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LA 장 씨 "공납금 내준 대구친구 찾았습니다"

"이제서야 고맙다는 인사를 합니다."

꿈 많던 소녀 시절, 한 친구의 도움으로 밀린 공납금을 내고 고등학교에 진학할 수 있었던 장은순(60·여·미국 LA 거주) 씨. 선뜻 공납금을 내준 친구를 찾던 장 씨는 드디어 친구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장 씨의 편지가 소개(매일신문 3일자 5면 보도)된 다음날이었다.

"지난 4일 그 친구가 매일신문을 읽고 제게 전화를 했어요. 40여년이 지나고 보니 제가 이름을 잘못 기억하고 있더군요.'전임출'이 아니라 '전영춘(60·여)'이었습니다. 여러 곳에 연락을 해봐도 소식을 전혀 알 수 없었던 것도 이름을 잘못 알았던 탓이었어요."

장 씨는 옛친구의 목소리를 듣자마자 수화기를 부여잡고 펑펑 울었다. 한참을 운 뒤 이야기를 나누면서 시간가는 줄 몰랐다고 했다.

두 사람은 대구여중 졸업 뒤 장 씨는 경기여고, 전 씨는 계성여고에 진학했다. 고교 생활이 막 시작되던 1962년 화창한 어느 봄날, 전 씨가 머물던 기숙사에 장 씨가 놀러갔던 것이 마지막 만남이었다.

그는 통화 도중 깜짝 놀랐다. 전 씨가'아가다마리'라는 세례명의 수녀가 돼 있었기 때문. 중3 시절 "수녀가 되고 싶다"고 했던 전 씨였는데 그 바람대로 된 것.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했던가. 포교 성 베네딕도 수녀원(대구 북구 사수동)에서 지내는 전 수녀가 자신을 찾는다는 신문기사를 읽게 된 것도 우연이었다.

동료 수녀 두 명이 매일신문을 읽자마자 전 수녀를 떠올리고 신문을 읽어보라고 권했던 것. 전 수녀는 워낙 옛일인지라 그동안 공납금 내준 일을 잊고 있었다고 했다.

"그 사연을 동료 수녀님 두 분이 알리 없었지만, 제 나이와 출신학교는 아는 터라 제가 아닌가 싶었대요. 혹시나 하는 마음에 저더러 매일신문을 살펴보라더군요."

기사를 본 순간 옛일이 떠오른 전 수녀는 반가운 마음에 기사에 적혀있던 전화번호를 보고 수화기를 들었다.

"기억을 더듬어보니 저 뿐 아니라 다른 친구들도 조금씩 도왔던 것 같아요. 큰 도움을 주지도 못했는데 저 혼자 고맙다는 인사를 받기가 쑥스럽습니다. 가까운 곳에 있으면 당장이라도 만나볼 텐데…."

전 수녀는 한사코 그 때 받았던 공납금을 되돌려주겠다는 장 씨에게 '그 돈은 어려운 주위 사람들을 위해 써라'고 달랬단다.

어려울 때 도움을 받은 장 씨. 그는 내내 친구를 잊지 못했고 수년 전부터 서울지역 언론사 여러 곳에 편지를 띄웠지만 아무런 소득이 없었고 최근엔 거의 포기상태였다.

"마지막으로 영춘이와의 추억이 서린 대구에서 찾아보자는 생각에 매일신문사에 편지를 보냈습니다. 신문사에서 친구를 찾아주신 셈이예요. 정말 감사드려요. 이제 영춘이, 아니 아가다마리 수녀와 편지를 주고받으며 다시 만날 날을 기다릴 겁니다. 꼭 대구에 다시 가고 싶습니다." 장 씨는 45년 전 대구에서 겪은 '가슴 뭉클했던 추억'에 대해 밤새워가며 친구와 얘기하고 싶다고 했다.

채정민기자 cwolf@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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