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찍이 철학자 프랜시스 베이컨은 인간의 정신을 사로잡고 있는 네 가지 우상을 얘기한 바 있다. 그가 말한 우상(idol)은 인간들이 잘못 인식하게 되는 편협한 표상을 의미하는데, 이러한 우상에 의해 인간은 진리를 바르게 인식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바르게 실천하지도 못하게 된다는 것이다.
네 가지 우상 중 베이컨이 가장 심각하게 받아들인 것은 '시장의 우상'이다. 이는 인간 상호간의 교류와 접촉에서 생기는 것으로서 인간 의사소통의 기초가 되는 언어와 관련되어 있다. 인간은 지성을 통해 언어를 지배하고 있다고 믿지만 실상은 언어에 의해 인간의 지성이 조건 지워진다.
또 실제 세계의 묘사에 있어서도 인간의 지성은 무엇이든 추상화하는 본성이 있어서 끊임없이 변화하는 성질의 것을 고정불변의 것으로 여기기가 쉽다. 결국 '시장의 우상'은 실제 세계에 대한 인간 인식의 한계성과 의사소통의 기반이 되는 언어적 상징체계의 오류를 지적하는 것이다.
많은 경우에 자신의 정당함을 주장하기 위하여 궤변을 늘어놓는 경우가 있다. 그야말로 언어를 자신의 목적달성을 위한 수단으로만 이용하는 셈이다. 이 과정에서 합리적인 의사소통은 불가능해지며 설득이나 동의를 얻기 위한 주장만이 앞서게 된다.
합리적인 의사소통은 정치력이나 경제력과 같은 외부적 힘이 작용하지 않는 경우에만 가능하다. 물론 연령적 서열이나 성별에 따른 차별이 권력으로 작용하는 경우에도 합리적 의사소통은 불가능하다.
전국적으로 경상도는 가부장적 위계질서로부터 비롯되는 구(舊)시대적 문화와 어두운 한국 정치사의 핵심 인물들이 태어난 지역, 대형사고가 많은 지역이라는 인식이 존재한다. 결국 경상도는 남성 우월적 한국 문화의 근원으로서, 합리적 의사소통 체계의 부족으로 인한 사건·사고의 주(主) 발생지로서, 그리고 어두운 한국 정치사의 출발점이라는 '시장의 우상'이 굳건하게 자리 잡고 있는 셈이다. 또 최근의 투표결과에서 나타난 유권자들의 폐쇄성은 경상도에 대한 '시장의 우상'을 더욱 크게 만들고 있다.
5·31 지방선거에 내로라라는 인물들은 너나없이 출사표를 던지고 있다. 이들 모두는 무엇보다도 자신으로 인하여 경상도에 대한 '시장의 우상'이 더 크게 되지는 않을지를 고민해야 할 것이다. 만약 인간이 지성(知性)을 가진 존재라면 자신이 조직과 사회의 발전에 걸림돌이 되지는 않는가를 반성적으로 성찰하는 능력을 소유하고 있을 것이다.
오창우
계명대학교 미디어영상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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