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심부의 자본주의 부국들이 주변부의 빈국을 착취하기 때문에 가난한 국가는 저개발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종속이론은 한때 제3세계 저개발의 원인을 설명해주는 명쾌한 이론으로 각광받았다.
부자국가들이 기본 생활품(1차 제품)의 세계 시장가격을 낮추고 자신들이 만든 2차 제품(공산품)의 가격을 올려 차익을 취하고 이들 국가의 다국적 기업은 빈국들을 희생시켜 엄청난 이득을 올린다는 종속이론의 주장은 만성적인 저개발에 고민하던 제3세계 정치가와 학자들에게 엄청난 흡인력으로 다가왔고, 중심부중의 중심부인 미국의 학계에서도 큰 흐름을 형성하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 종속이론을 믿는 사람은 거의 없다. 빈국이 저개발에서 벗어나 중심부로 약진하는, 이론과 배치되는 사태(한국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가 생겨났고 종속이론의 발상지인 남미에서조차 종속을 가져오는 외국과의 연계에 대한 적대심이 사라졌다. 종속이론의 주도적 학자였던 엔리케 카르도소 전 브라질 대통령은 1993년 재무장관으로 취임한 뒤 "브라질이 세계경제의 일부분이 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면 경쟁을 할 수가 없다. 이 변화는 외부로부터의 강요가 아니라 우리가 자발적으로 선택한 필수다"며 자신의 이론을 던져버렸다.
종속이론의 치명적 결함은 이 세계에서 타자만 있고 자기는 없다는 무능의 철학이다. 자신의 가난이 남들 때문이라고 하면 마음은 편할지 모르지만 그렇다고 달라지는 것은 없다. 그래서 미국 하버드대 명예교수인 데이비드 랑드 같은 사람은 종속이론이 "남들에게 잘못을 돌리는 병적인 성향만 부추김으로써 경제적 무능상태를 불러왔다. 설사 종속이론이 맞다고 해도 이를 내 던져버리는 편이 더 좋았을 것"이라고 말한다. 이 때문에 종속이론은 '남미의 가장 성공적인 수출품'이란 역설적인 평가를 받기도 한다.
'오늘날 한국사회의 양극화는 박정희 시대의 불균형 성장전략이 그 역사적 뿌리'라는 청와대 특별기획팀의 양극화 기획시리즈 두번째 의 논리는 종속이론의 '남 탓하기'를 빼다박았다. 소득불평등 정도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지니계수는 전국가구 기준 2003년 0.341, 2004년 0.344, 2005년 0.348로 악화되어 왔다. 그 원인이 40년전의 "잘못된 성장전략"이라고 치부한다면 결국 참여정부는 한 것이 하나도 없음을 자인하는 꼴 밖에 안된다. 40년이면 강산이 네 번 바뀌는 세월이다.
잘못을 남에게 돌리면 속은 편하겠지만 달라지는 것은 없다. 잘나가는 20%에 대한 못사는 80%의 분노를 부추긴들 양극화가 해소되는 것도 아니다. 계층간의 분노와 갈등은 힘의 분산과 갈등만 불러올 뿐 건설적인 결과를 낳기는 어렵다. 이 대목에서 못사는 80%의 분노를 차기 집권을 위한 밑거름으로 삼으려는 의도를 읽을 수 있다고 하면 지나친 논리의 비약일까?
정경훈 경제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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