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희망편지-엄마라는 이유로

"애가 이제 고등학생이 됐는데 도대체 뭘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애들 성적은 엄마 하기에 달렸다고 하니 가만히 있을 수는 없는데, 아무도 가르쳐주는 사람은 없고…."

새 학년, 새 학기는 단어 그 자체로 한 계단 더 높은 지적·정서적 수준으로의 출발이라는 기분 좋은 의미를 담고 있다. 단순히 선생님, 친구들, 교과서가 새로워진다는 사실만으로도 가슴을 들뜨게 한다. 그러나 엄마들의 입장은 결코 편하지 않다.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중학생이 되고, 고등학생이 되는 과정 하나하나를 거칠수록 어깨를 짓누르는 무게는 점점 커진다. 아이의 성적에 따라 얼마나 좋은 엄마인지 평가받고, 아이가 학교생활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박수를 받느냐 손가락질을 받느냐가 결정된다.

아이가 고3 수험생이 되면 상황은 더 어려워진다. 엄마는 일년 내내 그야말로 몸종이고 죄인이 된다. 아침저녁으로 아이의 기분을 살펴야 하고, 조금이라도 더 성적을 올리기 위해 귀동냥과 발품 파는 일에 부지런을 떨어야 한다. 모의고사 점수가 오르고 내리는 데 아이보다 더 민감해야 하고, 그때그때 적절한 대응책을 찾는 데 골몰해야 한다.

더 큰 괴로움은 누구와도 여기에 대한 부담과 책임을 나눌 수 없다는 데 있다. 남편에게선 "도대체 집에 있으면서 애를 어떻게 키우는 거야"라는 힐난을 듣지 않으면 그나마 다행이다. 자칫하면 아이에게조차 "엄마는 왜 그렇게 살아"라는 짜증을 듣기 십상이다.

학교 교사들이나 학원 관계자들을 만나 보면 엄마들의 조급증이 생각보다 훨씬 심각한 지경에 놓여 있음을 쉽게 알 수 있다. "가령 일 년 동안 우리 집 허드렛일을 해 주면 아이를 원하는 대학에 보내주겠다고 광고를 내면 아마 서로 하겠다고 달려드는 엄마들 때문에 난리가 날 겁니다. 빈부귀천 가릴 것 없이 엄마들의 마음은 똑같은 거죠." 한 학원 강사는 우스개처럼 말을 던졌지만 결코 흘려들을 수 없는 엄연한 현실이다.

이런 측면에서 우리나라 엄마는 사회적 약자라고 할 수 있다. 이 같은 처지에서 벗어나는 길은 오직 엄마 스스로의 생활을 찾고, 자기만의 행복을 만드는 방법뿐이다. 자녀나 남편으로부터 엄마의 온전한 지위를 회복하려면 먼저 자신에게 충실해지는 것이 최선책이다. 아이에게 모든 것을 던지는 엄마가 아니라 자신의 삶을 통해 아이에게 모범을 보여줄 수 있는 엄마가 되는 것이 현명하다.

새 학년, 새 학기는 이제 엄마들에게도 새로운 일이 돼야 한다. 새 책을 읽고, 새롭게 생각하는 계기가 돼야 한다. 지금 당장 '엄마라는 이유로'라는 사슬부터 벗어던져야 한다.

김재경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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