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새 영화-브이 포 벤데타

미국이 발발한 제3차 세계대전이 일어난 후 2040년, 영국에는 극우보수정부가 들어섰다. 이들은 피부색, 성적 취향, 정치적 성향이 다른 사람들을 숙청하고 곳곳에 설치된 카메라와 녹음장치로 감시한다. 통행금지가 있고 사전검열과 금지도서가 있으며 정부의 목소리만 대변하는 뉴스가 방송되지만 국민들은 별다른 비판 없이 평온하게 살아간다.

영화 브이 포 벤데타(V for Vendetta)는 이렇게 어느 가까운 미래의 비현실적 일상으로 시작한다.

그러던 어느 늦은 밤, 이비(나탈리 포트먼)라는 소녀가 위험에 처하자 어디선가 가이 폭스의 가면을 쓴 남자(휴고 위빙)가 나타나 그녀의 목숨을 구해준다. 그는 '브이(V)'라고만 자신을 설명한다. 브이는 사실 수년 전 사회규정에 어긋나는 사람들을 모아 개조시키는 정신집중 캠프에 들어가 바이러스 주사를 맞은 후 돌연변이가 된 인물.

브이는 국영방송을 장악하고 국민을 상대로 '자유를 되찾자'는 연설을 한다. 다음해 11월 5일 총궐기하자는 메시지를 전한 뒤 홀연히 사라진다.

방송국에서 일하는 소녀 이비도 점점 자신도 모르게 브이에게 이끌리게 되고, 그의 혁명에 동참하게 된다.

이 영화에서 11월 5일과 가이 폭스는 무엇을 의미할까. 영화를 이해하는 데에 중요한 단서인 11월 5일은, 1605년 당시 국왕 제임스 1세의 종교정책에 불만을 품은 일부 가톨릭 교도들이 의사당을 폭파하려던 사건이 일어난 날이다. 이 사건의 행동대장인 가이 폭스는 교수대의 이슬로 사라지고, 지금도 영국에서는 가이 폭스의 인형을 조롱 반 멸시 반으로 끌고 다니다가 불태우는 풍습이 있다고 한다. 이 영화의 원작자인 만화가 알렌 무어는 극중 첫 머리에서 자국 내 은근한 멸시의 대상인 가이 폭스를 일약 영웅으로, 11월5일을 일종의 기념일로 그려내고 있어, 원작의 설정이 영화에도 그대로 적용된 것으로 보인다.

1981년 연재된 원작만화는 대처와 보수당 무리들을 파시스트로 비난하는데 초점을 맞췄지만 그 비판은 지금도 유효하다.

이 영화로 데뷔한 제임스 맥테이그 감독은 '매트릭스 2·3'의 조감독 출신이고, 각본과 제작은 '매트릭스' 시리즈의 감독 워쇼스키 형제가 맡았다. 시종 얼굴을 보여주지 않는 외로운 영웅 브이를 연기한 배우는 '매트릭스' 시리즈에서 스미스 요원을 연기한 휴고 위빙이다.

매트릭스의 제작진들과 배우가 만든 영화인 만큼 매트릭스와 닮은점과 차이점을 발견하는 것도 영화를 감상하는 또다른 재미다. 15세 관람가. 132분. 17일 개봉.

최세정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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