴 파크도 야생동식물 보호를 위해 출입금지 구역이 있는데 앞산은 그런 곳도 없다"고 했다.
전영권 대구가톨릭대 지리교육과 교수는 "무당골 예비군 훈련장에 체육센터가 지어지고 절을 신축하는 등 앞산 난개발이 가속화되고 있다"며 "주등산로만 놓아두고 나머지 길은 없애고 안식년제를 시행해 생태계를 살려내야 한다"고 했다.
기획탐사팀·박병선기자 lala@msnet.co.kr 서상현기자 ssang@msnet.co.kr
사진 : 등산객의 발길에 짓밟힌 나무가 앙상한 뿌리를 드러낸 채 신음하고 있는 모습을 앞산 곳곳에서 볼 수 있다. 이채근기자 mincho@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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