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 한 조각을 훔친 죄로 19년이나 감옥살이를 한 젊은이가 있었다. 감옥에서 풀려난 그는 자신을 가상히 여겨 재워 준 신부(사제)의 집에서 또다시 은촛대를 훔치는 일을 저질렀다. 하지만 주인의 용서로 풀려나 새로운 각오로 새 삶을 살게 된다. 사업을 벌여 재산을 모으고 시장 자리에 오를 만큼 출세도 했다. 그러나 한 수사관의 끈질긴 행적 추적으로 체포되고, 탈옥해 어느 여인이 지켜보는 가운데 세상을 떴다.
○…알 만한 사람들은 이미 짐작했겠지만, 문호 빅토르 위고의 소설 '레 미제라블'에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장발장의 기막힌 인생유전 이야기 요지다. 이같이 극단적인 경우가 아니더라도 인생은 돌고 돌게 마련이다. 어느 동화의 주인공처럼 졸지에 누더기를 벗어던지고 신데렐라로 변신하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높은 권좌에 앉았다가도 잘못을 저질러 어느 날 갑자기 벼랑으로 떨어지기도 하는 게 사람들이 살아가는 세상의 일이지 않은가.
○…서울에서 한 20대 후반 남자가 사흘간 굶다 배가 고파 허름한 구멍가게 지붕을 뚫고 들어가 금전출납기를 뒤져 동전 1천820원을 훔쳐 나오다 경찰에 붙잡힌 사건이 일어났다. 가게에 들어가자마자 주민 신고로 출동한 경찰의 사이렌이 울리자 "너무 당황해 빵을 집어먹을 생각도 하지 못했다"는 그는 경찰이 준 2천 원짜리 도시락을 허겁지겁 먹으며 잘못을 빌었다는 사연이다.
○…강원도 홍천에서 고등학교를 나왔으며 자동차정비 2급 자격증을 가진 그는 군 제대 이후 서울에서 막노동과 노숙 등으로 전전하다 일주일 전부터 일거리가 없어 굶주림 끝에 이런 일을 저지른 모양이다. 경찰은 죄질이 나쁘고 예비군 훈련을 받지 않아 수배 중이라는 이유로 구속영장을 냈으나 소액이어서 검찰이 풀어줬다고 한다. 오늘의 세상에 비춰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하는 사건이다.
○…이 기막힌 이야기 앞에서 우리는 과연 얼마나 자유로울 수 있는가. 우리 사회의 구석지고 어두운 그늘에서 이 같은 '현대판 장발장' 사건이 빈발하지 않으리라고 볼 수 있겠는가. 아무튼 배가 너무 고파서든, 잠시 생각을 잘못해서든, 한 번의 잘못은 다른 잘못들을 부를 수 있고, 끝내는 인생이 망가지게도 된다. 경제 불황과 구조조정이라는 냉혹한 틈바구니에서 '빈익빈'이 부르는 서글픈 풍경화들을 덜 볼 방도는 없을까.
이태수 논설주간 tspoet@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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