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은 창간 60주년을 맞아 국문학계의 석학 조동일(趙東一) 계명대 석좌교수의 '의식각성의 현장을 찾아서'를 연재합니다.
우리 고장 대구·경북, 더 나아가서 영남지방은 전통문화의 본고장이고, 새로운 사상을 이룩하는 데 앞장선 전통을 가지고 있습니다. 신라의 원효에서 조선 후기 최제우에 이르기까지 의식 각성의 선각자들이 잇따라 나타나 역사의 고비마다 민중의 생각을 바꾸어 놓은 것도 대구·경북입니다. 이 가운데는 이름이 익히 알려진 경우도 있고 기억의 저편에 잠겨 있는 분들도 많습니다. 하지만 기억하기 어려운 분들도 우리에게 끼친 바 또한 커서 함께 탐구해야 할 필요성이 큽니다. 이 시리즈에서는 이미 충분히 평가되었다고 할 수 있는 사례는 피하고, 제대로 알려지지 못했거나 잊히기도 한 유산을 힘써 점검해 나갈 예정입니다.
'의식각성의 현장을 찾아서'는 우리의 의식 각성의 증거로 삼을 만한 자취가 다행스럽게도 아직 남아 있는 현장을 찾아갑니다. 그래서 무엇이 소중한지 다시 생각하는 여행을 조동일 교수가 독자 여러분과 함께할 것입니다. 현지조사와 문헌연구를 연결시켜 쓴 글에 현장 사진을 곁들여 17일부터 매주 금요일 연재합니다.
오어사(吾魚寺)라는 절은 포항시의 남쪽 오천읍 항사리에 있다. 쉽게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좁은 길을 휘돌면서 기대를 잔뜩 하고 찾아가면 조금 실망스럽다. 평지에 자리 잡고 있으며, 주차장 바로 옆이 절이다. 마당이 좁고 집은 크지 않다.
물이 절을 휘감아 흐르는 주위에 산이 높아 형상이 기이하다. 1960년대 초에 저수지를 만들어 물이 지금처럼 불어났다. 자장암(慈藏庵), 혜공암(惠空庵), 원효암(元曉庵), 의상암(義湘庵)이 있었다고 하는데 둘만 남았다. 자장암은 높이 매달린 것 같이 보이고, 골짜기를 더듬어 한참 가면 원효암을 찾을 수 있다.
절 이름에 있는 말 오어(吾魚)는 내 고기라는 뜻이다. 무슨 연유가 있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는데, '삼국유사' 권5 '이혜동진'(二惠同塵)에 전하는 말이 있다. 혜공 스님이 만년에 그 절에 머무르고 있을 때 원효가 여러 경전을 풀이하다가 거듭 찾아가 의심나는 곳을 물었다고 했다. 경전 문답에 대해서는 그 이상 말이 없고, 납득하기 어려운 이야기를 하나 적어 놓았다.
두 사람이 시냇가에서 물고기와 새우를 잡아먹고 돌바닥 위에 대변을 보았다. 혜공이 그것을 보고서 "네가 눈 똥이 내가 잡은 고기이다"라고 했다. 그 말을 원효가 했다고도 하는데 잘못이다. 이렇게 말한 연유가 있어 원래 항사사(恒沙寺)였던 절 이름이 내 고기 절 '오어사(吾魚寺)'로 바뀌었다고 했다. 항사란 간지스강의 모래이다. 마을 이름은 지금도 항사리이다. 간지스강의 모래처럼 많은 법문을 일러준다고 하다가 고기 한 마리로 대신했다. 그래서 무엇을 얻었다는 말인가?
의문을 풀려면 먼저 혜공이 어떤 사람인지 알아야 한다. 혜공은 천진공(天眞公)이라는 유력인사에게서 고용살이하는 노파의 아들이라 하고, 아버지에 관한 말은 없다. 그런데도 어릴 때 이미 비범함을 보였다. 사경에 헤매게 하는 종기를 낫게 하고, 잃어버려 애통해 하는 매를 찾아주는 이적을 보이자, 천진공이 놀라 난폭한 말과 무례한 짓을 사과하고 스승으로 모시겠다고 했다.
