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이그에 있는 국제유고전범재판소(ICT Y) 감옥에서 사망한 슬로보단 밀로셰비치(64) 전 유고슬라비아 대통령은 지난 90년대 악명높은 '인종청소'로 발칸반도를 공포에 떨게했던 독재자다.
'발칸의 도살자'로 불리던 그는 세르비아 민족주의와 소패권주의를 내세워 크로아티아, 보스니아, 코소보 등 발칸 전역에서 전쟁과 학살을 자행, 20만명을 숨지게하고 300만명을 난민으로 만들었으며 유고 경제를 파탄시켰다.
그러나 그는 권좌에서 물러나 전범 재판에 회부된 뒤에도 2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에서 가장 참혹한 만행으로 평가되는 자신의 죄과에 대해 한마디의 사과도 하지않은 채 혐의를 부인하다가 재판이 끝나기 전에 결국 숨을 거뒀다.
1984년 친구인 이반 스탐볼리치가 세르비아 공산당 새 지도자가 되자 공산당 베오그라드 지구당 위원장을 맡아 활동했으며, 87년 4월에는 코소보에서 소수인 세르비아계의 불만을 정치적으로 이용, 강력한 지지를 받는 민족주의 지도자로 성장했다.
그해 스탐볼리치의 뒤를 이어 공산당 당수가 된 그는 89년 세르비아 공화국 대통령에 선출된 뒤 대 세르비아주의를 제창하며 세르비아 민족주의를 촉발시켰다.
크로아티아,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등에 거주하는 세르비아계 주민들의 민족주의 의식을 고취시킨 그는 세르비아에 의한 유고연방 통치 야심을 드러내며 결국 유고 전역에서 유혈사태를 야기했다.
밀로셰비치는 1997년 유고연방 대통령에 올라서도 철권 통치를 휘둘렀으며 결국보스니아 전쟁과 코소보 인종청소,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의 유고 공습 이후 국민적 저항이 거세진 가운데 2000년 10월 13년간 유지해온 권좌에서 물러났다.
그러나 그는 1995년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내전 당시 서방이 경제제재 압력을가하자 협상에 나서 데이튼협정에 서명하고, 코소보 사태 때에도 수차례 나토와의협상에 응하는 등 현실적인 면모를 보여주기도 했다. 2000년 권력남용 등의 혐의로 체포된 그는 2001년 6월 전범재판소 법정으로 인도돼 이듬해부터 재판을 받아왔으나, ICTY를 '승리자의 재판'이라고 무시하고 "조국과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내가 한 모든 것들이 자랑스럽다"며 잘못을 인정하지 않아왔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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