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창작 오페라 '불의 혼' 오디션

"모든 것을 다 보여라."

시험이라는 것만큼 사람을 떨리게 하는 것이 있을까? 아무리 열심히 준비했다 해도 늘 긴장되기 마련이고 그러다 막상 시험이 끝나고 나면 '좀 더 잘할 수 있었는데···'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수많은 무대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던 오페라 가수들에게도 마찬가지다. 수십, 수백 번 불러보았건만 막상 심사위원들 앞에서는 그만 자신감이 꼬리를 내린다.

14일 오후 대구오페라하우스 대연습실에서는 창작오페라 '불의 혼'에 출연할 배우들을 선발하는 공개 오디션이 열렸다.

국채보상운동 100주년 및 대구상공회의소 창설 1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제작중인 이 오페라는 극작가 최현묵 씨가 대본을 쓰고 진영민 씨가 곡을 붙였다. 친일파가 득세하던 시절, 대구에서 일어났던 국채보상운동의 시작과 전 재산을 이 운동의 의연금으로 냈던 친일파였던 한 조선인의 이야기를 통해 국채보상운동의 진정한 의미를 되새겨 보는 이 작품은 총 5억 원의 제작비를 들여 오는 가을 대구국제오페라축제 때 공연될 예정이다.

이날 오디션에는 대구를 비롯해 서울, 부산 등지에서 활동하고 있는 성악가 28명이 참가해 열띤 경쟁을 펼쳤다.

오후 3시쯤. 대연습실 앞 복도에는 20명 남짓한 성악가와 반주자들이 자신의 차례를 기다렸다.

"다음 참가자 들어오십시오."

호명에 발걸음을 떼는 참가자는 심호흡을 크게 한 번 하고 문을 열었다. 반주용 피아노 한 대와 7명의 심사위원들. 과제는 오페라 아리아 한 곡과 한국가곡 한 곡. 반주자와 눈빛을 맞춘 참가자는 노래를 시작했다. 작은 실수하나는 곧바로 탈락. 심사위원들의 날카로운 눈은 이를 놓치지 않는다. 때문에 노래는 물론 표정, 손짓 하나하나도 신경 쓸 수밖에 없다.

같은 시각. 복도 앞 대기실 역시 긴장감이 흐르긴 마찬가지. 방음벽 사이로 약하게 흘러나오는 앞 선 참가자의 노랫소리는 귀에 들리지 않는 듯했다. 악보를 뚫어지게 쳐다보는 대기자, 앉았다 섰다를 반복하기도 하고 눈을 지그시 감고 마음을 진정시키는 대기자들까지 시험은 무대에 오른 사람이나 밖에서 기다리는 이나 모두를 초조하게 만들었다.

노래가 끝났다. 그러나 환호는 없다. 오히려 시험장은 더욱 적막감이 흐른다. 심사위원들은 고개를 숙인 채 평가지에 채점을 했다.

"정말 떨려요. 가수가 무대를 겁내면 안 되지만 심사위원들 앞에서는 몸이 얼어버리는 것 같아요." 한 참가자는 후련함과 아쉬움을 뒤로 한 채 시험장을 빠져나갔다.

두 곡을 합쳐봐야 10분도 안 되는 시간. 그러나 이 시간을 갖기 위해 100배, 200배는 연습을 했을 터.

조심스럽기는 심사위원들도 마찬가지다. 자신이 주는 1점, 1점이 합격·불합격을 결정짓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그 점수가 참가한 성악가의 앞으로의 활동에 힘을 보태줄 수도, 좌절을 안겨 줄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한 심사위원은 "한 참가자에 주어진 시간은 보통 6, 7분이지만 10초만 들어보면 80~90%는 배우로서의 음악성, 가창력 등을 알 수 있다"며 "하지만 오판을 막기 위해 끝까지 귀를 기울인다"고 했다.

공정한 심사를 위해 심사위원 가운데 절반이 넘는 4명이 타지역의 음악인들로 구성됐다. 심사위원 이근화 경남대 교수는 "재능을 갖춘 성악가들이 많이 참석했다"며 "노래 실력도 중요하지만 그 배역에 얼마나 녹아들 수 있느냐를 채점 기준으로 삼았다"고 했다.

최두성기자 dschoi@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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