출가해 승려가 되고서는 미친 듯이 취해 삼태기를 지고 거리에서 노래하고 춤추었다. 삼태기를 뜻하는 방언이 부개이다. 사람들이 부개화상이라고 부르고, 절은 부개사라고 했다. 절의 우물에 들어가 몇 달씩 있다가, 푸른 옷을 입은 신동을 앞세우고 나오곤 했는데 옷이 조금도 젖지 않았다. 어떤 사람이 산에 갔다가 혜공이 죽어 넘어진 것을 보았다. 시체가 부어터지고 살이 썩어 구더기가 나와 오랫동안 탄식하게 했다. 그런데 성 안으로 들어가자 혜공의 모습이 보였다. 술에 몹시 취해 노래하고 춤을 추고 있었다고 했다.
그런 혜공이 원효의 스승 노릇을 했다. 대단한 학자라는 원효도 모르는 것이 있어 물어야 했다. 학자는 모름지기 모르는 것이 많아야 하고, 모르는 것을 알아내는 방법을 알아야 한다. 모르는 것이 없으면 학문을 할 이유가 없고, 모르는 것을 알아내는 방법을 모르면 학문을 할 수 없다.
드러난 행적을 보아 대수롭지 않은 것 같은 사람이 원효보다 식견이 높았다고 '사복불언'(蛇福不言) 대목에서도 말했다. 사복은 과부인 어머니가 남편 없이 낳았다. 사복이란 뱀처럼 기어 다니는 아이라는 뜻이다. 열 살이 되도록 일어서지 못하고 말도 못했다. 그런데 원효가 "나지 말라, 죽는 것이 괴롭다. 죽지 말라, 나는 것이 괴롭다"고 하자, 사복이 말이 많다고 나무라고 "죽고 사는 것이 괴롭다"고 했다.
낮으면 높고, 높으면 낮다. 무식이 유식이고 유식이 무식이다. 최고라고 자부하거나 인정되는 사람은 상위자를 만나서 자기가 모자란다는 것을 알게 마련이다. 상위에는 그 상위가 또 있어 끝이 없다. 상위가 동질적인 것은 아니다. 지식의 상위는 무식이다. 논리의 상위는 비논리이다. 이론의 상위는 행동이다.
혜공이 경전 공부를 많이 했다는 말은 없다. 그럴 겨를이 있었다고 생각되지 않는다. 그런데 원효가 경전을 풀이하다가 모르는 것을 혜공에게 물었다는 것은 무슨 까닭인가? 일생 동안 기이한 행동을 하면서 민중이 말로 이룩하고 전하는 구비철학을 농축해서 더욱 놀라운 것으로 만들었다고 할 수 있다. 원효는 그렇게 하는 데 한 수 아래여서 혜공에게 배워야 했다.
원효는 줄곧 경전 공부에 힘쓰면서 뜻을 풀이하려고 했다. 경전의 뜻은 경전을 넘어서서 풀이해야 한다. 글을 아무리 들여다보아도 무슨 말인지 모르면 글을 버려야 한다. 경전을 넘어서고 글을 버려야 알 수 있는 것을 들어 혜공이 원효를 깨우쳐주었다. 상당한 정도의 충격요법을 써야 그럴 수 있었다.
물고기와 새우를 잡아먹고 돌바닥 위에 대변을 본 것만 해도 충격을 준다. 승려가 살생을 하고, 공중도덕을 어겼다. "네가 눈 똥이 내가 잡은 고기이다"라고 한 것이 무슨 소리인가? 네 것이 내 것이고, 죽은 것이 산 것이고, 다른 것이 같은 것이라고 하는 억지소리이다. 구비철학을 응축해 고성능의 폭탄을 만들어, 유식이라고 착각하는 무지를 일거에 날려버리고 분별을 넘어선 궁극의 이치가 드러나게 했다.
"네가 눈 똥이 내가 잡은 고기이다"라는 말을 원효가 했다고도 하는데 잘못이라고 했다. 원효는 그 경지에 이르지 못했으므로 혜공을 스승으로 삼았다. 그러나 원효는 혜공이 한 말을 잘 알아듣고 글로 적었다. 대단한 분량의 저술을 남겨 높이 평가된다. 참고 견디면서 다 읽어야 하는가? 아니다. 다 읽어도 하나도 모를 수 있고, 한 구절만 보고 모두 알 수도 있다.
'대승기신론별기본'(大乘起信論別記本)의 한 대목을 보자. '염정제법 기성무이(染淨諸法 其性無二·더럽고 깨끗한 여러 법이 그 본성은 둘이 아니다)'라고 했다. 글만 들여다보면 무슨 뜻인지 알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돌에다 누어놓은 똥과 청정한 물에 노는 고기가 둘이 아니라고 깨달은 바를 옮겨 적은 줄 알아야 한다.
