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공공미술인가/박삼철 지음/학고재 펴냄
요즘 서울 청계천은 청계천에 들어설 상징조형물 때문에 시끄럽다. 서울시가 청계천 상징 조형물로 올덴버그의 작품 '스프링'을 선정한 데 대해 미술관계자들은 '문화적 공론화 없이 일방적으로 결정했다'고 강하게 항의하고 있기 때문이다.
과연 서울시와 미술인들간 논란의 원인은 무엇일까. 바로 공공미술을 바라보는 시각의 차이 때문이다. 서울시는 상징조형물을 청계천 복원사업의 장식품 쯤으로 생각했기 때문에 세계적 유명 작가에게 맡기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했고 미술인들은 이를 공동체를 표현하는 사회적 미디어로 바라봤기 때문에, 청계천에 한번 와보지도 않은 작가에게 공공미술을 맡긴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맞서고 있는 것이다.
공원에서, 건물에서 매일 만날 수 있는 공공미술에 대한 책 '왜 공공미술인가'는 공공미술의 현주소와 나아갈 길을 우리 시각으로 진단하고 정리하고 있다. 저자는 왜 공공미술이어야 하는지, 무엇이 공공미술인지, 어떻게 공공미술이 작동하는지 등 공공미술에 대한 가장 기본적인 지문을 던져놓고 미술과 사회의 흐름을 함께 진단하고 있다.
우리가 살고 있는 도시는 규범과 지배 개념만 있기 때문에 죽은 공간이며 사회 전체가 분절된 삭막한 공간이다. 도시 곳곳의 공공미술에 대해 우리 사회는 '건축물을 장식하거나 빈 공공장소를 폼나게 채우는 미술'쯤으로 여기고 있다. 그렇게 방치된 사이 화랑이나 브로커들이 이 분야를 장악함으로써 문제적 미술이 되어 버렸다. 공공미술이 브로커들 간의 로비 결과로 만들어지다 보니, 아름다움 보다는 '좀더 값싼 재료로 성의 없이 만든' 미술품 아닌 미술품들로 도시의 공해가 돼 버렸다.
이런 현실에 대해 비판하는 저자는 이제 공공미술에 대한 새로운 고민을 시작하고 생동감 넘치는 도시를 가꿔 나가는 데에 공공미술을 적극 활용하자고 제안한다.
이런 의미에서 최근 다양하게 시도되고 있는 '새로운 공공미술'은 주목할 만 하다. 건축물의 일부로 의미없이 자리잡은 공공미술품이 아니라 '새로운 공공미술'은 완성된 결과보다 작품을 구상하고 만들어 소통하는 과정 자체를 중시한다. 주제 역시 공공성의 미학으로 요약할 수 있는데, 사회적 건강성, 문화적 다양성, 생태적 각성 등 사회 전체의 핵심 의제를 미술로 풀어낸다.
저자는 공공미술이 '예술 자체가 아니라 공동체를 위해 창의적으로 봉사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공공미술이 주변 사람들의 창의력과 사회, 문화적 상상력을 촉진시키는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
일상 속에서 무수히 만들어지는 동사무소와 구청, 학교, 지하철역 등의 시설은 일상에서 가장 많이 사용될 뿐 아니라 우리의 삶을 만드는 핵심적 공간이다. 지금까지 이것들은 철저히 기능 그 자체로 방치돼 왔지만 이제는 그 아름다움에 대해서도 한번쯤 생각해봐야 한다.
일상을 아름답게 만드는 공공미술이 때로는 축제가 되고 관광자원이 되기도 한다. 독일 베를린의 곰, 미국 신시내티의 돼지, 미국 펜서콜라의 펠리컨 등은 그 자체로 도시의 아이콘이 된 것을 보면, 잘 만든 공공미술품의 위력을 느낄 수 있다.
사실, 삶에 녹아드는 공공미술은 거창한 것이 아니어도 좋다. 넘치는 장식이 아니라 모자라는 것을 채워주는 아름다움일 때 그 아름다움은 인간적으로도 아름답기 때문이다. 행정관료들이 조금만 발상을 바꾸어도 도시는 훨씬 아름다워질 수 있다. 미국의 '사회 기반시설 향상법'은 공공기능을 갖춘 시설을 만들고 운영할 때 예산의 1%를 공공적인 예술로 보완할 것을 의무화한다. 이 때문에 기능적인 시설에서도 예술적 발상이 끼어들 수 있는 여지가 있는 것이다.
아름다움을 매개로 한다면 공공미술은 오히려 쉽게 접근할 수 있다. 공공미술이란 이름으로 우리 동네를 새롭게 꾸밀 수 있을 뿐 아니라 선생님과 학교, 학생의 관계도 민주적으로, 창의적으로 재구성할 수 있다. 아름다움은 미술의 문제만이 아니라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이고 완성이기 때문에, 아름다움을 매개로 한 관계는 평등하고 자유로울 수 밖에 없다.
동대구역 광장, 대구공항 앞, 신천 곳곳의 다리 위에 무표정하게 자리잡은 공공미술품을 다시 한번 살펴보자. 조금만 발상을 바꾼다면 예술과 기능이 접목된 공공미술을 일상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는, 표정이 살아있는 도시로 거듭날 수 있지 않을까.
최세정기자 beacon@msnet.co.kr
댓글 많은 뉴스
이재명 90% 득표율에 "완전히 이재명당 전락" 국힘 맹비난
권영세 "이재명 압도적 득표율, 독재국가 선거 떠올라"
[우리 아기가 태어났어요]신세계병원 덕담
'이재명 선거법' 전원합의체, 이례적 속도에…민주 "걱정된다"
"하루 32톤 사용"…윤 전 대통령 관저 수돗물 논란, 진실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