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시론-친디아(Chindia)의 미래

지난 1월 말 세계경제회의(WEF)가 열린 스위스의 다보스는 영하 10℃의 한겨울 날씨에다 눈에 하얗게 덮여 있었지만, 좀처럼 추위를 느낄 수 없었다. 세계 각지에서 모인 2천여 명의 경제·정치·사회 지도자들 때문이기도 했지만, 중국과 인도 열풍 때문이었다.

중국과 인도를 합쳐 부르는 친디아(Chindia)가 6대 주제의 으뜸 주제였을 뿐 아니라, 친디아의 급성장 여파로 생기고 있는 전세계 노동시장의 대이동 현상과 이에 따른 의식과 태도 변화의 긴박성이 다른 두 주제가 될 정도였다.

그러나, 내가 가 본 중국과 인도는 아직도 많은 과제를 안고 있는 듯했다. 우선 두 나라 모두 제도 개혁내지는 부패청산의 과제가 있다고 했고, 도시와 농촌간의 양극화와 빈부 격차는 그 어느 나라보다도 심각한 형편이었다. 연간 수백억 달러 이상의 외국인 직접 투자가 몰려들면서 많은 기반 시설이 구축되었지만, 대도시 주변을 제외하고는 아직 갈 길이 멀었다.

인도는 얼핏 보면 중국과 비슷하지만, 실제는 전혀 다른 나라였다. 수천 년 전 각기 고대 인류 문명의 발상지였고, 매우 다양하고, 위대한 역사를 가진 인구 10억 명이 넘는 경제대국이라는 점, 그리고 최근 연 8~10%의 초고속 성장을 지속하고 있다는 점 외에는 정말 다른 나라였다.

중국에는 종교가 거의 없는 셈이고, 산업화에 의해 세계의 굴뚝들이 다 모여 있다면, 인도는 수많은 신의 나라였고, 서비스업이 이미 50%를 넘어서 있었다. 중국이 하드웨어 중심의 발전 전략을 취했다면, 인도는 눈에 보이지 않는 소프트웨어와 지식 중심의 발전 전략을 통해 급성장하고 있었다.

인도가 우리에게 주는 놀라움은 하나 둘이 아니었다. 그렇게 다양한 기후와 언어와 종교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특히, 이슬람교도들과 섞여 살면서도 상호 존중하며 상생의 길을 가고 있는 것이 감동적이었다. 비록 다양성과 합의체제 때문에 의사결정은 늦겠지만, 항상 평화와 협력이 있는 듯했다. 카스트를 없앤 부처와 타 종교를 용인한 아쇼카왕, 어떤 고난 속에서도 무저항주의를 고수한 마하트마 간디의 생명존중과 상생의 철학과 정신이 오늘날까지도 면면히 살아 있는 듯했다.

인도에서 받은 두 번째 감동은 뉴델리에 있는 악살담(Akshardham)사원에서였다. 아그라의 타지마할이 인도가 가장 자랑하는 예술 건축물이자 중세 문화유산이라면, 뉴델리의 악살담 사원은 인도가 다음 천 년 세계에 자랑할 성전이자 예술 건축물이었다. 작년에 완공되었다는 악살담사원 건설에는 5년 동안 무려 1만5천여 명의 건축·공예 전문가와 자원봉사자가 투입되었다고 한다. 그 대리석 건물의 웅장함, 아름다움, 섬세함은 타지마할에 못지 않았다. 모두가 첨단 기술로만 치닫는 21세기에 현대 인도인들이 이룩한 아름다운 정신과 혼의 결정판이었다.

인도에서 받은 세 번째 감동은 방갈로시의 새로운 형태의 서비스 산업단지에서였다. 지난 7년여 사이에 백만 개 이상의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하였고, 관련 일자리까지 합하면 500만 개의 일자리를 창출했다고 한다. 아직 기반 시설은 완벽하지 않았지만, 사이버 시티마다, IT 캠퍼스마다 내부는 세계 최고 수준을 자랑하고 있었다. 미국의 실리콘 밸리, 유명대학과 연구소와 기업에 있던 10만여 명의 인도 인재들이 귀국하여, 세계 최대의 서비스 아웃소싱 산업 단지를 창조해 나가고 있었다.

그 중의 한 기업 캠퍼스는 면적이 10만 평이 넘었고, 그 안에 연구소와 학교, 숙박시설과 유락시설이 다 모여 있어, 거의 자급자족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현재 뉴욕 증시에 상장되어 있고, 매출이 이미 2조 원을 넘어섰다. 증권시장에서의 상장가치 총액은 22조 원을 넘어있었다.

한국과 중국에 비해 부족한 기반시설과 길가다 자주 마주치는 소와 버팔로와 낙타를 보면서, 가졌던 처음 며칠 동안의 인도에 대한 선입견은 방갈로시의 혁신 현장을 보면서 감동과 함께 다가올 새로운 미래사회의 일자리 형태에 대해 일종의 전율을 가져다 주었다.

문국현(유한킴벌리 대표이사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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