다음 대목에서는 '진여문중 섭리이불섭리사 생멸문중 섭사이불섭리 이금이문호상융통 제한무분'(眞如門中 攝理而不攝理事 生滅門中 攝事而不攝理 而今二門互相融通 際限無分·진여의 문에서는 이만 포섭하고 사는 포섭하지 않고, 생멸의 문에서는 사만 포섭하고 이는 포섭하지 않으므로, 두 문은 서로 융통하고 경계가 나누어져 있지 않다)이라고 했다. 용어가 생소하며 말이 길고 복잡해 머리가 아프다. 그러나 어렵게 생각할 것은 아니다.
다른 것이 같은 것이라는 궁극의 이치가 진여이다. 고기를 잡아먹고 똥을 누었다는 것을 들어 말한, 죽고 살고 있고 없다는 사실이 생멸이다. 진여에서는 사실은 버리고 이치를 택하고, 생멸에서는 이치는 버리고 사실을 택하는 것이 불공평해서 잘못되었다는 상식을 넘어서야 한다. 사실과 이치는 하나이고 둘이 아니다.
이런 방식으로 접근해도 원효의 저작은 너무 많고 난해하다. 논리를 엄정하게 하려다가 말을 많이 해서 장애물이라고 생각되는 것들을 겹겹으로 만들었다. 섣불리 들어서다가는 길을 잃고 정신마저 몽롱해진다. 책을 덮고 일어나면 살 길이 있다. 오어사를 다시 찾아 깨달음의 본바닥 신선한 바람에 온몸을 내맡기면 의문이 풀리기 시작한다. 장애물이 디딤돌임을 알게 된다.
'삼국유사'를 지은 일연(一然) 또한 훌륭한 스승이다. 혜공은 원효를 이끌어주고, 일연은 혜공과 원효의 만남을 기록에 올려 우리가 원효를 이해할 수 있게 했다. 가르침을 받는 쪽이 더 나아가야 가르침이 한층 훌륭하다. 원효는 저술을 남겼는데,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 우선 오어사에 전하는 이야기를 새롭게 해서 은혜에 보답하자.
일연의 글을 다시 보자. 똥이 고기가 되어 헤엄쳐 가더라는 말이 있을 만한데 없다. 듣지 못해서, 듣고서도 실수해서, 상상력이 모자라 빠뜨렸는가? 추리하는 것은 부질없다. 내가 보탤 말이 남아 있어 얼마나 다행인가. 고기 한 마리가 두 마리로 들어났다고 해도 좋다. 원효와의 만남에서 일연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가니 기쁘다. 내친 김에 원효보다도 앞설 수 있겠다.
원효사(元曉寺)니 원효암(元曉庵)이니 하는 곳이 전국 도처에 많이 있다. 원효의 이름을 내세우지 않고서도 원효가 창건했다고 하는 사찰도 흔하다. 원효가 분신술이라도 썼단 말인가 하고 어리석게 생각하지 말자. 오늘날 원효를 내세워 번다하게 모임을 만들고 행사를 열며, 관련 논저가 산더미 같이 늘어난 것과 그리 다르지 않다.
원효는 막힌 것을 터준다. 불법은 불법이 아님을 일깨워주어 자유로울 수 있게 한다. 그런데 원효를 너무 받들다가 착상이 빈약해지고 행보가 어려워진다. 원효는 원효가 아니어야 원효일 수 있다. 남긴 저술을 구비철학의 원천과 합쳐 다시 생동하게 해야, 원효는 원효가 아니게 하는 부정, 원효는 원효이게 하는 긍정을 함께 관철시킨다. 그것이 우리가 다시 하는 창조 작업의 시발점이다.
조동일 (계명대 석좌교수)
▨필자소개
△1939년 경북 영양생 △1962년 서울대 불어불문학과 졸 △1966년 서울대 국어국문학과 졸 △1968년 서울대 대학원 문학석사 △1976년 서울대 대학원 문학박사
△1968~77년 계명대 부교수 △1977~81년 영남대 교수 △1981~87년 한국정신문화연구원 교수 △1987~2004년 서울대 인문대 교수 △2004년 이후 계명대 석좌교수 △저서='서사민요연구', '인물전설의 의미와 기능', '한국문학통사', '우리 학문의 길' 등 50여 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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